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송찬호씨(50)가 9년 만에 내놓은 시집 《고양이가 돌아오는 저녁》(문학과지성사)은 오랜 기다림을 충분히 보상하듯 매력적인 시들이 여럿 선사한다. 과작(寡作)의 시인이 긴 침묵을 깨고 낸 시집답다.

이번 시집에서는 감각적인 포착이 돋보인다. 표제작 <고양이가 돌아오는 저녁>에서 '이미 궁기는 감춰두었건만/손을 핥고/연신 등을 부벼대는/이 마음의 비린내를 어쩐다?'라고 생각하던 끝에 내놓은 해결책은 '처마 끝 달의 찬장'에 들어 있던 '맑게 씻은/접시 하나'다. '오늘 저녁엔 내어줄 게/아무것도 없구나/여기 이 희고 둥근 것이나 핥아보렴.'

고양이는 이번 시집에 자주 등장한다. '그리고,거실에 홀로 남은 낡은 피아노의/건반은 고양이들이 밟고 지나다녀도/아무도 소리치며 달려오는 이 없다/이미 시간의 악어가 피아노 속을/다 뜯어먹고 늪으로 되돌아갔으니//구석에 버려진 울고 있던 어린 촛불도/빈집이 된 후의 최초의 밤이/그를 새벽으로 데려갔을 것이었다. '(<빈집> 중)

시인과 우리의 주변에 지천인 일상적이고 평범한 것들이 시를 통해 또 다른 매력을 갖춘다. 시인의 집 부근에 많이 서식한다는 도둑고양이,봄이 되면 여기저기 피어나는 맨드라미며 백일홍이며 꽃들은 새로운 생명력을 보여준다.

여러 시편 중 눈이 가는 작품은 <만년필>이다. '이것으로 무엇을 이룰 수 있었을 것인가 만년필 끝 이렇게 작고 짧은 삽날을 나는 여지껏 본 적이 없다 …(중략) 하지만 나는 책상 서랍을 여닫을 때마다 혼자 뒹굴어다니는 이 잊혀진 필기구를 보면서 가끔은 이런 상념에 젖기도 하는 것이다-거품 부글거리는 이 잉크의 늪에 한 마리 푸른 악어가 산다. '

송씨는 이번 시집으로 대산문학상을 받았다.

이고운 기자 cca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