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풀 꺾이는 듯싶던 더위가 다시 기승을 부리던 지난 11일 오후, 소설가 김주영 씨(73)의 서울 장충동 사무실로 향했다. 전날 이명박 대통령과 함께 한 독도 방문 얘기가 궁금했다. 이마의 땀을 훔치며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정수기에서 냉수 한 잔을 따라 건넨다. 자리에 앉으며 독도도 서울처럼 덥냐고 물었더니 “거긴 좀 선선합디다”란 답이 돌아왔다.

▷이 대통령의 역사적인 독도 방문에 동행했습니다.

“방문 이틀 전에 청와대 비서실에서 전화가 왔습니다. 대통령이 독도를 방문할 예정인데 같이 가겠느냐고 묻더군요. 간다고 했지요. 원래는 울릉도에서 하루 묵는 일정이었어요. 그런데 날씨가 안 좋아 당일로 다녀왔습니다. 방문 날짜도 꼭 정해져 있던 게 아니라 10, 11, 12일 중 날씨 좋은 날에 가기로 했었죠. 독도에 가려면 기상 상황이 중요하더군요.”

▷국내 정치 상황을 의식한 ‘쇼’라는 비판도 있는데요.

“이 대통령은 작년 광복절에도 독도를 방문하려 했는데 기상 상황 때문에 못 갔다고 하더군요. 갑자기 결정한 게 아니라는 얘깁니다. 이 대통령과 친하지는 않지만 20년 전부터 알고 지냈는데, 정치적 꼼수를 부리는 사람이 아니에요. 가면서 대통령이 ‘우리 영토를 대통령으로서 처음 가보는 게 상당한 의미가 있지 않느냐’고 했습니다. 표면적으로는 ‘지방 순시’ 정도의 느낌이었어요. 도착해서도 울릉도 독도의 자연환경 이야기를 많이 했고요.”

▷정치적 의미가 크겠죠.

“‘구경꾼’으로 동행했을 뿐인데 제가 정치적인 의미를 부여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이 대통령은 ‘새로운 문제를 만들어서 갈등을 일으키려는 의도는 아니다. 일본과 좋은 관계로 지내고 싶다는 기본적인 생각에는 지금도 변함이 없다’는 얘기를 비행기 안에서 세 번이나 하더군요. 다만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위안부 문제 등에 일본이 너무 미온적으로 나오니까 문제를 부각시켜 좀더 적극적으로 해결해보겠다는 의지가 아닐까….”

▷전에도 독도를 두 번 방문했는데.

“이번이 세 번째예요. 예전에 갔을 땐 그야말로 무인도에 가까웠는데, 이번에 가보니 배를 매는 접안시설이라든지 전경 숙소, 식당 같은 것들이 번듯하게 잘 돼 있었습니다. 제가 다른 국민들을 대신해서 다녀온 거죠. 대통령의 독도 방문이 잘못된 일은 아니었다고 봅니다.”

그는 이번 독도 방문에 대한 언급을 조심스러워했다. 자신은 구경꾼이었을 뿐이라며 정치적인 해석을 내리기 힘들다고 했다. 화제를 다른 쪽으로 돌릴 수밖에 없었다. 그는 최근 《고향 물길을 거닐며》라는 에세이집을 냈다. 자신의 문학적 본령인 낙동강의 역사와 그곳에서 살아가는 서민들의 애환을 담은 책이다. 이 책이 4대강 홍보 논란에 휘말렸다. 책을 출간한 김영사에 한국관광공사가 출판 지원금을 줬기 때문이다.

▷책에는 4대강에 관한 내용이 없던데요.

“애초부터 4대강 사업에 관한 내용은 안 쓴다고 다짐을 받고 시작했습니다. 낙동강에 남아 있는 퇴계 선생의 학문적 흔적들, 강이 안고 있는 서민들의 애환들, 뭐 이런 질곡과 사람들의 정서를 썼지요. 그런데도 모든 걸 정치적으로 해석하고…. 이 나라의 병폐입니다. 습관적으로 모든 사회문제를 정치적 궤도에서 이해하는 나쁜 버릇이 배어 있어요. 어떤 문제는 순수하게 예술적인 기준에서 판단해야 하고, 어떤 문제는 또 사회적인 정서 문제로 접근해야 하는데….”

▷개인적으로 4대강 사업을 어떻게 생각하세요.

“처음엔 반신반의했습니다. 생태계 파괴라든지, 물을 가둬놨을 때 있을 수 있는 부작용이 따를 거라 생각했죠. 그런데 작년 여름 그렇게 비가 많이 왔는데도 피해가 거의 없지 않았습니까. 4대강을 정비하면서 수해나 가뭄에서 어느 정도 벗어난 것이죠. 이번 녹조현상은 폭염 때문에 생긴 겁니다. 4대강 때문이면 물이 흐르는 바다에는 왜 생깁니까. 바닷물은 겉으로는 고여 있는 것 같지만 속으로는 계속 흐르고 있거든요. 정비가 안 된 북한강엔 녹조가 생겼고 사업을 한 남한강은 멀쩡했습니다.”

