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차대전 당시 영국군은 튀르크군이 담배에 목말라 있다는 정보를 입수했다. 그러자 영국군 정보 장교 메이너츠하겐은 담배 수천 보루에 투항을 권하는 선전문구를 써서 튀르크군 진영에 뿌렸다. 튀르크군은 선전문구를 비웃으며 담배를 맛있게 피웠다. 그러나 이것은 단순한 선전전이 아니었다. 그냥 담배가 아니었던 것이다. 다음 날 영국군이 튀르크군 진영을 공격했을 때 '아편 담배'를 피운 튀르크군은 모두 몽롱한 상태로 늘어져 있었다.

#기원전 539년,페르시아 제국의 키루스 왕은 철벽 요새인 바빌론을 점령하기 위해 저수지 둘레에 벽을 쌓고 강과 저수지를 잇는 운하를 팠다. 이어 유프라테스강과 운하,저수지 사이의 벽을 한꺼번에 허물어 성의 물길을 돌려버렸다. 물은 운하를 따라 저수지로 밀려들었고 강 수위는 점점 낮아졌다. 바빌론 사람들은 낮아진 수위를 눈치 채지 못했다. 눈치를 챘다 해도 수문 고장과 같은 흔한 원인 탓으로 돌렸을 것이다. 페르시아 군대는 한밤중에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물속을 걸어 도시로 들어가 성문을 열었다.

#2차대전 중 미군은 일본군이 점령한 키스카 섬을 봉쇄하고 매일같이 폭격을 해댔다. 오도 가도 못하게 된 일본군 중장 가와세 시로 제독은 단순하고도 과감한 계책을 내놓았다. 짙은 안개가 낀 아침,자신들이 바라는 날씨가 되자 일본군 5000명은 함대에 나눠 타고 섬을 몰래 빠져나왔다. 단 한 명도 다치지 않았다. 이를 몰랐던 미군은 아무도 없는 섬을 2주간 폭격하고 3만5000명을 동원한 상륙작전을 펼쳤으며,미군끼리 서로 오인해 전투까지 벌여 수백 명의 전사자를 냈다.

《별난 전쟁,특별한 작전》에 나오는 장면들이다.

이 책은 고대의 공성전(攻城戰)부터 냉전시대의 정보전까지 '특별하고 기발한' 전략 달인들의 전술을 드라마틱하게 보여준다. 뛰어난 전쟁 영웅들의 '명품 전술'과 정보를 이용한 기만술,역정보를 활용한 속임수의 이면도 들춰낸다. 이를 통해 '전쟁에서 이기고 싶다면 생각의 틀을 깨고 뒤집어라'는 교훈을 전한다.

유럽에 흑사병이 퍼진 내막도 '별난 전쟁' 탓이었다. 1343년 흑해의 상업도시 카파 인근 마을에서 제노바 상인과 이슬람 상인의 사소한 다툼 때문에 제노바와 몽골이 맞붙게 됐다. 제노바인들이 도시의 문을 닫아걸고 항전한 지 4년 뒤 몽골군 진영에 흑사병이 돌았다. 그러자 몽골군은 전염병으로 숨진 병사의 시신을 투석기에 매달아 성 안으로 던졌다. 결과는 참혹했다. 병든 제노바인들을 태운 배는 지중해를 건너 시칠리아에 도착한 뒤 유럽 전역에 흑사병을 퍼뜨렸다.

1950년대 영 · 미와 소련의 '스톱워치 · 골드' 정보전은 어떤가. 소련의 독특한 암호 시스템을 뚫지 못한 미국 중앙정보국(CIA)과 영국 해외첩보국(SIS)은 베를린에 땅굴을 팠다. 군사 정보를 도청하기 위해 소련의 전신 · 전화케이블 다발을 노린 것.이들은 땅굴이 소련인들에게 발각될 때까지 11개월 동안 소련군의 고급 정보를 캐내며 좋아했다. 미국의 핵 장비 때문에 소련이 유럽을 급습하지 못하고,소련과 동독 사이가 별로 좋지 못하다는 사실도 알아냈다.

그러나 한술 더 뜬 것은 소련이었다. 소련 국가보안위원회(KGB)는 처음부터 땅굴을 알고 있었다. KGB는 영국에 심어놓은 스파이를 통해 땅굴의 존재를 알았지만 그의 신원 노출을 막기 위해 붉은 군대에 끝까지 사실을 알리지 않았던 것이다.

고두현 기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