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3일 서울 서초동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 연습실. 차이코프스키 발레 모음곡 중 ‘백조의 호수’ 1번 정경이 흐르자 무용수가 제자리에서 팔다리를 빠르게 놀리기 시작했다. 양팔을 뒤로 한껏 넘겨 새의 날갯짓을 표현하더니 관절 곳곳을 강하게 꺾었다 펴며 자유분방하게 움직였다. 무용수 13명이 회전과 질주를 반복하며 저마다 기교를 부리는 장면에선 자유분방함이 보였다. 질서있는 정형미 대신 세련된 역동성이 무대를 채웠다.
세련된 현대무용으로 '백조의 호수' 만나볼까
다음달 11~13일 서울 동숭동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에서 제16회 정기공연을 여는 LDP무용단의 신작 ‘나는 애매하지 않습니까? 당신에 대하여’ 연습 장면이다. LDP무용단은 이번 공연에서 각각 40여분 분량의 신작 두 편을 공개한다.

‘나는 애매하지 않습니까?~’는 유명한 고전발레 ‘백조의 호수’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것이다. 원작에 맞춰 4막으로 구성하고, 주요 장면에 쓰인 차이코프스키 음악 6곡을 그대로 활용했다. 케이블채널 Mnet의 춤 경연 프로그램 ‘댄싱9’에 2년 연속 출연해 유명세를 탄 현대무용수 안남근의 첫 안무 데뷔작이다.

안씨는 “실험적인 작품을 주로 선보인 LDP무용단에 고전을 접목해 보면 흥미로울 것 같았다”며 “백조의 호수는 무용을 잘 모르는 사람도 누구나 알고 있는 작품이라 이 시대 이야기로 풀어보기에도 적합했다”고 설명했다.

원작의 주인공인 지크프리트 왕자와 오데트 공주의 사랑 이야기는 현대적으로 비틀었다. 성욕을 주체하지 못하는 젊은 청년 지크프리트가 오데트를 만나 집착하고, 그를 독차지하려고 집으로 데려간다. 흑조와 다른 백조들은 오데트를 위해 지크프리트에게 대항한다. “고전 주인공들이 현대에 온다면 인스턴트적인 사랑과 적극적인 감정 표현을 하는 식으로 바뀔 것”이라는 게 안씨의 설명이다.
세련된 현대무용으로 '백조의 호수' 만나볼까
주역 무용수가 없다는 점도 독특하다. 여러 명의 지크프리트와 오데트가 한 무대에 등장한다. 무용수 각자가 조금씩 다른 동작을 선보이며 주인공의 섬세한 감정 표현에 집중한다. 안씨는 “관객 입장에서 작품을 본다고 생각하며 작품을 짰다”며 “춤 선의 느낌과 이야기가 주는 감정을 확실하게 표현해 현대무용을 어렵게 느끼지 않게 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야기는 분명하지만 안무는 은유적이다. 한 가지 동작으로 여러 이미지를 표현하는 장면이 많다. 관객의 적극적인 감상을 유도하기 위해서다. 지크프리트가 오데트를 데리고 간 뒤 백조들이 ‘슬픔의 노래’를 부르는 부분이 그런 예다. 한 무용수가 한쪽 팔을 사선으로 뻗은 채 고개를 떨어뜨리고, 그의 팔을 다른 무용수가 잡은 채 노래하는 장면이다. 팔이 처연한 백조의 날개 같기도 하고 가수가 잡은 마이크로 보이기도 한다.

또 다른 신작 ‘네흐(NERF)’는 인간이 두려움을 느꼈을 때 나타나는 원초적인 움직임을 조명한다. 세계적 현대무용단인 피핑톰 단원 출신 안무가 사무엘 르프브르가 다원예술가 플로렌시아 데메스트리와 함께 춤을 짰다. 제목은 ‘신경’을 뜻하는 프랑스어다.

작품은 현대인이 살면서 두려움을 느끼는 여러 순간을 담았다. 인구가 밀집된 도시에서 다른 사람들과 가까이 있을 때, 갑자기 누군가와 맞닥뜨렸을 때 등이다. 테러 등 사회적 이슈로 생기는 무의식적 두려움도 다룬다. 섬세하고 속도감 있는 동작으로 순간의 심리적인 반응을 표현했다.

김동규 LDP무용단 대표는 “이번 신작에서는 한 무대에 오르는 무용수들이 각자 섬세하게 다른 표현을 선보인다”며 “무대 전체의 느낌과 각각의 움직임이 어떻게 조화되는지 비교해 보면 재미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선한결 기자 alwa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