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서 서라벌까지…불상미학 700년의 향연
간다라 미술을 꽃피운 인도 쿠샨 왕조(2~3세기)의 돌부처, 중국 북위시대(5~6세기) 금동부처, 6~7세기 한반도에서 일본으로 전래된 금동삼존불,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까지 아시아 전역에서 꽃피운 고대 불상이 한자리에 모였다. 25일 서울 용산동 국립중앙박물관 기획전시실에서 개막하는 특별전 ‘고대 불교조각대전-불상, 간다라에서 서라벌까지’는 인도 중국 일본과의 교류 속에서 한국 불교 조각의 전통을 조명하는 자리다.

국립중앙박물관의 용산 이전 10주년을 기념하는 이번 특별전에서는 미국 영국 독일 인도 중국 일본 등 7개국 26개 기관이 소장한 유물 210여점을 선보인다. 영국박물관, 미국 메트로폴리탄미술관, 인도 뉴델리국립박물관, 일본 도쿄국립박물관, 독일 베를린 아시아미술관 등 세계 유명 박물관이 대거 참여했다.

총 4부로 나뉜 전시는 인도에서 불상이 처음 등장한 때부터 한반도에서 반가사유상 제작이 꽃을 피운 700년대까지를 다룬다. 불상과 보살상은 여러 조각품 중에서도 불교의 뜻을 가장 단순하고 확실하게 전달한다. 북주(北周)의 무제(543~578)가 “진정한 부처는 형상을 갖지 않는다”며 불상을 없애려 하자 승려 혜원은 이렇게 질타했다. “눈과 귀에 의지하는 백성은 경전에 의지해 부처의 말씀을 듣고, 상을 통해 진정함을 알게 된다.”

인도의 초기 불교에선 부처의 유골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 석가모니가 열반한 뒤 400년 넘도록 불상을 제작하지 않았다. 이후 기원전에서 기원후로 넘어갈 무렵 간다라와 마투라지역에서 불상을 제작하기 시작했다. 전시실 양쪽에 서 있는 두 지역 불상의 소재와 모양을 보면 교류가 없던 시절의 뚜렷한 차이가 나타난다. 후한시대 불교와 함께 불상을 받아들인 중국인은 불상을 만들면서 인도 양식을 충실히 따랐다. 불교가 지역 문화와 점차 융합되면서 불상 또한 자기들이 제작하고 이해하기 쉬운 모습으로 바뀌었다. 산시성 우타이산에서 발견된 금동대불을 보면 부처가 입은 옷의 주름, 몸매 등이 인도 양식과 사뭇 다른 모습이다.

금동 삼존불상
금동 삼존불상
한반도의 삼국시대 불상도 중국과 비슷한 양상을 보인다. 당시 한반도의 불교는 남·북조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발전하다 6세기부터 점차 한국적인 모습을 보였다. 전시된 불상을 시간 순으로 살펴보면 중국 불상과 한국 불상의 양식 변화가 느껴진다. 한반도에서 일본으로 건너간 금동삼존불상(도쿄국립박물관 소장)은 6~7세기 한반도의 뛰어난 불상 제작 수준을 가늠하게 한다.

4부 ‘반가사유상의 성립과 전개’는 전시의 하이라이트다.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불상이자 종교·예술적으로도 뛰어난 가치를 지닌 반가사유상을 소개한다. 반가사유상은 한반도에만 있는 양식은 아니지만 미륵신앙과 결합돼 보다 특별한 존재가 됐다. 1965년 경북 봉화 북지리에서 출토된 석조반가사유상은 상반신이 없지만 추정 높이가 3m에 이르는 대형 불상이다.

전시 마지막은 2004년 이후 11년 만에 공개되는 두 분의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국보 제78·83호)이 장식한다. 별도 공간에 모셔진 두 보살상은 하루 해가 뜨고 지는 것을 나타낸 조명 아래 은은한 미소를 내비친다.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 서서를 쓴 고(故)최순우 전 국립중앙박물관장이 왜 “뭐라고 형언할 수 없는 거룩함을 뼈저리게 해주는 것이 이 부처님의 미덕”이라고 말했는지 실감하게 하는 명작이다. 전시는 11월15일까지.

박상익 기자 dirn@ha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