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토벤 바이러스에 빠진 3인 ‘희망의 선율’
최희연 서울대 교수와 김수빈, 송영훈 4일 금호아트홀서 베토벤 트리오 공연

“베토벤은 ‘선(善)’에 대한 신념이 있었던 사람이고, 옳은 것을 투쟁하듯 추구했어요. 사회가 어지럽고 도덕성이 무너져가고 있는 지금 베토벤의 음악이 절실한 때죠.”

꼭 10년 전이었다. 서른 한 살에 서울대 음대 교수로 임용돼 화제를 모았던 한 여성 피아니스트가 서른 셋이 되던 해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전곡 연주에 도전한다고 했던 것이. 그 후로 4년동안 그는 ‘건반악기의 신약성서’로 불리는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32곡 전곡을 8회에 걸쳐 완주했고, 전석 매진 기록을 세웠다. 2010년에는 ‘베토벤의 밤’ 시리즈를, 2011년부터 올해 4월까지는 총 3회에 걸쳐 바이올리니스트 이미경과 함께 ‘베토벤 바이올린 소나타 전곡 연주’를 완성했다.

10년째 한국 음악계에 ‘베토벤 바이러스’를 전파하고 있는 피아니스트 최희연 서울대 음대 부교수(42)가 이번엔 ‘베토벤 피아노 시리즈’로 돌아왔다. 내년까지 총 3회에 걸쳐 열리는 이번 여정의 첫 공연은 오늘 저녁 서울 광화문 금호아트홀에서 열린다. “베토벤은 도전하는 것 자체로 이미 의미있다”고 말하는 그는 바이올리니스트 김수빈 미국 피바디 음대 교수(36), 첼리스트 송영훈 경희대 음대 교수(38)와 함께 베토벤 피아노 3중주 E플랫 장조 작품 1의 1번, 클라리넷(혹은 바이올린), 첼로와 피아노를 위한 3중주 제 4번 ‘가센하우어’, 피아노 3중주 D장조 ‘유령’을 연주한다.

추석 연휴 내내 이어진 맹연습을 앞두고 첫 만남을 가진 이들을 지난달 27일 서울 광화문 금호아트홀에서 만났다. 긴장된 분위기도 잠시, 인터뷰 사진을 위해 악기를 잡은 셋의 손가락은 약속이나 한듯 연주를 시작하더니 이내 30분이 넘는 즉흥 리허설로 이어졌다. 화음을 맞춰본 셋은 흡족한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보며 “위 아 어메이징!(우린 환상적이야)”을 외쳤다.

최희연 씨는 “10년 전 베토벤을 들고 나왔을 때는 관객을 생각 못했고, 내가 어떻게 연주할 지에만 집중했었다”면서 “지금은 스스로 누구에게 들려줄까, 어떻게 들릴까를 더 많이 고민한다”고 말했다.

세계 무대에서 활약하는 셋의 대화는 20년 전 베를린, 10년 전 미국, 한국 등을 오고 갔다. 서로 협연을 하거나 공연을 지켜봤던 기억으로 웃음꽃이 피었다. 송씨와 김씨는 10년 넘게 MIK앙상블 활동을 해온 막역한 사이. 셋은 이어 각자 ‘베토벤 바이러스’에 대해 이야기를 꺼냈다. 최씨는 “지금까지 3일 이상 피아노를 떠나 휴가를 계획하면 몸이 아프거나 다쳤다”고 했다. 송씨가 “아무리 졸리고 피곤해도 연주를 시작하면 잠이 달아난다”고 말하자 김씨도 “연습을 조금이라도 덜 하면 컨디션이 확 떨어져 가족들이 먼저 알아챈다”고 했다.

송씨는 “베토벤은 가슴에 불을 품었던 사람이었고, 그가 만든 음악은 천상의 소리처럼 느껴진다”며 “국내에서 연주 기회가 드문 레퍼토리인데 협연 제의를 받았을 때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고 말했다. 김씨는 “베토벤은 가장 사랑하는 작곡가”라며 “그의 음악에는 상상할 수 없는 많은 감정이 한 곡 안에 녹아있다”고 했다. 그는 “어릴 때 베토벤 연주는 스스로 못한다고 느꼈고, 해도 잘 늘지 않았었다”며 “지금도 연주할 때 항상 불편하기 때문에 손에서 놓을 수 없는 레퍼토리가 됐다”고 했다.

세 연주자가 관객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뭘까. “상처받은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치유받고 용기를 얻어갔으면 좋겠어요. 객석에서 일어날 때 ‘아, 인간으로 산다는 건 참 행복하구나’하고 느꼈으면 합니다.”

김보라 기자 destinybr@hankyung.com/ 사진=강은구 기자 egk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