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슬란드 요쿨살론에 펼쳐진 오로라. 아이슬란드관광청 제공
아이슬란드 요쿨살론에 펼쳐진 오로라. 아이슬란드관광청 제공
神이 지구를 창조하기 전에 연습 삼아 만든 곳

신이 지구를 창조하기 전에 연습 삼아 만들어 본 곳. 세상의 시작이자 끝. 모두 아이슬란드를 수식하는 말이다. 태초의 지구 모습을 잘 간직하고 있는 아이슬란드는 공상과학영화에서나 봤을 법한 자연을 담은 나라다. 현존하지 않을 듯한 장소도 많다. 그래서 아이슬란드는 ‘인터스텔라’ ‘프로메테우스’ 등 많은 영화 촬영지로 등장해왔다. 많은 여행자에게 궁극의 여행지, 혹은 여행의 ‘끝판왕’으로 불리는 아이슬란드의 신비로운 매력을 들여다보자.

아이슬란드, 바이킹의 겨울왕국

북유럽의 스칸디나비아 반도 옆에 있는 작은 섬나라 아이슬란드(Iceland). 국토의 약 80%가 빙하와 호수, 용암지대로 이뤄진 나라로 런던에서 북쪽으로 약 1900㎞ 떨어져 있다. 아이슬란드의 역사는 주변 국가에 비해 길지 않다. 8세기께 아일랜드 수도승들이 최초로 거주했고, 나중에 바이킹들이 들어와 정착했다. 865년 즈음에는 노르웨이의 바이킹인 플로키가 섬의 북서쪽에서 몇 해를 보냈다. 어느 날 산에 오른 플로키는 눈과 얼음이 가득한 피오르 외에는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 그래서 섬을 아이슬란드(Island)라고 불렀는데, 이것이 굳어져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아이슬란드의 크기는 남한과 비슷하지만 인구는 35만명밖에 되지 않는다. 수도인 레이캬비크(Reykjavik)와 북쪽의 아쿠레이리를 제외하면 도시라고 부를 만한 곳이 별로 없다. 도심을 벗어나면 작은 마을뿐이라서 사람을 만나는 일이 드물 정도. 도시와 마을의 구분을 ‘신호등의 유무’로 생각해도 무방하다면 이해가 될까. 그동안 다른 유럽 국가들보다 한국에 덜 알려진 편이지만 최근 방영 중인 예능프로그램 ‘꽃보다 청춘’을 통해 관심이 더 높아졌다.
콘서트홀이나 컨벤션 센터로 쓰이는 하르파. 아이슬란드관광청 제공
콘서트홀이나 컨벤션 센터로 쓰이는 하르파. 아이슬란드관광청 제공
문화와 예술시설이 넘치는 도시

북위 64도에 있는 레이캬비크는 세계 최북단의 수도다. 아이슬란드 말로 ‘연기가 자욱한 만(灣)’이라는 뜻이다. 작고 소박한 아름다움이 있는 레이캬비크에는 도시 규모에 비해 넘치도록 많은 문화예술 시설이 있다. 정처 없이 거리를 걷더라도 곳곳에서 작은 미술관이나 박물관, 갤러리를 발견할 수 있다. 수많은 음반가게와 크고 작은 공연들이 벌어지는 클럽도 여행자를 반긴다. 북유럽의 디자인 미학에 흠뻑 취할 수 있는 상점들과 카페 역시 그냥 지나치기 어렵다. 범죄율이 낮은 곳이라 혼자 다니거나 밤 문화를 즐기는 것도 걱정 없다. 시내에서 가장 세련된 현대식 건물인 하르파(Harpa)는 공연장이자 컨벤션센터로 운영된다. 인구 12만명에 불과한 도시에서 문화예술 시설이 이 정도라니 실로 놀랍고도 부럽다.

