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많이 죽여 이젠 어떻게 죽일까 고민"

"하도 많이 죽여서 이제는 어떻게 하면 좀 다르게 죽일까를 고민하고 있습니다.(웃음)"

현재 안방극장 최고의 화제 드라마인 KBS 2TV '추노'의 결말은 이종혁(36)의 손에 달렸다.

그가 연기하는 황철웅은 감정이 메마른 '살인 기계'로 조선 팔도를 돌며 많은 선비와 양민의 목숨을 가차없이 끊었다.

그런데 이는 오로지 '추노'의 주인공인 송태하(오지호 분)와 이대길(장혁)을 잡아 죽이기 위한 과정일 뿐이다.

그러니 그가 '추노'의 결말을 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종혁은 "제주도에서 제일 많이 죽인 것 같다.

누가 그러는데 30여 명을 죽였다고 하더라"며 "사극에서 한 사람이 이렇게 많은 살인을 하는 것은 아마 내가 처음일 것 같다"고 말했다.

'살인 기계'가 된 소감이 어떠냐고 묻자 "무슨 소감이 있겠냐"며 웃은 그는 "다만 매번 칼을 휘두르는 내 연기가 단조롭지 않고 어떻게 하면 좀 다르게 보일 수 있을까를 고민하게 된다"고 말했다.

황철웅은 좌의정 이경식과 함께 '추노'의 악역이다.

그런데 황철웅은 '작은' 연민을 불러일으킨다.

가난한 무관 출신으로 야망 때문에 좌의정의 뇌성마비 딸과 결혼한 사연과 그로 인해 좌의정의 손아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살인 기계가 될 수밖에 없는 처지 탓이다.

"황철웅은 불쌍한 인간입니다.

원래는 안 그랬는데, 좌의정의 술수에 휘말려 혼란스러워지면서 점점 극악해지죠. 애초에는 송태하에 대한 열등감이 있는 정도였죠. 이성적이면서도 감성적인 캐릭터인데, 현재 상황에서는 좌의정이 말리는 데도 송태하를 끝까지 쫓아가 죽이려 합니다.

그것은 끝까지 가 보자는 오기이기도 하고, 이제는 더 이상 좌의정의 조종을 받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이기도 합니다.

"
송태하-언년-이대길의 3각 멜로가 부각하면서 전개가 느슨해진 '추노'가 그래도 여전히 시청률 30% 대를 유지하는 까닭은 이러한 황철웅의 활약 덕분이다.

주인공들을 쫓는 그의 무표정한 얼굴과 악한 기운이 물씬 뿜어나오는 무공이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덕분에 후반부로 접어들면서 "'추노'의 주인공은 황철웅"이라는 반응이 나오기 시작했고, 이종혁의 주가도 자연히 급등했다.

이런 현상은 그의 이름을 알린 영화 '말죽거리 잔혹사' 이후 6년 만이다.

그는 '말죽거리 잔혹사'에서 피도 눈물도 없는 선도부장 차종훈 역을 맡아 인상적인 연기를 펼쳤다.

"지금도 '이종혁' 하면 '선도부장'이라는 말이 나와요.

그러다 최근에는 '황철웅'이 추가됐죠. 제 나름대로는 그동안 차근차근 잘 성장해왔다고 생각하지만 아직 갈 길은 멀어요.

이제 중간 정도 올라왔다고 할까요.

저도 한번은 정상에 올라가 봐야 하지 않겠어요? 조급해하지 않으려 노력하지만 쉽지는 않습니다.

작년에는 연극만 하면서 지냈는데, 금세 잊히는 게 아닌가 걱정도 됐어요.

그래도 제가 저 자신을 믿어야지 어쩌겠습니까.

다행히 '추노'가 잘돼 좋습니다.

"
'추노'에서 황철웅이 빛나는 또 하나의 이유는 이종혁의 탁월한 액션 연기 때문이다.

'말죽거리 잔혹사', '비천무' 등을 거치며 액션에 대한 감을 익힌 그는 이번 드라마에서 폼 나는 '칼잡이'로 자리매김했다.

"액션 연기는 크게 어려울 게 없어요.

무술감독님이 '연습할 때는 열심히 안 하는 것 같은데 촬영에 들어가면 잘한다'고 하시네요.

(웃음) 유연하다는 소리는 듣습니다.

다만 아쉬운 것은 드라마가 후반으로 접어들면서 촬영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해 액션에 더 욕심을 못 내는 것입니다.

송태하와 제주도에서 맞붙은 장면도 더 멋지게 나올 수 있었는데 시간이 없어 더 못 찍었어요.

"
이종혁은 "팔색조 같은 연기자가 되고 싶다.

악역 외에도 다양한 역할을 소화할 기회가 오기 바란다"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 윤고은 기자 pretty@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