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런던의 템스 강변에 있는 갤러리 ‘테이트 모던’. 25일(현지시간) ‘절규’ 등으로 잘 알려진 노르웨이 화가 에드바르 뭉크의 전시회가 열리고 있는 이곳에 관람객들이 북적였다. 2000년 세워진 테이트 모던은 ‘흉물’에서 ‘명소’로 탈바꿈한 곳이다.

이곳은 뱅크사이드 화력발전소가 있던 곳으로 1981년 발전소가 폐업한 뒤 19년간 방치돼 있었다. 이 건물 때문에 주변 지역이 슬럼화하고 있다는 비판이 일자 런던시는 회생 방안 마련에 나섰다. 발전소를 헐고 새 건물을 짓자는 의견이 많았지만 런던시는 ‘제3의 길’을 선택했다. 기존 외관은 그대로 놔두고 내부를 리모델링해 갤러리로 재탄생시킨 것.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매년 500여만명이 테이트 모던을 찾고 있다. 도시도 살아나고 있다.

영국 정부가 공공디자인 정책을 통해 도시 구석구석을 탈바꿈시키고 있다. 새 건물이나 시설을 세우는 것이 아니라 기존에 있던 발전소와 공장에 디자인을 입히는 전략을 통해서다. 이른바 ‘리자인(recycle+design)’ 방식이다. 이를 통해 영국 전통은 유지하면서 시민들의 편의를 대폭 증진시키고 있는 것이다.

수력발전소를 개조한 ‘와핑 프로젝트(wapping project)’는 테이트 모던보다 한걸음 더 나아간 경우다. 내부를 리모델링한 테이트 모던과 달리 예전의 수력발전 장비들을 그대로 둔 채 레스토랑과 갤러리를 연 것. 이색적인 분위기 덕분에 많은 예술가와 시민들이 몰리는 런던 문화의 중심으로 우뚝 섰다. 영국의 유명 디자이너인 토머스 헤더윅 역시 영국 정부와 손잡고 런던의 한 폐공장을 식물원으로 꾸몄다.

런던 남동부에 있는 울위치에서도 이 같은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이 지역엔 중세 때부터 대규모 무기고가 있었다. 영국 디자인진흥기관인 디자인카운슬은 이곳을 3700여채의 주택으로 탈바꿈시키고 있다. 2002년부터 시작한 이 프로젝트 역시 기존 외관은 그대로 둔 채 채광 효과를 높이는 등 내부 공간을 리모델링하는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영국 정부는 건물을 개조하는 데 그치지 않고 다양한 방식으로 리자인 정책을 실시하고 있다. 런던 거리의 가로등과 전봇대 등에 매달려 있는 ‘검드롭빈(gumdropbin)’이 대표적이다. 이는 행인들이 씹던 껌을 버리는 껌 수거통이다. 겉보기에는 평범한 플라스틱이지만 실은 씹던 껌을 녹여 만든 재생 플라스틱이다.

영국 정부가 리자인 정책을 적극 추진하고 있는 것은 비용을 절감하면서도 공공의 이익을 극대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무턱대고 외관만 화려하게 바꾸면 기존 경관을 해친다는 비난을 받을 수도 있다는 게 영국 정부 측 판단이다. 앨런 톰슨 디자인카운슬 건축 부문 책임자는 “공공디자인은 질과 양을 동시에 충족시킬 수 있느냐가 관건”이라며 “양적인 면에 집착하고 밀어붙이기 식으로 디자인 정책을 실행한다면 오히려 큰 반감을 살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태용 한국디자인진흥원장은 “좋은 공공디자인 정책은 도시를 살리는 힘이 된다”며 “영국을 벤치마킹해 다양한 리자인 정책들을 고안해낼 것”이라고 말했다.

■ 리자인

리사이클(recycle)과 디자인(design)의 합성어로, 폐기물에 디자인을 적용해 새롭게 만든다는 뜻이다. 이는 폐기물을 줄이기 위한 방안으로 패션, 인테리어, 건축 등 디자인이 적용되는 모든 분야에서 활용이 가능하다.

런던=김희경 기자 hk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