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대산 월정사 주지 정념 스님은 “삶이 무겁고 힘겹게 느껴지는 이들에게 ‘출가학교’를 추천한다”며 “고요한 침묵 속에서 자신의 민낯과 마주하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모과나무 제공
오대산 월정사 주지 정념 스님은 “삶이 무겁고 힘겹게 느껴지는 이들에게 ‘출가학교’를 추천한다”며 “고요한 침묵 속에서 자신의 민낯과 마주하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모과나무 제공
정념 스님 "더디게 갑시다…속도가 아니라 방향이잖아요"
2000년대 초, 정념 스님(60)은 프랑스 보르도 근교 마을에 찾아갔다. 베트남 출신의 세계적인 불교 지도자 틱낫한 스님이 운영하는 명상공동체 ‘플럼 빌리지’를 방문하기 위해서였다. 그곳에선 인종도, 종교도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함께 밥을 먹고, 걷고, 토론하고, 좌선을 하고 있었다. 얼굴에는 하나같이 미소가 가득했다.

그 장면을 본 스님은 충격을 받았다. 수려한 산과 울창한 숲, 1700년의 역사 등 무엇 하나 부족함이 없는 한국 불교계에선 찾아볼 수 없는 광경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생각했다. ‘부처님의 지혜와 자비가 온 세상에 강물처럼 흐르게 하기 위해 나는 무슨 노력을 했던가….’

2004년, 정념 스님은 강원 평창군 오대산 월정사 주지로 취임하자마자 학교를 열었다. 1개월 과정의 ‘출가학교’였다. 욕심에 쫓겨 행복하지 못한 사람들이 ‘더 비우고 낮추기 위해’ 이곳을 찾았다. 지금까지 출가학교를 다녀간 사람은 3000여명. 정식으로 출가한 사람이 150명을 넘는다.

올해로 학교 설립 12주년을 맞은 정념 스님이 《출가학교》(모과나무)라는 책을 펴냈다. 12일 만난 스님은 “어디를 향해 가는지 모른 채 바쁘게 달려가는 현대인에게 잠시 멈춰 가도 괜찮다고 쉼표를 제시하고 싶었다”며 “소유와 탐욕, 분노와 어리석음을 비워내는 시간을 통해 현대인에게 어떤 해답을 주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출가학교에 온 분들은 자신의 사회적 지위, 재산, 지식, 학력을 모두 내려놓고 수행합니다. 시장부터 변호사, 교수, 의사, 시인, 피아니스트 등 직업도 다양하죠. 밖으로만 달려가려 할 뿐, 내 안의 목소리를 들여다보지 못해 불행하다고 느끼는 분들이었어요.”

출가학교에선 한 달간 매일 새벽 3시에 일어나 새벽예불과 108배, 참선을 한다. 육체는 고되지만 정신은 더 맑아진다. 출가학교 출신 임원종 씨는 이렇게 말했다. “저는 한 사람을 지독히도 미워했습니다. 바로 나 자신입니다. 인생이 너무 하찮아 부끄러웠고, 저 자신을 용서할 수 없었어요. ‘자신을 용서할 수 있게 해주세요’라며 절을 했습니다. 어느 순간 눈물이 왈칵 쏟아지더군요. ‘미안하다, 너무 미워해서. 너도 외로웠겠구나.’” 그동안 밖으로만 향하느라 소홀했던 자아와 마주한 순간이다.

14일은 부처님오신날이다. 그 의미를 이렇게 설명했다. “부처님은 태어나면서 이렇게 외치셨습니다. ‘하늘 위나 하늘 아래, 오직 나만이 홀로 존귀하다(天上天下 唯我獨尊).’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개인은 누구나 최고요, 존귀한 존재라는 의미입니다. 어디에도 구속되거나 억압받지 않는, ‘해탈’과 ‘자유’의 경지죠. 출가학교의 근본정신도 마찬가지예요. 자신의 존엄성을 찾고 해탈과 자유의 길로 들어서자는 것입니다.”

한 달이라는 짧은 시간에 누구나 ‘부처’가 될 수 있을까. 정념 스님은 웃으며 말했다. “우리 몸과 마음이 그렇게 쉽게 변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한 달이라면 작은 변화의 씨앗을 심을 시간으로 충분합니다. 출가학교에서 보내는 한 달은 깨달음을 의미하는 ‘보리의 씨앗’을 단단하게 심는 시간입니다.”

정념 스님은 내년 개관을 목표로 월정사 입구에 자연명상마을을 조성하고 있다. 약 20만㎡ 대지에 세우는 대형 불사다. 스님은 “마음뿐 아니라 몸까지 함께 건강하게 하는 자연명상 마을을 만들 생각”이라고 설명했다. ‘부처님오신날’을 맞아 삶이 불행한 이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무엇일까.

“차라리 더디 갑시다.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라는 말도 있잖습니까. 당신이 걷고 있는 길이 열반으로 향하는 길, 행복한 삶을 구현하는 길, 평화로운 가정을 이룩하는 길이라고 확신한다면 서두르지 마세요. 숲과 새 소리, 바람과 적막의 소리도 들어보면서, 자신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면서 말입니다.”

고재연 기자 ye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