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환기 화백의 점화 ‘27-Ⅷ-70 #186’
김환기 화백의 점화 ‘27-Ⅷ-70 #186’
한국 미술시장의 ‘블루칩’ 작가 김환기 화백의 전면 점화 ‘우주 05-IV-71 #200’은 1975년 미국 뉴욕 포인덱스터 화랑이 그의 1주기 추모전 포스터로 쓴 작품이다. 정사각형의 파란 화면을 둘로 나눠 각 면에 동심원을 이루도록 수만개의 작은 면과 점을 배치했다. 고향의 밤하늘처럼 보이지만 그림 속 점과 선들이 만들어내는 추상적 풍경은 보는 이들을 절로 경외감에 빠져들게 한다.

김 화백을 비롯한 국내 단색화가와 추상화가들의 그림을 압축해 제작한 뮤라섹(mulasec) 기법의 이색 판화 작품을 마치 빵가게에서 빵을 고르듯 구입할 수 있는 ‘프린트 베이커리’전이 열린다. 오는 20일까지 서울 중림동 한국경제신문사 1층 한경갤러리에서 펼쳐지는 ‘단색화 & 추상화’전이다.

한국경제신문과 서울옥션이 5월 가정의 달을 맞아 공동 기획한 이번 전시에는 김환기의 점화, 박서보의 단색화, 김창열의 ‘물방울’, 오수환과 박영남의 추상화 등 작고 작가와 중견·신진 작가 10여명의 뮤라섹 판화 30여점이 걸렸다. 부모나 연인, 스승에게 감사의 표시로 ‘문화’를 선물할 수 있는 좋은 기회다.

뮤라섹 판화는 피그먼트 안료를 사용해 그림을 압축한 다음 아크릴 액자로 만든 아트 상품이다. 질감이 섬세하고 색감이 생생히 살아 있는 게 특징이다. 참여 작가들이 직접 고유번호(에디션)를 붙이고 사인도 했다.

출품작은 한국 근·현대 추상미술의 프리즘을 다채롭게 보여준다. 일본 도쿄화랑에서 개인전을 열고 있는 단색화가 박서보의 ‘묘법’ 시리즈도 만날 수 있다. 전통 한지를 풀어 물감에 갠 것을 화폭에 올린 다음 연필이나 자로 수없이 긋고 밀어내 밭고랑 같은 요철을 만들어내는 방식으로 제작한 작품들이다. 작가의 붓끝에서 나온 선들이 하나의 공간에서 겹치거나 서로 맞물리며 궁극의 지점을 향해 나아가는 게 이채롭다.

‘물방울 화가’ 김창열의 작품도 여러 점 걸렸다. 천자문을 배경으로 느슨하게 스며드는 듯한 물방울로 잡아낸 우주의 순환원리가 흥미롭다. 중견 추상화가 오수환의 작품들도 관람객을 반긴다. 드러나는 형상 자체가 아니라 노장의 ‘무위’ 개념을 시각화하는 데 주안점을 둔 작품들이다. 자연의 풍경을 선과 색채로 응축한 박영남의 추상풍경화, 시적 내재율을 전통 색면에 수놓은 최선호의 추상화, 디지털 시대 현대인의 소통을 알록달록한 색띠로 형상화한 하태임의 작품 등에선 작가 특유의 재치와 순수함을 엿볼 수 있다. (02)360-4232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