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NC·예당엔터 등 투자 유치…K팝 제작 노하우 유출·콘텐츠 잠식 우려도
"중국향 아닌 중국서 히트하는 범아시아 콘텐츠 제작해야"


요즘 가요계의 화두는 '차이나 머니'다.

중국이 '차이나 머니'가 가득한 지갑을 활짝 열고 국내 기획사 쇼핑을 본격화하고 있어서다.

최소 수십억 원에서 수백억 원씩 지갑을 푸니 화끈하고 통이 크다.

중소기업청이 지난해 12월 발표한 연구에 따르면 중국 자본은 지난 5년여간 국내 인터넷·게임·한류 관련 영화 및 연예기획사 등에 약 3조 원을 투자했으며 그중 연예기획사는 5곳이었다.

이는 뉴, 초록뱀미디어, 키이스트 등 영화와 한류 드라마 제작사 중심이었는데, 최근 차이나 머니의 공습이 가요 기획사로도 급물살을 타고 있다.

불과 1년여 전까지만 해도 대형 음반기획사가 중국 인터넷 기업들과 업무협약(MOU)을 맺는 수준이었다면 이제 직접적인 중국 자본 유입이 시작했다.

밴드 씨엔블루의 소속사 FNC엔터테인먼트, 걸그룹 이엑스아이디의 소속사 예당엔터테인먼트, 은지원과 그룹 전설의 소속사 SS엔터테인먼트 등은 중국 투자가 이뤄졌거나 결정됐다.

또 중국과 지분 투자를 협상 중인 기획사가 다수이며 지분 투자가 아니더라도 로엔엔터테인먼트, 스타쉽엔터테인먼트, 스타덤 등이 중국 회사와 파트너십을 맺고 공동 투자해 합작 콘텐츠를 제작하는 사례도 가속화되고 있다.

업계에서는 자본과 시장이 필요한 국내 기획사, 한국의 가수 육성 시스템과 콘텐츠를 확보하려는 중국 회사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것으로 해석했다.

가요 관계자들은 "중국 회사를 만나 투자를 논의한 음반기획사가 많다"며 "주로 스타트업 컴퍼니(신생 기획사) 보다 검증된 콘텐츠를 보유한 회사들이다.

어느 기획사에 중국 자본이 들어올 것이라는 소문이 꼬리를 물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

그러나 드라마 '겨울연가'로 일본 한류가 촉발된 후 지난 10년간 '재팬 머니'의 잠식을 걱정하던 때가 있었듯이 "한국 콘텐츠와 문화 기술력의 중국 자본 잠식이 우려된다"는 목소리도 높다.

◇ 지분 투자·공동 투자 등 밀려드는 중국 자본
씨엔블루와 AOA가 소속된 음반기획사에서 유재석·정형돈 등을 영입하고 종합엔터테인먼트사로 발돋움한 FNC엔터테인먼트는 지난해 11월 중국 최대 민영기업인 쑤닝유니버설미디어로부터 제3자배정 유상증자를 통해 336억 여원의 투자를 유치했다.

또 한성호 대표 등의 주주들은 지분 11.4%를 쑤닝유니버설미디어에 매각해 218억 여원을 현금화했다.

또 이엑스아이디(EXID)의 소속사 예당엔터테인먼트는 중국 부동산 재벌 왕젠린(王健林) 완다 그룹 회장의 아들 왕쓰총(王思聰)과 손잡았다.

왕쓰총이 대표인 프로젝트바나나와 합작으로 한국에 새로운 회사를 만들어 가수를 육성할 계획으로, 현재로서는 130억 원 규모의 비즈니스 툴을 그리는 것으로 알려졌다.

티아라의 기획사 MBK엔터테인먼트는 티아라의 중국과 홍콩 매니지먼트 권한을 역시 왕쓰총의 바나나컬처에 3년간 맡기며 약 100억 원의 계약금을 받았다.

중국의 한 부동산 회사는 은지원과 전설의 기획사 SS엔터테인먼트의 지분 40%가량을 인수했다.

작곡가 용감한형제가 대표인 브레이브엔터테인먼트는 홍콩 투자회사로부터 자금 유치를 논의 중이며, 한 걸그룹 기획사는 중국의 유명 게임 업체로부터 선급금을 받은 뒤 지분 투자 논의 단계에 있다.

중국에서 인기인 한 유명 가수는 "기획사에 최소 100억 원에서 수백억 원을 투자해주겠다는 제안이 여러 차례 들어왔다"고 말하기도 했다.

콘텐츠에 공동 투자하는 합작 형태도 활발하다.

씨스타의 소속사 스타쉽엔터테인먼트는 중국 유명 기획사 위에화엔터테인먼트와 12인조 걸그룹 우주소녀를 합작해 데뷔시킨다.

우주소녀는 한국인과 중국인 멤버로 구성됐으며 양국 활동 때 두 회사가 각각 매니지먼트를 맡는 형태다.