도시의 상징물은 중심가 언덕 위에 자리 잡은 교회 할그림스키르캬(Hallgrmskirkja)다. 레이캬비크를 소개하는 책 어디서나 제일 먼저 언급되는 관광명소다. 할그림스키르캬를 중심으로 여행자를 위한 숙소와 식당, 쇼핑센터 등 거의 모든 시설이 집중돼 있다. 꽤 멀리 떨어진 곳에서도 보일 만큼 눈에 띄기 때문에 기준점 역할도 한다. 레이캬비크에 머문다면 늘 이 교회와 함께하게 될 것이다. 거대한 파이프 오르간이 있는 교회 내부는 현란한 장식 없이 매우 담백하다. 가끔 파이프 오르간 연주나 성가대의 훌륭한 연습장면도 감상할 수 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종탑 위에 오르면 도시 전경이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레이캬비크 시내 모습
레이캬비크 시내 모습
레이캬비크 인근의 3대 핵심 관광지 ‘골든 서클’

아이슬란드의 진정한 매력은 레이캬비크를 벗어났을 때부터 시작된다. 렌터카를 타고 도시를 벗어나니 끝도 없이 광활한 지평선이 펼쳐진다. 레이캬비크에서 가까운 핵심 관광지를 ‘골든 서클’이라 부른다. 싱벨리어(Þingvellir)국립공원, 게이시르(Geysir), 굴포스(Gullfoss)를 이르는 말이다. 3개 지역을 하루 만에 둘러본 후 다시 레이캬비크로 돌아올 수 있기 때문에 단기간 아이슬란드에 머무는 여행객에게도 시간적 부담이 없다. 렌터카 없이 버스를 이용하는 관광객도 편하게 다녀올 수 있다.

싱벨리어 국립공원은 바이킹들이 세계 최초로 의회를 연 곳으로 아이슬란드의 영혼과 정신이 깃든 장소다. 역사와 더불어 지질학적으로도 가치가 크다. 지구 표면이 여러 개의 판으로 구성돼 있다는 판 구조론에 따르면 이곳은 아메리카와 유라시아판의 경계에 있다. 그래서 땅이 양쪽으로 갈라진 것처럼 보이는데 지금도 1년에 2㎝씩 판이 벌어지고 있다고 한다.

게이시르에 가면 지구 같지 않은 아이슬란드의 모습에 시각적 충격을 받게 된다. 80~100도에 달하는 뜨거운 물이 지상으로 수십m까지 치솟아 오르는 간헐천 지대다. 게이시르에는 크고 작은 지열 연못과 계곡이 50개 넘게 있는데, 가장 규모가 큰 곳에서는 높이가 최대 80m에 이르는 엄청난 물기둥을 볼 수 있다.
협곡과 폭포가 어우러진 굴포스의 장관
협곡과 폭포가 어우러진 굴포스의 장관
굴포스는 아이슬란드어로 황금폭포(golden falls)라는 뜻. 절대 놓치지 말아야 할 관광지다. 빙하 물에 흙이 섞이면 황금빛으로 보이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엄청난 수량이 만드는 위용이 세계 유수의 폭포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다. 한때 외국 자본이 굴포스를 수력발전소로 개발하려고 시도했으나 이에 맞선 아이슬란드 사람들이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지켜냈고 지금은 최고의 관광지 중 하나가 됐다.
뜨거운 물이 솟구쳐 오르는 간헐천
뜨거운 물이 솟구쳐 오르는 간헐천
얼음과 시간의 호수를 가다

레이캬비크에서 동쪽으로 약 370㎞ 떨어진 남부 지역에는 요쿨살론(Jokusarlon)이 있다. 아이슬란드 최대 빙하지대인 바크나요쿨 국립공원 안에 있는 얼음의 호수다. 넓이가 18㎢에 이르는 거대한 호수에는 크리스털 빛의 빙하들이 수없이 떠 있다. 2010년 화산폭발로 발생한 까만 재가 켜켜이 층을 이룬 빙하도 만날 수 있다. 차갑게 몰아치는 바람에 정신까지 얼얼해질 지경이지만 눈앞에 펼쳐지는 아름다움이 고통도 잊게 한다. 수정처럼 투명하게 반짝이는 빙하를 보노라면 대자연에 대한 경외심이 절로 들 정도다.

