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함께 창의 경영] (3) "직관력은 책에서 나오죠"…1인당 年 100만원 지원
"콩나물 시루에 물을 주면 물은 금세 다 빠져버려도 콩나물은 조금씩 자라지 않습니까. 책을 읽는 것도 마찬가지라고 봐요. 책을 읽으면서 굳이 그걸 기억하려고 애를 쓰지 않아도 독서가 일상화되면 그것이 나중에 필요할 땐 훌륭한 직관과 통찰력으로 발현되는 것이죠."

한창준 이메이션코리아 사장(51)의 '콩나물 시루 독서론'이다. 이메이션코리아는 1996년 3M에서 CD,USB메모리 등 데이터 저장장치 사업군을 떼어내 분사한 이메이션의 한국 법인.일찍부터 독서경영을 실천해 이 분야의 선두주자로 이름이 높다. 1998년 외환위기 때부터 한국법인의 첫 최고경영자(CEO)였던 이장우 전 사장이 주도해 책 읽는 문화를 조성해왔다.

이메이션코리아는 직원들이 책을 사서 읽고 비용을 청구하면 즉시 책값을 전액 지원한다. 경제 · 경영서뿐만 아니라 역사,철학,종교,디자인,예술 등 어떤 분야의 책이든 읽고 싶은 대로 사서 읽으면 된다. 액수 제한도,독후감 · 리포트 등의 과제도 없다. 회사가 부담을 주면 자발적 참여동기가 떨어진다는 이유에서다.

여름휴가 등을 앞두고는 CEO가 직접 좋은 책을 사다가 회의실에 펼쳐놓고 직원들에게 한 권씩 골라 갖도록 하는 '북랠리'도 펼친다. 북랠리는 휴가철,연말,분기말 등 연간 4~5차례 연다. 공부하는 분위기도 진작해 회사에서 매년 직원 1명씩을 대학원에 보내 경영학 석사(MBA)과정을 공부하도록 지원한다.

2007년 10월 이 전 사장에 이어 2대 CEO로 취임한 한 사장도 독서경영의 전통을 그대로 살리고 있다. 직원 25명의 작은 기업이지만 도서구입비는 연간 2500만원에 달한다. 1인당 평균 100만원꼴이지만 개인별로는 연간 몇십만원부터 600만~700만원까지 다양하다. 그래도 책만큼 최소 비용으로 최대효과를 내는 게 있겠느냐고 한 사장은 반문한다.

"책 읽는 문화가 강제로,급하게 한다고 형성되겠습니까. 우리는 독서를 경영의 방편으로 삼기보다는 기업문화로 자리잡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책을 읽는 환경이 자연스럽게 정착돼야 창의적 아이디어도 자연스럽게 나올 테니까요. "

이 전 사장과 함께 이메이션코리아의 창립 멤버인 한 사장도 독서로 쌓은 '내공'의 덕을 톡톡히 봤다. 평소 읽은 경제 · 경영서에서 많은 아이디어를 얻었던 것.고객과 현장의 흐름을 놓치지 않으면서 경쟁에서 이기는 방법 22가지를 담은 《이기는 습관》(전옥표 지음)을 읽고는 너무 좋아서 전 직원에 한 권씩 선물하기도 했다.

"TDK와 익스트림맥(ExtremeMac) 등 새로운 브랜드와 함께 이전에는 다루지 않았던 헤드폰,오디오 등 고가의 가전제품을 한국에 선보이면서 《귀족마케팅》(김상헌 외 지음)의 도움을 많이 받았습니다. 20만~30만원이 넘는 고가의 헤드폰과 오디오 액세서리는 마니아층을 겨냥한 귀족 마케팅으로 접근해야 하니까요. 2006년 이후 메모렉스(Memorex)라는 브랜드를 선보일 때에는 《컬쳐코드》(클로테르 라파이유 지음)를 통해 시장에 속한 이들의 문화와 생활 속 코드를 먼저 파악해야 한다는 걸 알게 됐죠."

지금은 CEO로서 의사결정에 필요한 직관과 통찰력을 책에서 얻고 있다는 한 사장은 어느 책에서 읽은 거라며 "인간의 두뇌는 세상에서 가장 뛰어난 재고조사 시스템"이라고 말했다. 제품이 6만가지나 되는 3M의 재고조사 시스템보다 더 뛰어난 것이 사람의 머리라는 것.뇌에는 어릴 때 읽은 동화책부터 지금까지 읽은 수많은 책과 지식,경험이 구석구석 저장돼 있다가 필요할 때 바로 직관과 통찰의 형태로 인출된다는 얘기다.

CEO 취임 후 역사 속에서 전략적 직관이 어떻게 다양한 분야에 적용됐는지 소개하는 《제7의 감각:전략적 직관》(윌리엄 더건 지음)을 다시 읽었다는 그는 "CEO에게 정말 필요한 것이 직관이며 책은 직관을 형성하는 밑거름"이라고 강조했다.

"CEO가 되기 전에는 원서를 포함해 연간 50권 안팎을 읽었는데 지금은 책 읽을 시간이 줄어서 너무 아쉬워요. 그래도 차에 한 권,피트니스클럽에 한 권,머리맡에 한 권 하는 식으로 곳곳에 책을 갖다 놓고 틈틈이 읽습니다. 요새는 특히 류시화 시인이 엮은 잠언시집 《지금 알고 있는 것을 그때도 알았더라면》이나 《시 읽는 CEO》 같은 시집류가 좋더군요. 감성이 충전되면 직관도 더 풍부해지니까요. "

서화동 기자 fireboy@hankyung.com

한국경제·교보문고 공동기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