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에 들어간 지 얼마 안 됐을 때였죠.몸이 아파서 1주일 동안 학교를 못 갔는데,심심해서 장난 삼아 집에 있는 피아노를 갖고 놀았어요. 그때 외할머니가 찬송가를 피아노로 가르쳐주셨습니다. 할머니가 선교활동을 하시느라 피아노를 꽤 잘 쳤거든요. 이게 첫 번째 피아노 레슨이었지요. 아버지는 음악을 전공하려다 뜻을 이루지 못하고 그 대신 음반을 많이 수집했습니다. 당시 방송국에서 클래식 음반을 빌리러 오곤 했던 기억이 나요. "

수원시립교향악단 상임지휘자이자 세계적인 피아니스트인 김대진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48).그는 한손으로 지휘봉을 잡고 한손으로는 건반을 두드리며 국내외 공연무대와 교육 현장을 오가는 특급 아티스트다.

실내악단 금호아트홀 체임버뮤직소사이어티 음악감독이자 김선욱 손열음 등 차세대 주자들을 키워낸 교육자로도 유명하다. 올해 예술의전당이 기획한 '위대한 3B 시리즈'의 베토벤 집중 탐구 프로그램을 맡아 눈코 뜰 새 없는 데다 최근엔 '토요 콘서트' 해설까지 맡았다. 그의 열정과 재능은 어디에서 나오는 걸까.

"클래식을 뱃속에서부터 듣고 자라 배우는 속도가 남보다 빨랐던가 봐요. 할머니 덕분에 얼떨결에 전공하게 됐는데,사실 저는 재주가 모자랐어요. 그래서 남보다 노력을 더 많이 했죠. 많이 할 때는 하루 13시간씩 피아노 연습을 했습니다. 밥 먹으러 오라는 말도 귀찮았죠.한창 연습에 물이 올랐는데 그렇게 김빼는 소리를 하다니… 하하."

어릴 때부터 노력파였던 그는 11세 때 국립교향악단과 협연해 주목을 받았고 이듬해 데뷔 독주회를 가졌으며 예원콩쿠르에서 우승했다. 이어 이화 · 경향콩쿠르와 중앙음악콩쿠르,동아콩쿠르 1위까지 휩쓸더니 줄리아드 음대 재학 중에 로베르 카사드쉬 국제 피아노콩쿠르마저 석권했다.

"사람들은 1등한 것만 기억하지만 저도 사실 많이 떨어졌어요. 초 · 중학교 때도 여러 번 미끄러졌죠.좌절도 많이 했습니다. 혜화동 집에 큰 나무가 있었어요. 거기에 올라가 노는 게 좋았는데,콩쿠르에서 떨어지면 거기 올라가서 혼자 앉아 자신을 다잡곤 했죠.부모님은 아직도 그 집에 계시지만 나무는 지금 없어졌네요. "

뜻밖의 대답이지만 한편으로는 수긍이 간다. 그가 매주 셋째주 토요일 오전 11시 '신세계와 함께하는 예술의전당 토요 콘서트'에 애착을 갖는 이유도 알 것 같다.

"토요 콘서트를 두 달째 했는데 두 번 다 2300여석이 매진됐어요. 무대에 나가는 순간 벌써 청중이 어떤지 알죠.청소년들이 아니라 대부분 연장자들이에요. 클래식에 관심을 가진 중년부부와 가족들이 토요일 오전에 콘서트장으로 찾아오는 거죠.남녀 비율도 비슷합니다. 그 무게감과 집중도가 대단해요. 공연 보고 가족 단위로 식사하면서 주말을 즐기지 않나 싶어요. 저는 흥미 위주의 가벼운 해설이 아니라 강의 수준으로 깊게 들어가는데 이 분들이 굉장히 진지하게 듣습니다. 질문에 대답도 잘 하고,이런 훌륭한 관객들을 만나는 건 쉽지 않죠."

그의 지론 중 하나는 '좋은 연주에서는 연주자가 보이고 정말 좋은 연주에서는 작곡가가 보인다'는 것이다. 해설 음악회라도 연주 수준은 최고로 유지해야 한다는 얘기다. 그래야 청중이 음악을 느끼게 되고,한번 맛을 들이면 계속 클래식을 찾게 되기 때문이다.