시간이 있다면 배를 타고 호수를 관광하면 좋다. 수륙 양용선 같은 배를 이용해 호수 언저리만 돌거나, 조디악이라는 고무보트를 타고 호수 끝까지 가볼 수 있으니 선택해서 이용하면 된다. 배에서 바라보니 영겁의 세월 동안 생성된 빙하들은 아주 천천히 바다를 향해 흘러갔다. 길고 긴 시간의 여행을 보고 있으면 시간이 멈춘 듯한 기분마저 든다. 1분 1초 단위의 조급함 속에 시달리는 도시인들에게 요쿨살론은 아무 말 없이 둔중한 메시지를 던진다.
아이슬란드에서도 가장 거대한 규모를 자랑하는 데티포스
아이슬란드에서도 가장 거대한 규모를 자랑하는 데티포스
레이캬비크에서 북쪽으로 548㎞ 떨어진 데티포스(Dettifoss)는 수많은 폭포가 눈길을 끄는 아이슬란드에서도 가장 거대한 규모를 자랑한다. 데티포스는 마치 화성의 표면 같은 황무지가 펼쳐지는 곳이다. 영화 ‘프로메테우스’에서 태초의 지구에 생명의 씨앗을 뿌리는 장면에 등장하기도 했다.

풀 한 포기 없는 황량한 용암 대지를 지나 쏟아져 내리는 어마어마한 양의 물은 아름다움을 초월해 기괴한 느낌마저 든다. 빙하가 녹아 화산재와 뒤섞여 쏟아지는 물은 진흙탕처럼 짙고 뿌옇다. 아이슬란드의 아름다운 다른 폭포들에 비해 왠지 모를 우울함이 깃든 것 같아 어쩐지 이질감마저 느껴진다. 하지만 무뚝뚝한 모습 역시 인간을 압도하는 대자연의 카리스마가 아닐까.

눈을 황홀케 하는 감격의 빛

극광(northern light)이라고도 불리는 오로라(aurora)는 극지방과 북유럽, 캐나다 북부 부근에서만 볼 수 있는 신비한 기상현상이다. 아이슬란드를 방문하는 이들이 바라마지 않는 최고의 자연현상이기도 하다.

하지만 오로라를 보기란 그리 쉽지 않다. 인터넷을 통해 날씨 정보와 오로라 지수를 확인하며 여행하다 보면 드물게 만날 수 있다. 하지만 날이 흐리면 보기 어렵고 무엇보다 겨울에만 오로라가 나타난다. 기온이 높아 성수기로 분류되는 여름엔 오로라를 포기해야 한다. 확률적으로 오로라가 잘 보이는 곳으로 데려다 주는 노던라이트 투어가 레이캬비크에 있긴 하지만 이것 역시 100% 볼 수 있다는 보장이 없다.

여행 중 오로라를 본 것은 행운이었다. 얼음 호수 요쿨살론에서 동쪽으로 80㎞ 더 가면 나타나는 작은 부둣가 마을 회픈(Hfn)에 이르렀다. 회픈 근처의 게스트하우스 주변은 집 하나 찾을 수 없는 허허벌판이었다. 조용한 어느 날 밤, 갑자기 바깥에서 떠들썩한 소리가 들렸다. 문을 열고 나가보니 게스트하우스에 머무는 여행자들이 모두 나와 하늘을 보며 흥분에 찬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그들의 머리 위로는 초록색 빛의 냇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오로라였다.

희미한 초록색으로 시작된 흐름은 점점 그 밝기를 더해가며 하늘에 넓은 비단을 펼쳐놓기 시작했다. 넘실대는 저 빛의 향연을 뭐라고 설명해야 할까. 그것은 단순히 태양의 플라즈마와 지구의 공기가 만났을 때 일어나는 현상이 아니었다. 누군가에겐 평생 기억될 만큼 아름다운 순간이었다. 앞으로도 결코 잊지 않을 것이다. 처음 만난 이방인들과 얼싸안고 어린아이처럼 들떠 행복해하던 그때의 경험은.

이것만큼은 꼭!

(1) 오로라를 촬영하고 싶다면 준전문가급 이상의 카메라를 가져가야 한다. ‘똑딱이’로 불리는 소형 카메라로 찍기엔 한계가 있다.
(2) 10월부터 이듬해 3월까지 이어지는 겨울에는 일조시간이 매우 짧지만 여름에는 백야가 이어져 어두운 밤이 짧다. 이점을 고려해 일정을 짜자.
(3) 아이슬란드 전체가 청정지역이다. 지열로 온천수가 흐르고 빙하로 냉수가 만들어지니 여행 내내 수돗물을 그냥 마셔도 무방하다.
(4) 한겨울 눈 덮인 도로의 교통 상황은 매우 좋지 않다. 폭설로 도로가 통제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므로 인터넷을 통해 도로 정보를 늘 점검해야 한다.

이준오 여행작가(여행서 ‘세상의 모든 고독 아이슬란드’ 저자) caskermail@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