멜론을 운영하는 로엔엔터테인먼트도 중국 인터넷 미디어기업 '르티비'(Letv)와 MOU를 체결하고 공동 투자를 통해 중국에 합작 법인을 설립, 콘텐츠 투자 및 신인 아티스트 육성 등의 사업을 전개할 예정이다.

조PD가 운영하는 기획사 스타덤도 중국 미디어그룹 텐저사와 공동 제작을 위한 MOU를 맺었다.

◇ 한국은 시장과 자본·중국은 K팝 시스템과 콘텐츠 확보
중국이 활발하게 투자처를 찾는 것은 한국의 가수 육성 및 프로듀싱 시스템을 높이 평가한 데 따른 것이다.

중국 투자를 논의 중인 한 기획사 프로듀서는 "중국이 영화와 드라마는 한국의 유능한 감독을 영입해 콘텐츠를 제작하고 판권을 소유하는 단계로 접어들었다"며 "음악은 언어 등의 장벽이 있어 프로듀서 영입보다 한국의 시스템 자체를 배우려는 접근이 많다"고 설명했다.

반대로 문화기술력을 보유한 국내 음반기획사들은 애초 '파이'가 작은 내수 시장을 벗어나 K팝을 확산시킨 만큼 지속적으로 양질의 콘텐츠 제작을 위한 자본과 수출 판로가 필요한 상황.
예당엔터테인먼트의 유재웅 대표는 "중국은 K팝 콘텐츠 제작 능력에 관심이 많다"며 "우리는 자본을 들여 경쟁력 있는 콘텐츠를 제작해야 하고, 단발성 공연만 할 게 아니라 안정적인 거대 시장을 확보해야 한다.

장기적인 비즈니스를 위해 중국 회사와 투자·합작 등 다양한 형태로 손잡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티아라의 소속사 김광수 대표도 "중국 시장에 국내 기획사가 독자적으로 진입하는 건 어렵다"며 "현지 회사와 손잡으면 시장에 원활하게 안착할 수 있다.

일본에서 다수 가수가 현지 회사와 매니지먼트 계약을 맺고 활동했듯이 티아라도 중국 회사가 매니지먼트를 맡으면서 왕성하게 활동 중"이라고 말했다.

중국 시장에 정통한 관계자 중에는 중국이 한국의 시스템과 기술력이 농축된 K팝 콘텐츠 확보에 나선 데는 현지 미디어 환경의 급격한 변화와 상관관계를 꼽는 시각도 있다.

유쿠·투더우·텐센트 등 인터넷 시장이 정착했고 알리 페이 등 모바일 결제와 O2O(온·오프라인 연계) 시장이 급속도로 성장하며 특히 젊은층의 소비 패턴이 확연히 바뀌었다는 것. 이러한 환경에서 K팝은 젊은층의 로열티가 높고 제작 로테이션도 빨라 투자하기 적합한 여러 콘텐츠 중 하나란 것이다.

중국 에이전시의 한 관계자는 "스마트폰으로 음악과 뮤직비디오를 소비하고 앨범과 MD(머천다이징 상품)를 구입하는 미디어 플랫폼 변혁의 시대에 음악, 드라마, 영화 등 한류 콘텐츠는 매력적"이라며 "드라마와 영화로 투자가 먼저 일어났고 이제 음악"이라고 설명했다.

◇ K팝 확장에는 호재…제작 노하우·인재 유출 경계
이처럼 중국의 자본 유입은 공격적이고 대규모다.

지난 25일 중국 회사가 김현주·이미연 등이 소속된 씨그널엔터테인먼트그룹의 최대주주로 올라서는 등 엔터테인먼트 분야를 비롯해 이미 정보기술(IT), 게임 등 다양한 영역에서 전방위적인 침투다.

샤오미의 센세이션처럼 장기적으로는 자본의 대가로 K팝 제작 노하우를 가져간 중국의 역공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걱정과 경계의 시선도 있다.

한 음반기획사의 해외 마케팅 직원은 "단기적으로는 중국 자본과 시장은 K팝의 확장에 호재"라면서도 "장기적으로 봤을 때는 자본을 댄 중국이 한국 콘텐츠를 쥐락펴락하게 되고, 중국으로 K팝 제작 노하우가 유출되거나 제작 인재들이 빠져나갈 수 있다"고 지적했다.

SM엔터테인먼트 김영민 대표는 차이나 머니의 유입을 시대의 흐름으로 보면서 자본에 민감하기보다 콘텐츠의 성격과 제작 방향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김 대표는 최근 인터뷰에서 "'중국 자본을 받자, 막자'가 아니라 오로지 중국향(向) 콘텐츠 제작만을 위한 자본 유입은 우려된다"며 "한국이 범아시아 콘텐츠를 계속 만들 수 있어야 제 역할을 할 수 있다.

중국에서 장사하기 위한 콘텐츠가 아니라 중국에서도 히트하는 범아시아 콘텐츠를 만드는 게 미래지향적이다.

'글로컬라이제이션'(Glocalization), 즉 지엽적이지만 세계적인 범아시아 콘텐츠를 만드는 회사가 한국에 많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서울연합뉴스) 이은정 기자 mimi@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