▷‘보수 작가’라고 보는 사람들이 많아요.

“살면서 보수냐 진보냐에 신경 써 본 적이 없습니다. 저는 궁핍을 겪는 사람의 편에서 소설을 씁니다. 역사의 행간에서 이름을 찾을 수 없는 사람들, 하루 두 끼 식사로도 감지덕지하는 사람들, 빗방울이 새는 움집에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죠. 그런데 그렇다고 해서 진보적이어야 합니까. 그건 아니지요. 그 반대도 아닙니다. 솔직히 말해서 무엇이 보수고 무엇이 진보인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이념이 아니라 제 스스로의 가치관에 비춰 양심적인 길인지 아닌지 판단합니다. 그게 보수가 볼 때 진보일 수도 있고, 진보가 볼 때 보수일 수도 있겠죠. 어쩔 때는 회색분자 같을 수도 있습니다. 이념 따라가며 한자리하려 했으면 진작에 했을 겁니다. 그것도 보수 정권이 아니라 노무현 정부 때 했겠죠.”

그는 2004년 제17대 총선 때 열린우리당 공천심사위원을 지냈다.

▷‘공천헌금’이니 ‘막말’이니 정치판이 시끄럽습니다.

“저도 2004년에 ‘잘 좀 봐달라’는 전화 많이 받았습니다. 그냥 무시하고 말았지요. 정치인 막말은 참 문제입니다. 정치인의 재산은 돈이 아니라 ‘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더 정제된 언어를 써야 합니다. 자기의 어머니를 보고 ‘그년’이라 하면 가만 있을 건지…. 그것도 특정인을 지정해서. 자기 나름대로 계산이 있었겠죠. 그 사람을 미워하는 사람이 있고, 그들의 표가 또 있으니까.”

▷어떤 사람이 대통령이 돼야 할까요.

“누구라고 생각은 안 해봤습니다. 다만 편견을 갖고 있지 않은 사람, 이념에 경도돼 있지 않은 사람이었으면 좋겠어요. 진정으로 국민 편에 설 수 있는지를 봐야겠지요.”

일흔이 넘은 나이지만 그는 주말에도 쉬지 않고 사무실 책상에 앉는다. 자료를 찾고 원고를 쓰는 일상이 1주일 내내 계속된다. 10여년 전부터는 젊은 예술가들을 지원하는 파라다이스 문화재단 이사장도 맡고 있다.

▷작가로서의 인생을 돌아본다면.

“지금까지 다른 직업 없이 오직 글 써서 먹고살았습니다. 그러다보니 부담도 많이 되고 경제적으로도 힘들었어요. 시류에 휩쓸리는 소설을 쓴 적도 있습니다. 통속 소설이나 대중이 원하는 작품들 말이죠. 소설을 함부로 쓴 경험이 없지 않다는 젊은 시절의 안타까움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때는 우선 먹고살아야 하기 때문에 절박했습니다. 그런 작품들을 수정하려는 생각을 갖고 있어요.”

▷30년 만에 《객주》의 마지막 10권을 집필 중이시지요.

“경북 울진군에 남아 있는 옛 보부상 길을 3년 전쯤 발견하고 나서 《객주》를 완결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지금 반쯤 쓰고 수정을 보고 있지요. 내년 2~3월이면 나올 겁니다. 집도 없었던 보부상들이 돈을 모아 집단으로 마을을 만든 곳이 아직 남아 있어요. 소작인을 고용해 농사를 짓게 하고 자신들이 늙으면 돌아와 정착하고…. 그 후손들이 아직도 이 마을에 살면서 보부상들의 제사를 지내고 있습니다. 이곳을 이야기하면서 10권째를 마무리하려고 합니다.”

소설가 김주영은…79년부터 4년 여 간 '객주' 연재…'길위의 작가' 별명

1939년 경북 청송에서 태어났다. 대구농림고 축산과를 나와 서라벌예대 문예창작과를 졸업했다. 1979년부터 4년9개월에 걸쳐 대하소설 《객주》를 서울신문에 연재했다. 조선 후기 보부상의 삶과 애환을 풀어내 ‘길 위의 작가’라는 별명을 얻었다. 감칠맛 나는 토속어, 현실적인 농촌 현장 묘사와 함께 민초들을 주인공으로 등장시켜 영웅담 위주였던 한국소설에 새로운 길을 열었다.

1971년 10월 《휴면기》로 ‘월간문학’ 신인상을 받으며 등단했다. ‘안동문학’ 주간, 글밭동인회 동인, 한국문인협회 안동지부장을 거쳤고 현재 파라다이스문화재단 이사장,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위원으로 있다. 2007년에는 은관문화훈장을 받았다. 2010년 《빈집》, 올해 《잘가요 엄마》를 출간하며 활발한 작품활동을 하고 있다.

2003년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 취임사 준비위원회 위원을 지냈고 2004년 17대 총선 때는 열린우리당 공천심사위원을 했다. 지난해부터 약 1년간 한국정책방송(KTV)에서 ‘김주영의 로드다큐 강’이라는 프로그램을 맡아 진행하기도 했다.

박한신 기자 hansh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