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도와 신윤복. 그들을 얘기할 때는 늘 화원(畵員)이라는 신분적 꼬리표가 주홍글씨처럼 따라다닌다. 그들이 갖고 있던 문인적 교양인으로서의 폭넓은 재능은 화원이라는 기술직 중인이라는 선입견에 슬그머니 가려진다. 단원과 혜원은 그래도 양반이다. 최고의 예술적 기량으로 조선왕실의 권위를 드높이는 데 있어 중추적 역할을 맡았던 숱한 화원들은 아무런 주목도 받지 못한 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그러나 그들이 남겨놓은 수많은 궁중유물들은 오늘도 전시장을 방문한 관람객들에게 이런 사정의 부당함을 소리 없이 외친다.

박정혜 황정연 윤진영 강민기 등 네 명의 미술사학자가 펴낸 《왕의 화가들》은 그런 우리 모두가 지고 있는 마음의 빚에 대한 학계의 화답이다. 한국학중앙연구원의 왕실문화총서의 완결편인 이 책은 제1권 《왕과 국가의 회화》가 최고 통치권자의 입장에서, 제2권 《조선 궁궐의 그림》이 제왕의 거처라는 특별한 공간적 맥락 속에서 각각 궁중회화를 바라본 데 비해 그림 제작을 직접 담당한 화가들의 얘기다.

화원에 대해서는 그간 조선미 이성미 진준현 등 전공 학자들에 의해 토대 연구가 이뤄졌지만 하나의 종합적인 밑그림을 제시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제1부에서는 화원의 신분적 처지와 생활여건, 화원 제도의 변천과정, 화원의 선발 및 담당업무 등을 두루 살피고 있고, 제2부에서는 임금의 초상을 그린 어진화사의 선발과정과 그들의 활동상을 사료 중심으로 살피고 있다.

또 제3부에서는 갑오개혁(1894)과 도화서 폐지라는 시대적 격변 속에서 살아남은 화원들의 활동상과 함께 새 시대의 흐름에 적극 참여, 외교 기술 등의 부문으로 활동범위를 넓힌 ‘모던보이’ 화가들의 이야기도 담았다. 끝으로 제4부에서는 궁중미술에 자주 등장하는 길상(吉祥·부귀와 행복의 염원)의 의미를 지닌 그림들을 검토함으로써 장수와 다남(多男)을 통해 왕권의 안정적 계승을 바랐던 왕실의 세계관을 살피고 있다.

이런 종합적인 검토를 통해 화원의 삶은 물론 조선사회의 예인과 예술행위를 바라보는 인식의 변천과정도 함께 그 윤곽을 드러낸다. 오랫동안 기능인으로 치부됐던 화원이 중인문화의 만개와 함께 진정한 예인으로 대우받게 된 사정, 정조대에 왕을 직접 알현할 수 있는 차비대령화원으로 신분이 격상된 자초지종이 흥미롭게 전개된다.

특히 학술연구에서는 소홀히 다뤄졌던 사적인 부분에까지 관심의 대상을 넓힌 것도 책 읽는 재미를 더한다. 왕실회화 규범에 따라야하는 공인으로서의 화원에서 탈피, 사적인 화가의 입장에서 그린 작품들을 통해 예인으로서의 진면목을 살피고 있다.

‘왕의 화가들’의 궁극적인 목표는 임금의 얼굴을 그리는 어진화가가 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 화원 예술의 정수는 안타깝게도 부산 피난 시절 화마의 손길을 피해가지 못했다. 우리가 경복궁과 창덕궁을 드나들 때마다 느끼는 헛헛증은 주인의 얼굴을 모르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왕의 화가들》은 그런 갈증을 채워줄 만한 노작이다. 왕의 얼굴은 볼 수 없지만 이 책을 통해 제왕의 위엄과 그들의 행적을 표현하려 했던 왕의 화가들의 숨결과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정석범 문화전문기자 sukbum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