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연자보다 스태프가 더 웃겨!
허준 MC가 새로운 게임에 도전한다. 그는 이 게임에서 최고 레벨에 도달해야 귀가할 수 있다. 처음에는 한두 시간이면 끝낼 것이라고 호언했지만 때로는 19시간,최대 34시간까지 걸린다. 그 사이 말끔하던 그의 얼굴에는 다크서클이 내려앉는다. 어느 순간 정장을 벗어던지고 트레이닝복으로 갈아입는다.

시간이 오래 걸리는 만큼 다양한 사건들이 생긴다. 그가 화장실에 가는 동안 친구가 게임을 대신해준다. 여자친구는 기다림의 지루함을 달래기 위해 곁에서 뜨개질을 시작했지만 그보다 먼저 끝낸다. 그런데 허 MC가 게임을 마치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하는 김세이 작가는 돌연 '열폭'('열등감 폭발'이란 뜻의 누리꾼 은어)한다. "오늘 야구 시합 판정이 잘못됐다"며 그 이유를 자세히 설명하는 것이다. 스태프가 허 MC의 도전을 촬영하는 동안 '뻔뻔하게' 다녀온 야구경기를 두고 하는 말이다. 시청자들은 이 장면을 보고 깔깔 웃는다. 누리꾼들은 김 작가에 대해 "일과 취미를 다 잡은 쿨한 작가"로 평가한다.

게임채널 온게임넷이 격주 화요일 오후 4시 방송하는 리얼리티 쇼 '켠 김에 왕까지'의 내용이다. 제목은 게임을 시작한 김에 최고 레벨(왕)까지 도달하자는 의미.허 MC가 매번 다른 게임에 도전해 최고 레벨에 도달해야 귀가를 허락받는 프로그램이다. 때로는 30시간 이상 촬영해 1~2시간으로 편집해 내보내는 이 프로그램에서는 스태프가 때로는 출연자보다 더 재미있고 웃긴다.

TV 밖에 있던 스태프들이 TV 속으로 들어와 출연진을 능가할 정도로 맹활약하고 있다. 간간이 얼굴을 비추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최근에는 고정코너까지 생겼다. 연출자가 게스트로 나서 출연자들과 함께 연기하기도 한다. 출연자와 스태프의 경계가 사라지고 있는 것.다큐멘터리와 쇼를 넘나드는 장르 파괴 현상도 뚜렷해졌다. 리얼리티 쇼가 정착하면서 발생한 현상이다.

스태프는 대부분 각본대로가 아니라 즉흥적으로 행동하고,그 장면들이 그대로 방송된다. 예전에는 NG 컷으로 여겨질 만한 장면들도 전달된다. 화장하지 않은 '쌩얼'로 등장하는 스태프에게서 시청자들은 동질감을 느낀다. 스타들을 지근거리에 지켜보는 스태프들에게 부러움마저 갖는다. 예전의 NG 컷은 요즘에는 고급 정보로 인식된다. 정보가 리얼할수록 짜릿함은 커진다.

매주 금요일 밤 12시에 방송하는 온스타일의 '스타일매거진'에는 쌩얼로 출연하는 한 스태프가 있다. 차예련 MC의 스타일리스트 한혜연씨다. 카메라를 보면 숨어 버리는 다른 스타일리스트와 달리 카메라 앞에서도 차 MC와 자연스럽게 이야기하다 고정 출연하게 됐다. 그는 패션 전문가로서 해박한 지식과 특유의 넉살로 패션정보 프로그램에 리얼리티 요소까지 더해주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유명한 PD와 스태프는 시청률이 높은 지상파 예능 프로그램에서 먼저 탄생했다. KBS 2TV '1박2일'과 MBC '무한도전'이 대표 격이다. '1박2일'에서 신입 유호진 PD를 골려주기 위해 강호동과 김C가 싸우는 척했던 장면은 한 회 분량이 나오고도 남을 재미있는 에피소드로 기억되고 있다. '묵찌빠의 달인' 지상렬 카메라 감독은 '잠자리 복불복 게임'에서 묵찌빠로 출연진을 제압해 야외에서 재우기도 했다.

'무한도전'의 김태호 PD는 최근 출연자로 데뷔했다. 김 PD는 '무한도전'의 인기에 힘입어 유명해졌지만 방송 중 얼굴을 간간이 비추는 데 그쳤다. 그러나 이번에는 출연자 중 한 명이 제주도 촬영지에서 방뇨한 사건을 목격한 증인으로 나와 코미디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진지함으로 웃음을 줬다.

이 프로그램에서는 '최코디'(정준하 코디네이터),'정실장'(박명수 전 매니저),'미소코디'(유재석 코디네이터) 등으로 불리는 스태프가 맹활약 중이다. 출연자와 짝지어 퀴즈를 풀어보는 에피소드들을 제작 · 방송하기도 했다.

유재혁 기자 yoo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