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성탄절에 은영,은비,은재 삼남매의 집에 아무도 예상치 못한 크리스마스 선물이 배달된다. 바로 로또 1등 당첨.초라한 변방을 벗어나 서울 압구정동 한양아파트에 입성하게 된 이들에게 펼쳐질 미래는 밝아 보였다. 하지만 4년 후.어김없이 돌아온 크리스마스에 삼남매는 끔찍한 악몽에 시달리게 된다.

소설가 이홍씨(31 · 사진)가 2007년 오늘의 작가상 수상작 《걸프렌즈》 이후 두 번째로 발표한 경장편소설 《성탄 피크닉》(민음사)은 "'거주권'만 발부되고 '영주권'은 발부되지 못한 듯한 가족의 이야기"(문학평론가 김미현)다. 멀리 있을 때는 천국으로 보였던 강남에서 맞은 크리스마스에 지옥을 경험하는 삼남매의 이야기를 이씨는 정교하게 그려냈다.

강남 압구정동에 들어서기 전만 해도 단란하고 평범했던 가족은 산산조각난다. 부모는 이혼하고 삼남매만 덩그러니 강남에 남겨진다. 그런데 삼남매의 삶도 순탄하지 않다. 첫째 은영은 명문대에 입학해 과외를 하며 알뜰살뜰 살아가는 '똑순이'지만 연거푸 취업에 실패한다. 둘째 은비는 잃을 게 많은 부유한 남자들을 등치는 '꽃뱀' 노릇을 하며 사치를 일삼는다. 셋째 은재는 학교에서 따돌림당하며 게임에만 몰두하는 '은둔형 외톨이'가 된다. 이들의 좌절과 상실감은 부모의 연줄로 척척 취업하는 강남 부유층 자제들의 이너서클 '카프',호스트바와 백화점에서 물쓰듯 돈을 쓰는 지희 등 '진짜 강남인들'과 얽히면서 극대화된다. 삼남매와 강남의 갈등은 결국 살인으로 귀결된다. 은비의 협박에 돈을 뜯기던 강남 부유층 중년 남자 '최 원장'이 삼남매의 아파트에 쳐들어오자,이들은 우발적으로 최 원장을 감금하고 결국 살해하게 된다. 뒷수습을 위해 삼남매는 크리스마스에 각각 골프가방,명품 여행가방,배낭에 토막난 사체를 나눠 짊어지고 집을 나가야 하는 상황에 이르게 된다.

이씨는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 젊은 세대가 꿈과 희망을 담고 싶었던 가방에 실패와 좌절과 절망을 담게 되는 이야기에서 소설을 구상했다"고 설명했다.

이들이 겪는 비극은 강남이라는 욕망의 공간에 온전히 끼어들지 못하는 데에서 비롯된다. 주소지만 강남이지 문화자본이나 권력자본 등 강남 부유층의 특성을 지니지 못한 '서민'들은 자아가 붕괴되는 씁쓸함을 경험하게 된다. 이를 온몸으로 겪는 인물이 은영이다. 은영은 어떻게든 카프에 들어가 취업을 해보겠다는 생각으로 한 카프 멤버와 잠자리를 같이 한다. 이씨는 "인간은 여러 제약에 부딪치다 보면 견고하고 단단한 신념이 무너지게 마련"이라고 말했다.

강남의 '박힌돌'에 치여 '굴러온 돌' 신세를 면치못하는 삼남매의 처지는 초라하다. 이는 강남의 화려한 크리스마스와 뚜렷한 대조를 이룬다. 이씨는 "아름답고 황홀하고 커다란 빛을 봤을 때 인간의 절망감이 더욱 깊어진다고 생각한다"면서 "그런 지역에 와서 좌절과 소외를 느끼면서 부정적으로 변하는 인간군상을 그리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고운 기자 cca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