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몰고 돌아온 1990년대 스타일
“쿵따리 샤바라 빠빠빠~.”

지난 20일 밤 서울 서교동 홍익대학교 앞 가요주점 ‘밤과 음악사이’. 1990년대 인기 듀오 클론의 ‘쿵따리 샤바라’가 흘러나오자 테이블에서 술잔을 기울이던 ‘넥타이 부대’들이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단체로 따라 부르는 ‘떼창’은 기본. 클론의 춤을 흉내낸다며 팔다리도 분주하게 움직인다. 밤과 음악사이는 1990년대 유행한 록카페를 그대로 옮겨 놓은 주점이다. 최근 들어 학창시절 추억을 찾는 30대들의 발걸음이 이어지면서 설립 6년 만에 전국 19개 점포에 연매출 200억원 규모의 어엿한 ‘중소기업’으로 성장했다.

잔스포츠와 함께 1990년대 ‘국민가방’으로 불렸던 이스트팩. 2000년대 들어 스포츠, 아웃도어 브랜드에 밀려 자취를 감췄던 이 브랜드가 되돌아온 것은 2010년이었다. 패션업계에서는 “한물간 브랜드를 부활시키는 것은 새로운 브랜드를 키우는 것보다 어렵다”며 회의적인 전망을 내놨다. 결과는 아니었다. 학생들은 물론 30~40대 직장인·주부까지 이스트팩을 찾았다. 재상륙 첫해 매출(판매가 기준)은 45억원. 올해는 80억원으로 불어날 전망이다.

1990년대를 바탕으로 한 신(新)복고문화가 뜨고 있다. 한때 열풍이었던 ‘7080 복고문화’는 뒷전으로 밀려나는 모습이다. ‘1990년대식 복고’를 선도하는 계층은 이른바 ‘397세대’(30대·90년대 학번·1970년대생)다. 이들은 대학시절 이렇다 할 정치적 격변을 겪지 않고 대중문화를 마음껏 향유한 세대다. 이들이 소비의 핵심 주체로 떠오르면서 자연스럽게 이들의 문화가 빠르게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돈 몰고 돌아온 1990년대 스타일
수요가 생기면 돈도 몰리는 법이다. 벤처캐피털 업체와 기업들은 이들을 겨냥한 사업에 집중적으로 투자하고 있다. 대표적인 분야가 영화와 드라마다. 1990년대 학번들의 첫사랑을 다룬 영화 ‘건축학개론’(관객 수 400만명)에 16억원을 투자한 캐피탈원은 투자금의 2.5배에 달하는 40억원 이상을 돌려받을 것으로 보인다. CJ E&M은 자체 제작한 ‘응답하라 1997’이 역대 케이블 드라마 중 가장 높은 9.47%의 시청률(18일 마지막회 기준)을 기록하면서 큰 돈을 만지게 됐다. 드라마에 붙는 광고가 ‘완판(완전 판매)’됐고, 100만명 이상이 유료로 다운로드를 받았다.

CJ E&M은 여기에 그치지 않고 1980~1990년대를 배경으로 한 영화 ‘전설의 주먹’ 제작에 들어갔다. 강우석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고 황정민, 유준상 씨 등이 고교시절 유명 싸움꾼으로 등장한다. CJ E&M 관계자는 “신복고는 요즘 충무로에서 가장 주목하는 이슈”라며 “1980~1990년대에 대한 향수를 찾는 수요가 충분한 만큼 소액 투자자를 모으는 데 별다른 어려움이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신복고 열풍은 패션, 게임 등으로 옮겨 붙고 있다. 1990년대 학생 배낭 시장을 양분했던 이스트팩과 잔스포츠가 재입성한 데 이어 인기 캐주얼 브랜드였던 ‘노티카’도 도심형 아웃도어 스타일로 돌아왔다. 신원은 2003년에 접었던 여성 캐주얼 브랜드 ‘아이엔비유’를 2010년 다시 꺼내들었다. 올해는 패션·잡화 브랜드 ‘세스띠’를 13년 만에 부활시켰다.

게임 시장에서는 스트리트 파이터, 파이널 판타지, 1945, 마계촌, 파워레인저, 킹 오브 파이터즈, 프린세스 메이커 등 1980~1990년대를 주름잡은 히트작들이 스마트폰 또는 온라인 PC 버전으로 다시 등장하고 있다. 복잡한 신작 게임보다는 학창시절 오락실에서 즐기던 게임을 찾는 30~40대가 타깃이다.

창업 전선에도 신복고 바람은 거세다. 밀가루 떡볶이와 1990년대풍(風) 인테리어가 트레이드 마크인 국대떡볶이가 대표적이다. 이 회사는 프랜차이즈 사업을 한 지 2년 만에 점포 수를 125개로 불렸다. 이 중 35개는 지난 3개월 동안 생겼다. 김상현 국대떡볶이 사장은 “20여명이 추가로 점포 개설 여부를 타진하고 있다”며 “올 들어 1990년대 열풍이 불자 창업 준비자들이 더 많은 관심을 보이는 것 같다”고 말했다.

김나경 LG경제연구원 선임연구원은 “대학 졸업 후 10여년간 취직 결혼 출산 등으로 바빴던 397세대들이 어느 정도 여유가 생기자 옛 추억을 꺼내 위안받고 싶은 심리가 발동하는 것”이라며 “397세대의 소비시장 영향력이 커질 수밖에 없는 만큼 문화·경제 전반에 이들을 대상으로 한 사업과 투자가 더욱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김태호/오상헌/오동혁/정소람 기자 highkic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