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보안 전문가인 브루스 슈나이어는 “빅데이터 시대의 정부·기업은 전 국민을 감시할 수 있다”며 “법과 제도를 개혁해 감시에 저항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Getty Images Bank
미국 보안 전문가인 브루스 슈나이어는 “빅데이터 시대의 정부·기업은 전 국민을 감시할 수 있다”며 “법과 제도를 개혁해 감시에 저항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Getty Images Bank
오스트리아 청년 맥스 쉬렘스는 2011년 페이스북을 상대로 “나에 대한 모든 데이터를 돌려달라”며 소송을 냈다. 법정공방 끝에 그는 페이스북으로부터 1200쪽에 달하는 전자문서가 든 CD를 받았다. 여기에는 쉬렘스의 페이스북 친구 목록과 그가 읽은 기사, 클릭한 적 있는 사진과 페이지 목록, ‘좋아요’를 누른 게시물 목록 등이 담겨 있었다. 이 자료를 분석하면 쉬렘스의 인간관계와 각종 취향, 정치적 성향 등을 알아내는 게 가능했다. 쉬렘스의 구글 검색이나 이메일 수·발신 기록 등 다른 데이터와 교차분석하면 그의 성적 취향이 어떤지, 헤어진 옛 애인을 그리워하는지 등 더 깊은 내용도 알 수 있다.

[책마을] '빅데이터 시대'라 쓰고 '감시 사회'라 읽는다
쉬렘스에게만 해당하는 얘기가 아니다. 페이스북을 쓰지 않아도 사물인터넷 시대에 도처에 널린 게 컴퓨터다. 스마트 냉장고·주방기구·의료장비 등은 ‘나’에 대한 데이터를 쉴 새 없이 만들어낸다. 스마트폰이나 자동차 번호판 식별기는 ‘나’를 졸졸 따라다니는 미행원처럼 위치정보를 생산한다. 세계적 보안 전문가 브루스 슈나이어는 《당신은 데이터의 주인이 아니다》에서 “빅데이터를 활용하는 빅브러더가 출현했다”고 경고한다. 그의 표현에 따르면 “데이터는 정보시대의 배기가스”다. 정부나 기업은 뿜어져 나오는 데이터를 차곡차곡 쌓아뒀다가 필요하면 언제든 꺼내 쓴다.

저자에 따르면 빅데이터 시대에서 감시가 갖는 가장 큰 특징은 ‘광범위성’이다. 냉전시대 비밀경찰들은 감시할 필요가 있는 인물에 대해 큰돈을 들여 미행원과 장비를 투입했다. 빅데이터 시대의 정부와 기업들은 인터넷에 연결된 전 세계 약 100억개의 장치가 쉴 새 없이 쏟아내는 정보를 활용한다. 이들 장치는 2020년 300억개에 달할 전망이다. 데이터 처리 비용이 획기적으로 줄어 이를 모두 저장하고 처리할 수 있게 된다. 저자는 미국 인구 전체의 일상을 1년간 비디오로 기록하는 데 2억달러(약 2300억원)면 가능하다고 설명한다. 감시 대상이 ‘특정 인물’에서 ‘전 국민’으로 확대된 것이다.

일각에서는 “사람들이 편리함과 안전을 얻는 대가로 프라이버시를 자발적으로 양보했다”고 주장한다.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최고경영자는 “숨길 게 없는 사람은 두려워할 것도 없다”고 말했다. 저자는 이런 주장이 매우 위험한 생각이라고 반박한다. 누군가에 대해 속속들이 안다면 그를 처벌할 이유는 언제든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감시당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사람은 고분고분해진다. 사람들은 개성을 잃고 사회는 발전을 멈춘다. 인간성의 본질인 프라이버시도 말살된다.

대안은 무엇일까. 저자는 “자연으로 돌아가자”는 식의 비현실적인 해결책을 내놓지 않는다. 정부가 안보라는 목표를 효과적으로 달성하도록 도우면서 대량 감시를 제한할 법적·제도적 개선안, 기업이 빅데이터로 이익을 창출하면서 데이터 수집을 최소화하도록 하는 합리적인 규제 방안, 보통 사람들이 일상에서 감시를 피하는 데 사용할 수 있는 실용적인 조치 등을 제안한다. 그는 “감시는 딱 필요한 만큼 최소한으로 해야 하며 데이터는 가급적 짧은 시간 안에 폐기해야 한다는 원칙에 따라 법과 제도를 재정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정보기관이 불특정 다수가 아니라 감시 대상을 특정하도록 강제하는 법을 마련해야 하고, 소프트웨어에 정보기관이 접근할 수 있는 보안 취약점을 고의적으로 넣으려는 행위도 법으로 금지해야 하며, 정부와 기업들은 그들이 정보를 처리하는 알고리즘을 공개하는 등 투명성을 높여야 한다는 것이다.

양병훈 기자 h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