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보문고 서울 광화문점에서 독자가 책을 고르고 있다. 한경DB
교보문고 서울 광화문점에서 독자가 책을 고르고 있다. 한경DB
북이십일(21세기북스), 민음사, 창비, 김영사 등 ‘간판급’ 출판사 매출이 2014년 11월 개정 도서정가제 시행 이후 21~36%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경제신문이 외부 감사를 받아 경영 현황을 공시한 국내 21개 주요 단행본 출판사의 2년간 매출 변화를 21일 분석한 결과다.

전문가들은 경기 불황과 개정 도서정가제로 책 구매 심리가 위축된 상황에서 ‘광폭 할인’을 못하게 된 구간(출간된 지 18개월이 넘은 책) 판매 급감이 매출 감소의 주요 원인이라고 분석했다. 길벗, 위즈덤하우스 등 경기 불황에도 신간을 공격적으로 개발해 내놓은 출판사의 매출은 증가했다.

○구간 판매 저조…대형 출판사 ‘타격’

새 도서정가제발 출판 '빅뱅'…대형 업체가 흔들린다
이들 출판사의 매출 평균은 2013년 168억원, 2014년 156억원, 2015년 132억원으로 2년 새 21.5% 떨어졌다. 출판사별로 보면 쌤앤파커스가 2013년 187억원에서 2015년 55억원으로 70.4% 줄었다. 구조조정을 한 웅진씽크빅 단행본사업본부도 54.6% 감소했다. 북이십일(36.6%) 민음사(34.9%) 창비(28.7%) 다산북스(26.4%) 김영사(21.5%) 등도 이 기간 매출이 20% 넘게 하락했다.

이들 업체는 문학이나 경제·경영, 자기계발 분야에서 꾸준히 팔리는 스테디셀러를 많이 보유한 출판사다. 박익순 한국출판저작권연구소장은 “개정 도서정가제 시행으로 실제 판매가가 올라가면서 구간 판매가 위축돼 구간의 매출 비중이 높은 출판사들이 타격을 받았다”며 “소비자가 신간에 비해 구간 가격에 민감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20%대의 매출 감소율을 보인 A출판사의 구간 매출 비중은 2013년 81%에서 지난해 34%로 떨어졌다. 30% 이상 매출이 떨어진 B출판사 관계자는 “구간 매출이 떨어진 데다 신간도 신통치 않아 엎친 데 덮친 격이 됐다”고 설명했다.

○길벗 등 공격적 투자로 매출 늘어

길벗의 매출은 같은 기간 106억원에서 134억원으로 27.1% 올라 가장 높은 증가율을 보였다. 노원표 길벗 재무팀 차장은 “출판사들이 긴축경영을 한 2013~2015년 길벗은 직원을 계속 뽑으며 신간 개발 투자를 늘렸다”며 “매출이 늘어난 것은 신간들이 성공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위즈덤하우스도 《미생》 등 히트작에 힘입어 202억원에서 219억원으로 8.4% 올랐다.

문학동네는 255억원에서 245억원으로 3.8% 떨어졌으나 출판시장 전체의 불황을 고려하면 선전한 것이라는 평가다. 조사 대상 업체 간 매출 순위도 4위에서 2위로 두 계단 올랐다. 시공사는 같은 기간 매출이 448억원에서 386억원으로 13.9% 떨어졌으나 단행본 출판시장 1위는 지켰다. 웅진씽크빅이 2위에서 5위로, 창비는 5위에서 6위로 떨어졌다.

○“5년 뒤 업계 주도권 바뀐다”

전문가들은 구간 매출 비중 감소가 업계에 지각 변동을 일으킬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스테디셀러가 많은 대형 출판사의 기득권이 흔들리고 신간 개발을 적극적으로 하는 신흥 출판사가 부상할 수 있다는 것이다. 출판업계 사정에 밝은 한 관계자는 “십여년간 대형 출판사들은 수백권짜리 전집을 내놓고 큰 폭의 할인을 해서 매출을 올렸는데 도서정가제 확대로 이런 전략이 빛이 바랬다”며 “5년 정도 지나면 업계를 주도하는 출판사가 바뀔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새로운 성장전략을 세워 성공하는 출판사만이 살아남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최근 신사업에 진출하는 출판사가 많아졌다. 민음사의 장르소설 브랜드 황금가지는 인터넷으로 소설을 보여주는 유료 서비스를 개발 중이다. 카카오톡 등 플랫폼 회사와 연계해 인터넷 유료서비스를 제공한 출판사는 있었지만 스스로 서비스를 개발한 출판사는 없었다.

메디치미디어는 최근 강연 상품을 개발하는 자회사 컬쳐컴퍼니 썸을 설립, 강연 사업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낭독회, 문학 기행 등을 기획하는 출판사도 늘고 있다. 북이십일 관계자는 “글자 중심이던 출판사의 콘텐츠를 다양한 방식으로 변화시킬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 도서정가제

책 소매가격을 일정 비율 이상으로 할인하지 못하도록 강제하는 제도. ‘정가에서 최대 10%만 할인해야 한다’는 내용이 핵심이다. 애초 출간 18개월이 안 된 신간(新刊)에만 적용됐으나 2014년 11월 구간(舊刊)에도 확대 적용됐다.

양병훈 기자 h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