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분야와 마찬가지로 국내 화단에서도 30~40대 젊은 작가와 60대 이상 원로 사이의 틈바구니에 서 있는 전후 베이비붐 세대 화가(40대 후반~50대)들의 입지는 상대적으로 좁은 것 같아요. 그러나 기본기에는 충실한 세대지요. "(김강용)

"그동안 '낀 세대'로 불리던 중견 작가들이 정치적,경제적 과도기를 거치면서 선배들이 가진 선동적인 카리스마도,디지털 세대인 후배들이 가진 당돌함도 찾아보기 힘들다는 평가를 받아온 것도 사실입니다. 그래도 도전정신은 살아있습니다. "(유봉상)

지난 50년 동안 사회 정치적 전환기를 거치며 치열한 내부경쟁을 통해 탄탄한 실력을 쌓아온 베이비붐 세대 미술가들이 저마다 독특한 '손맛'이 깃든 신작을 쏟아내며 늦가을 화단을 달구고 있다.

최근 서울 인사동 청담동 등 화랑가에는 '못 회화 작가'유봉상씨를 비롯해 '벽돌 작가' 김강용,인기 구상회화 작가 김재학,회화같은 사진 작가 민병헌,이수동,김종학,김춘수,서용선,정경연,주태석,정현숙,한오,설원기,신지원씨 등 30여명이 개인전을 열거나 준비 중이다. 지난해 미술관,상업화랑들이 이들 작가의 전시 수익성이 낮다며 초대 · 개인전 유치를 꺼렸던 것과는 확연히 다른 양상이다.

김윤섭 한국미술경영연구소장은 "경기회복 기대감과 맞물려 '바닥'을 다져가는 미술 시장은 지금 미래의 '블루칩'찾기에 분주하다"며 "중견 작가의 작품이 시장에 쏟아져 나오는 것은 이 같은 현상을 반영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줄잇는 전시회=한국사회 고도성장기의 중심에 섰던 베이비붐 세대 작가들은 얄팍한 트렌드에 의지하기보다는 끊임없는 도전 정신과 자기성찰,혁신적 시도에 독창성까지 가미된 작품들을 생산해 내고 있다. 극사실적인 벽돌 그림으로 유명한 김강용씨(58)는 오는 12일부터 다음 달 31일까지 경기도 파주출판단지 내 갤러리 박영에서 개인전을 펼친다. 캔버스에 접착제와 혼합한 모래를 붙인 뒤 그 위에 적색,청색,녹색,분홍색 등 다양한 천연 모래로 벽돌 형상을 그린 신작 40여점을 들고 나온다.

재불 작가 유봉상씨(49)의 개인전은 서울 강남구 신사동 갤러리현대 강남점에서 10일 개막된다. 유씨는 단색 캔버스에 작은 못들을 촘촘히 박아 리듬감 있는 화면을 만들어 내는 작가. 작게는 2만개,많게는 7만개까지 못을 박아 이미지를 만든 후 색칠한 풍경화 등 30여점을 건다.

유망한 작가를 유치하기 위한 미술관과 화랑들의 경쟁도 치열하다. 인터알리아는 서양화가 고낙범을 비롯해 배병우,장연순,한정욱씨 등 중견작가 4명을 참여시킨 '색을 거닐다'전을 기획했다. 가나아트갤러리는 구상작가 김종학씨(56)를 끌어들여 초대전을 열고,청작화랑은 탄탄한 구상 실력을 갖춘 김재학씨(57)의 작품전,에르메스아틀리에는 국제성을 인정받고 있는 설치 작가 김수자씨(52)의 개인전을 각각 준비 중이다.

이 밖에 금호미술관은 드로잉 작가 설원기씨(58),송아당갤러리는 주태석(55) · 이수동씨(50),세종갤러리는 한국 화가 신지원씨(58),갤러리 리즈는 정현숙씨(53),필립강 갤러리는 김중식씨(48),토포하우스는 황소를 투박하게 그리는 한오씨(52)를 발탁해 신작을 선보이고 있다.

◆컬렉터들 관심 집중?=베이비붐 세대 작가들은 젊은 작가에 비해 어느 정도 작품성이 검증된 데다 가격이 상대적으로 저렴해 장기 투자차원에서 컬렉터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는 게 화랑가의 분석이다. 또 베이버 부머가 컬렉터의 중심세력으로 떠오르면서 동시대 작가에 눈을 돌리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김창실 선화랑 대표는"30~40대 작가는 아직 실험성이 강하지만 50대 작가들은 검증을 거쳐 가격 변동성이 비교적 크지 않다"며 "글로벌 트렌드를 따라가면서 한국적 멋을 잘 표현하느냐가 상품성의 잣대가 된다"고 말했다.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