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명성 신시컴퍼니 대표가 5일 스스로를 “햄릿처럼 심사숙고하는 대신 돈키호테처럼 ‘저지르고 보는’ 프로듀서”라고 설명하고 있다. 신경훈 기자 nicerpeter@hankyung.com
박명성 신시컴퍼니 대표가 5일 스스로를 “햄릿처럼 심사숙고하는 대신 돈키호테처럼 ‘저지르고 보는’ 프로듀서”라고 설명하고 있다. 신경훈 기자 nicerpeter@hankyung.com
“걱정하지 마세요. 혹시 또 망할까봐 뮤지컬 ‘시카고’와 ‘맘마미아’ 대기시켜 놨습니다.”

박명성 신시컴퍼니 대표(53)가 신작을 내놓을 때마다 하는 말이다. ‘흥행 보증수표’로 통하는 작품들로 적자를 메울 준비를 해뒀다는 뜻이다. 창작뮤지컬 ‘댄싱 섀도우’로 25억원의 적자를 보고도 50억원을 들여 ‘아리랑’을 제작한 그다. “돈 안 되는 연극을 왜 하느냐”는 핀잔에도 꾸준히 연극을 올렸다. 그가 ‘어머니’라고 부르는 연극배우 손숙이 “박 대표, 무슨 똥배짱이야?”라고 걱정하는 이유다.

‘뮤지컬 프로듀서 1세대’인 박 대표가 자신의 경험과 노하우를 담은 책을 냈다. 책 제목은 《이럴 줄 알았다》(북하우스)다. 흥하거나 망하거나 관계없이 밀어붙였다는 얘기다. 실제로 그는 ‘불도저’다. 한 번 자신의 가슴을 뛰게 한 작품은 기어코 무대에 올린다. 지금까지 라이선스 뮤지컬 ‘시카고’ ‘맘마미아’ ‘아이다’ ‘고스트’ ‘원스’가 그의 손을 거쳐 한국 관객을 만났다.

5일 서울 양재동 신시컴퍼니에서 만난 그는 “대한민국에서 둘째 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많이 망해봤다”며 “매번 히트하는 레퍼토리만 올린다면 프로듀서가 존재할 의미가 없지 않느냐”며 껄껄 웃었다.

“저는 햄릿처럼 심사숙고하는 스타일이 아닙니다. 돈키호테처럼 일단 시작부터 하고 보죠. 미치지 않은 돈키호테에게는 아무 매력이 없습니다. 프로듀서로 살고 있는 한 ‘박 대표, 또 일 저질렀네!’라는 말을 듣고 싶습니다.”

무대에 올리는 작품이 익숙해질 때쯤 ‘괴짜 기질’이 발동한다고 그는 말했다. 2000년 마약 중독자, 에이즈 환자, 동성애자가 등장하는 뮤지컬 ‘렌트’를 들여왔다. “박 대표가 아니면 우리 관객들은 절대로 국내에서 ‘아이다’를 만날 수 없다”는 말에 2003년에는 158억원을 들여 대작 ‘아이다’를 수입했다. 10억원을 들여 존 티파니 연출의 연극 ‘렛미인’을 레플리카 방식(오리지널 연출팀과 무대를 그대로 들여오는 제작 방식)으로 제작했을 땐 “정신 나간 짓”이라는 소리를 들었다.

“‘렛미인’은 손해를 조금 봤지만 우리 관객의 눈높이를 한 단계 높였다는 평가를 받았어요. 이제 제가 뭔가를 시작한다고 하면 연극계 어르신들이 항상 저를 걱정합니다. 그런데 ‘100% 손해 보겠다’며 주저하면 아무 일도 못합니다. 우선 저질러 놓고, 거기에 맞는 수익 창출 방법을 고민하면 됩니다. 위험한 장사가 많이 남는다고 하잖아요, 하하! 하느님도 바빠서, 새로운 일에 도전하는 사람에게만 보너스를 주시더라고요.”

한 해 올리는 작품의 양도 다른 기획사에 비해 두 배는 된다. 올해만 라이선스 뮤지컬 ‘맘마미아’ ‘아이다’, 창작뮤지컬 ‘에어포트 베이비’, 연극 ‘렛미인’ ‘아버지와 나와 홍매화’ ‘레드’를 공연했거나 할 예정이다. 내년에는 7년 만에 ‘빌리 엘리어트’를 한국 무대에 올린다. 뮤지컬 ‘아리랑’ 재공연도 계획하고 있다.

그는 “‘돈 안 되는’ 연극에 힘을 쏟는 건 연극을 잘 만드는 회사가 뮤지컬도 잘 만들 수 있다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라며 “뮤지컬 ‘원스’를 들여올 때 쟁쟁한 기획사를 제치고 우리가 라이선스를 따올 수 있었던 것도 작품의 연극적 요소를 섬세하게 살릴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지난해 ‘아리랑’으로 창작 뮤지컬의 가능성을 확인한 그는 새 작품을 고민하고 있다. 이중섭과 심청을 각각 다룬 뮤지컬을 준비 중이다. 심청을 소재로 한 뮤지컬은 융·복합 쇼 형식이 될 예정이다.

“대한민국은 정보기술(IT) 강국이잖아요. 영상, 홀로그램, 조명, 무대 메커니즘 등으로 충분히 바닷속까지 구현해낼 수 있을 것 같다는 확신이 들어요. 미래의 문화 콘텐츠는 기술에 대한 ‘감탄’과 이야기에 대한 ‘감동’을 동시에 줄 수 있는 작품이어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고재연 기자 ye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