"그 중간 역할을 우리가 하는 거죠.클래식이 어렵지 않은데도 용어 때문에 어렵게 느끼잖아요. 그런 걸 설명해주는 게 중요합니다. 협주곡이 무엇인지 기본 개념만 알아도 더 즐길 수 있어요. 우리나라에 영재들이 많이 나오고 전반적인 음악 수준이 높아졌는데 청중도 그래요. 그래서 해설도 본질적인 분야로 들어가는 게 맞다고 봅니다. "

그는 내달 토요 콘서트(18일)에서는 모차르트의 '클라리넷 협주곡 A장조'와 드보르자크의 교향곡 9번 '신세계교향곡'을 들려준다. 관람료는 전석 2만원.

올해 야심차게 이끌어온 '베토벤 시리즈'도 내달 9일 마지막 회를 남겨놓고 있다.

"1년 동안 베토벤만 생각하고 살았죠.그의 협주곡과 교향곡 9개를 다 지휘하고 전곡을 연주해본 사람이 몇 명이나 있을까 싶은데 그 점에서 참 행복하고 감사합니다. 교향곡 악보를 보는 공부 과정에서 더 감동받았지요. 귀가 안 들리는 사람이 이런 곡을 만들었다는 게 상상이 가지 않아요. 수원시립교향악단 차원에서도 신선한 충격이죠.이런 프로젝트가 있고,여기에 집중하면 크게 성장하게 됩니다. 올해 2월 시작할 때와 비교하면 생각지 못할 정도로 변했어요. 단원들에게 감사하게 생각해요. 보통 오전 10시부터 연습을 시작하는데 단원들이 모두 9시15분에 나와서 연습합니다. 자발적으로요. 예전에 정명훈 선생님이 '마음으로 연주하지 않으면 음악이 만들어지지 않는다'고 했어요. 이제 알 것 같습니다. 저희처럼 열심히 연습하는 교향악단도 없을 거예요. 한번 하면 몸을 가누지 못할 정도거든요. "

이 같은 교향악단의 변화를 이끈 리더십 덕목은 무엇일까. 그는 "스스로 보여주는 것"이라고 대답했다. "그 분들은 학생이 아니잖아요. 제가 얼마나 준비를 해가느냐가 중요합니다. 강도 높게 최선을 다해서 하면 단원들이 금방 알아요. 별다른 말도 필요 없습니다. 그냥 아니까요. "

그는 제자들을 가르칠 때도 기교보다는 마음을 강조한다. "학생들 수준이 높아지니까 곡을 가르치는 것은 거의 의미가 없어요. 이젠 곡이 아니라 사람을 가르쳐야 합니다. 예를 들어 주입식 교육을 봅시다. 빨리 치지 말라는 걸 가르칠 땐 수십 번 얘기해야 하고 그때그때 주입할 때만 먹혀들지요. 보다 근본적인 것을 가르쳐야 합니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성격과 인성을 바꾸는 거죠."

이런 교육 덕분인지 큰딸 화라는 줄리아드 음대에서 바이올리니스트로 잘 크고 있다. 둘째 딸 희라도 클라리넷을 취미로 연주한다. 부인 조성은씨는 바이올리니스트다. 그러고 보니 핏줄이 뜨거운 음악 집안이다.

"외할머니는 1988년에 돌아가셨습니다. 독립운동을 했는데 3 · 1운동 때 유관순 열사 옆에서 옥살이를 같이 했다는 얘길 거의 매일 들려줬죠.선교 활동하면서 언더우드와 친해서 그가 썼던 타이프라이터도 집에 있었어요. 전 어릴 때 의사가 되려고 했었는데 외할머니 덕분에 피아노를 택하게 됐고요. 그렇지만 다시 태어나면 음악은 하지 않고 싶어요. 한번 실컷 해봤으면 됐잖아요. 전혀 새로운 걸 또 해봐야죠."

만난 사람 = 고두현 문화부장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