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D프린터로 뽑아낸 의족   / 한스미디어제공
3D프린터로 뽑아낸 의족 / 한스미디어제공
[책마을] 머핀부터 의족까지 3D프린터로 뚝딱
통밀 블루베리 머핀을 굽는 냄새와 함께 아침을 맞는다. 하지만 이 음식은 아내가 만드는 게 아니다. 지난 밤 유명 레스토랑 사이트에서 내려받은 머핀 조리법을 푸드 프린터에 입력하고 최고급 카트리지에는 최고급 원료를 채워놓았다. 건강보험회사는 푸드 프린터를 더 고급 사양으로 업그레이드해줬고, 이제 피부에 심은 장치에서 혈당 정보를 프린터로 보낸다. 이 정보로 프린터는 설탕 함유량을 조절하고 영양 균형을 맞춘다.

3차원(3D) 바이오 프린터로는 인간의 장기를 대체할 수 있는 ‘부품’을 찍어내기도 한다. 사람들은 고해상도 신체 스캐너를 사용해 20대부터 자기 몸을 스캔, 데이터를 저장한다. 격렬한 논쟁 끝에 바이오프린팅이 생명을 살리는 기술이라는 데에는 사회적 합의를 이뤘다. 하지만 문제는 새로 형성된 암시장이다. 신체조직의 품질이 보장되지 않는 디자인 파일이 시중에 나돌고 있다.

미래에는 이런 공상과학 영화 같은 일이 현실화될까. 3D프린팅의 세계적 권위자 호드 립슨 코넬대 공대 교수와 기술 분야 전문 작가인 멜바 컬만이 쓴 《3D프린팅의 신세계》는 이런 가능성을 모색하고 3D프린터가 이미 가져온 혁신과 이에 기반한 메이커스 운동, 클라우드 생산 방식 등의 변화를 살핀다. 또 이 기술이 내포하고 있는 법적, 윤리적 문제점도 지적하며 3D프린팅에 대한 총체적 분석을 시도한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올해 연두교서에서 제조업에 혁신적인 변화를 이끌 신기술로 3D프린팅을 언급했다. 중국도 이 기술 연구에 국가적으로 지원하고 있고, 삼성경제연구소는 ‘미래 산업을 바꿔놓을 혁신기술’로 꼽았다. 3D프린팅에 어떤 잠재력이 있기에 세계 각국에서 관심을 갖는 걸까.

3D프린터는 말 그대로 우리가 손에 쥘 수 있는 3차원의 물건을 찍어낸다. 디자인 파일만 컴퓨터에 입력하면 3D프린터는 이에 따라 소재를 평면에 단단하게 응고시킨다. 이후 헤드가 정교하게 좌우로 움직이며 얇은 층을 더해간다. 이 얇은 층이 쌓여 3차원의 물건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이론적으로는 정교한 디자인 파일과 혼합재료 기술이 확보되면 집과 자동차, 음식과 생체조직까지도 만들 수 있다.

3D프린팅에 기반한 산업적 변화는 이미 진행 중이다. 대량생산 체제에서와 달리 누구나 생산수단을 가질 수 있게 됐다. 이를 통해 다양한 맞춤형 제품과 부품을 짧은 시간에 만들 수 있게 됐다. 소수의 대규모 기업이 아니라 개인 단위의 수많은 사람이 참여하는 시장체제에서는 그만큼 혁신이 가속화하고, 환경적 측면에서도 기존 체제가 만들어내는 탄소를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다. 대량 생산에서 클라우드 생산으로 진화하는 것이다.

물론 푸드 프린팅이나 바이오프린팅 기술의 갈 길은 아직 멀다. 푸드 프린팅으로 햄버거를 만드는 것은 아직 어려운 일이다. 패티나 빵은 가능할지 몰라도 토마토, 양파 등 신선한 식재료를 찍어내는 건 새로운 산업 수준의 일이다. 바이오프린팅 또한 세포를 정확한 지점에 배치하는 것에는 성공했지만 배치된 세포의 활동을 시작하게 하는 방법은 모른다. 자연은 각각의 기관을 일하게 할 수 있지만 인간은 모르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3D프린터는 이미 혁신적 성과를 내고 있다는 게 저자의 진단이다. 지난해 구강암에 걸린 83세 벨기에 여성의 턱에 3D프린트된 티타늄 뼈를 삽입하는 데 성공한 것이 한 예다. 의료 디자인 회사인 자일록메디컬은 여성의 턱을 스캔해 프린트 가능한 디자인 파일로 만들고, 컴퓨터 알고리즘을 사용해 수천개의 불규칙한 홈과 빈 공간을 턱뼈에 만들었다. 이를 통해 이 여성의 정맥, 근육, 신경 등은 새 턱뼈와 더 빠르게 결합했고 수술 후 몇 시간이 지나자 환자는 말하고 수프를 먹을 수 있었다.

저자는 3D프린팅 기술의 문제점도 다룬다. 얼마 전 있었던 총기 복제사건에서 보듯 인류에 유해한 물건이 대량 복제돼 돌아다닐 수 있고, 마약과 모조품 소비도 급격히 늘 수 있다. 바이오프린팅의 경우 심각한 윤리적 문제를 발생시킬 수 있다.

전문 연구가와 대중적 글쓰기에 능한 전문 작가가 함께 쓴 만큼 3D프린팅 기술의 현재와 미래를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는 게 장점이다. 소리 없이 다가오는 혁신을 놓치지 않으려는 독자들이 읽어볼 만하다.

박한신 기자 hansh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