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달래 그림 ‘축복’ 앞에 서 있는 김정수 화백.
진달래 그림 ‘축복’ 앞에 서 있는 김정수 화백.
김소월의 시 ‘진달래꽃’이 한국인 특유의 이별의 정한(情恨)을 담고 있다면 서양화가 김정수 화백(60)의 진달래 그림에서는 어머니의 사랑이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른다. 근·현대사의 이면에 점철된 수많은 어머니의 희생과 열정을 진달래 꽃잎 하나하나에 새겼기 때문이다.

‘진달래 작가’로 잘 알려진 김 화백이 7~30일 서울 양재동 갤러리 작에서 개인전을 연다. 전시 주제는 ‘축복’. 조선시대 전통 교자상에 투박한 대소쿠리가 넘치도록 가득 담긴 진달래 꽃잎들을 시어(詩語)처럼 화면에 녹여낸 근작 30여점을 건다. 혹독한 겨울을 헤쳐온 사람들의 위축된 마음을 화사한 진달래꽃으로 위무하고 축복받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을 담은 작품들이다.

김 화백은 지난해 봄 강화도부터 강원 영월·정선, 전남 해남 보길도, 설악산까지 진달래 길을 따라 여행하며 스케치한 것을 겨우내 작업했다. 서울 경운동에 작업실을 마련해 하루 14~15시간씩 진달래 꽃잎을 그렸다. 세필을 힘껏 잡고 꽃잎 하나하나에 긴장을 불어넣었다. 아마포(삼베와 아사의 중간)에 바탕색을 칠해 먼저 짙은 붉은색이 배어나오게 한 다음 흰색과 검은색, 파란색을 덧입혀 진달래 색깔을 우려냈다.

누에가 뽕잎을 먹을 때 나는 사각거리는 소리처럼 붓길에도 리듬감을 보탰다. 금방이라도 툭 튀어나올 것 같은 꽃잎에 생동감을 줬고, 판소리 등 음악의 득음에 비유되는 경지에 도달하려 혼신을 다했다. 허리와 어깨결림이 심해 날마다 진통제를 맞으며 작업을 이어갔다. 대소쿠리에 가득 담은 꽃잎을 교자상에 정성스럽게 차려내 전통과 현대의 교감도 이끌어냈다.

김 화백은 “이 땅의 이름없는 고귀한 어머니들이 자식에게 차려준 교자상의 고봉밥을 진달래 꽃잎으로 녹여냈다”고 설명했다. 연분홍과 보랏빛, 붉은빛이 섞인 채 햇빛을 받아 반짝이는 진달래꽃으로 고단하던 부모들의 사랑에 대해 얘기하고 싶었던 것이다. “어렵고 힘든 시절에도 어머니들은 봄이면 뒷동산으로 나물을 캐러 가셨죠. 그때 지천으로 깔린 진달래꽃을 바구니에 담고 가족을 축복했을 어머니들의 모습을 떠올리며 작업했습니다.”

그렇게 태어난 그의 ‘축복’ 시리즈는 한국인의 내면에 깊이 밴 향수와 정서를 자극한다. 중장년층에게는 어려운 시절 모정의 기억을 되살리며 더 큰 온기로 다가온다. (02)2155-2351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