눈 쌓인 대관령에 풀어놓은 백색 사랑
눈발 흩날리는 몽환적 배경의 러브스토리를 꼽는다면 일본 감독 이와이 ?지의 ‘러브레터’를 빼놓을 수 없다. 이를 떠올리게 하는 장편소설이 국내에서 나왔다. 중견 소설가 이순원 씨(58·사진)의 《삿포로의 여인》(문예중앙)이다. 2010년 《워낭》 이후 6년 만에 내놓은 장편이다.

소설의 주된 배경은 눈 쌓인 대관령이다. 주인공 박주호는 대학 시절 대관령에서 외삼촌이 운영하는 구판장 일을 도왔던 적이 있다. 이곳에서 박주호는 옛 스키선수와 일본 여인 사이에서 난 딸 유연희를 만난다. 박주호와 친해진 유연희는 그에게 의지하고 박주호도 그런 유연희를 보살핀다. 둘은 대관령을 배경으로 아름다운 추억을 쌓는다. 흰 눈으로 덮인 대관령은 바깥 세계와 떨어진 듯 신비로운 느낌을 준다. 박주호가 서울로 오면서 둘은 헤어진다.

세월이 흘러 신문기자가 된 박주호는 오랜만에 지인의 연락을 받고 당시 일을 떠올린다. 지인은 유연희의 오빠 유명한이다. 어머니의 고향인 삿포로에서 살고 있는 유연희가 다시 연락하기를 원한다는 얘기를 유명한은 전해준다. 박주호는 예전에 느꼈던 서로의 감정이 사랑이었음을 깨닫고 유연희와 다시 편지를 주고받으며 옛 감정을 되새긴다. 다시 이어질 듯하던 이들의 관계는 마지막에 상황이 반전되며 위기를 맞는다.

《삿포로의 여인》은 지난해 계간지 ‘문예중앙’에 연재한 작품이다.

이씨는 강릉이 고향인 까닭에 강원도에 애정이 있어 이곳을 배경으로 한 소설을 다수 썼다. 대표작 《은비령》 《그대 정동진에 가면》 《아들과 함께 걷는 길》 《19세》 등은 모두 강원도가 배경이다. 소설가 황정은 씨는 추천사에서 “고백한 적은 없지만 선생을 이룬 것 중에 내가 은밀하게 샘내는 것이 있다. 선생의 대관령이다. 선생은 선생만이 할 수 있는 방식으로 대관령을 말한다”며 “다시 한 번 선생은 그곳을 부지런히 넘어 선생만 쓸 수 있는 이야기를 썼다”고 했다.

양병훈 기자 h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