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권력'의 담합구조 혁파 과제 이제부터
표절 법적 입증 여전히 어려워…검찰 일단 관망

소설가 신경숙(52)이 23일 공개된 경향신문과의 인터뷰를 통해 표절을 사실상 인정하고 사과 입장을 밝히면서 표절 논란은 새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다.

작가 개인을 둘러싼 표절 의혹 시비는 우선 중요한 매듭을 풀었다고 볼 수 있으나 명백해 보이는 표절 의혹이 공식 제기된 지 무려 15년이 지나서야 논란 해소의 가닥을 잡았다는 점에서 문학계가 뼈를 깎는 자성과 비상한 상황 인식 및 대응에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여전하다.

아니 이제야 발화하는 시점이라는 게 문단 안팎의 대체적 인식이다.

신 작가의 표절 의혹이 제기된 뒤 봇물 터지듯 문학계의 '문학권력' 담합구조에 대한 폭로성 지적들이 잇따른 건 대형 상업출판사들과 일부 '잘 팔리는' 작가들의 담합 구조, 이른바 '주례사 비평'으로 상찬만 더하는 비평가들의 기생 구조, 대학의 문예창작과와 각종 문학상 심사위원들 간의 결탁 구조로 질식되어만 가던 창작 공간의 현실 탓이란 분석이 나온다.

그러하기에 신 작가를 둘러싸고 제기됐던 각종 의혹들은 본격적인 공론화와 개혁의 출발점을 제공한다.

무엇보다 15년전인 2000년 문학비평가 정문순이 문예중앙 가을호를 통해 지난 16일 소설가 이응준이 제기한 표절 의혹을 포함하는 문제제기를 했음에도 무관심으로 일관하며 이를 묻어버린 문단 비평가 집단의 건강성 문제다.

이응준은 16일 기고문에서 비평가 집단을 포함한 문단을 향해 "뻔뻔한 시치미와 작당하는 은폐"로 일관했으며, 결국 "표절의 환락가화"했다고 공격했다.

연장선상에서 작가들이 표절에 둔감해온 우리 현실도 도마 위에 오른다.

윤희상 시인의 시 '무거운 새의 발자국', '멀리, 끝없는 길 위에' 두 편의 시 제목을 자신의 단편 제목으로 그대로 가져다 쓴 신 작가는 "당시 문단에서 종종 있던 일"이라며 "만약 그게 잘못된 일이었다면, 혹시 섭섭한 마음을 가졌다면 제가 잘못 살아온 것 같다"고 말했다.

개인 문제는 차치하더라도 문단 전체의 표절, 가져다 쓰기에 대한 둔감한 태도는 되짚어볼 대목이다.

비평가 김명인은 2002년 발간된 '주례사 비평을 넘어서'(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에 게재한 '신화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신경숙 소설 비평의 현황과 문제' 비평에서 작가에 대한 비평 없이 상찬만 늘어놓는 비평이 특정 작가에 대한 거품을 만들어 결과적으로 문학계의 건강한 생태계를 해친다고 지적했다.

김 비평가는 특히 소설 말미에 붙는 '해설'이 사실상 작가에 대한 비평의 전범이 되는 현실 속에서 비평가들이 작가에 대한 비판적 입장을 취하기 어려웠다는 점에 주목했다.

이는 마치 작품집 출간의 '들러리'를 서는 일과 같아서 비판적 평론은 '남의 죽에 코 빠뜨리는' 일종의 행패로 받아들여져왔다는 것이다.

한 문학비평가는 "상업출판사가 운영하는 문예지를 통해 작가 작품을 게재하고, 주례사 비평으로 포장해 다시 단행본으로 출간하는 결탁 구조가 온존하는 한, 또 유명 작가들이 신예들의 작품을 마음대로 도용하고도 별다른 제재를 받지 않는 현실의 혁파 없이 문단의 건강화는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한편 신 작가가 표절을 사실상 인정했음에도 표절의 법적 책임을 묻기엔 여전히 무리라는 게 저작권 전문가들의 다수 견해다.

현택수 한국사회문제연구원장이 지난 18일 검찰에 제출한 고발장은 신 작가가 표절 작품을 발표해 창비와 문학동네로부터 부당이득을 취했다는 혐의를 앞세웠다.

유병한 전 저작권위원회 위원장은 연합뉴스와 통화에서 "표절은 법과 도덕 문제 양면으로 봐야 한다"며 "작가가 도덕적 영역에서 표절을 인정했더라도 법적으로 표절을 입증하는 건 별개의 문제"라고 말했다.

검찰 또한 현재 고발인 조사를 할 단계는 아니며, 원작을 비롯해 관련자료를 검토해 본 뒤 판단하겠다는 입장인 것으로 전해졌다.

(서울연합뉴스) 김중배 기자 jbkim@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