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15개국 40개 무용단이 참가하는 국내 최대 규모의 무용축제가 가을을 수놓는다.

다음 달 5일부터 24일까지 서울 예술의전당과 서강대학교,경기도 고양아람누리 등에서 펼쳐질 제12회 서울세계무용축제(SIDance 2009)를 통해서다. 이번 축제는 정해진 공연장만 고집하지 않고 서울과 일산 일대 공원,카페,지하철,박물관 등으로 시민들을 직접 찾아나설 계획이다. '가을잔치'에 걸맞게 무대를 다양하게 활용하겠다는 얘기다.


◆음악의 무대

관능…현란…파격…열정의 춤판이 벌어진다
축제 개막작인 이스라엘 공연 '몽거'(5일,서강대)는 잔인한 여주인에게 학대당하던 하인 10여명이 반란을 일으킨다는 줄거리를 통해 현대인이 안고 있는 문제를 꼬집는 작품이다.

안무가인 바락 마샬은 "우리 모두는 생존을 위해 뭔가를 팔고 있다"면서 "타협이란 이름 아래 자신을 잃고 있는 모습을 조명하는 작품"이라고 말했다. 연극적인 면모를 지닌 이 무용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건 음악이다. 클래식뿐 아니라 집시,발칸,인도네시아 등 다양한 지역의 음악이 무대를 채운다. 음악뿐 아니라 소음도 활용했다.

이탈리아 아르테미스 무용단의 '이상한 사람들-페데리코 펠리니를 위하여'(19일,예술의전당)는 부제 그대로 이탈리아 영화감독 펠리니의 작품에서 영감을 얻은 작품.영화 '대부'의 음악으로 잘 알려진 작곡가 니노 로타의 선율이 흘러내린다. '길''달콤한 인생' 등 펠리니의 대표작 6편에 등장하는 인물과 느낌,장면이 무용에서는 어떻게 표현될지 관심을 모은다.

슬로베니아 국립 마리보르 발레단의 '라디오와 줄리엣'(15일,예술의전당)은 음악이 색다르다. 우리나라에서는 영화 '시클로'에 삽입된 '크립'(creep)이란 곡으로 잘 알려져 있는 영국 록그룹 라디오헤드의 음악을 사용했다. 록과 발레의 만남인 셈.


◆관능의 무대

관능…현란…파격…열정의 춤판이 벌어진다
축제 폐막작인 이탈리아 국립 아테르발레토 무용단의 '로미오와 줄리엣'(23 · 24일,고양아람누리 아람극장)에서는 속옷에 가까운 무대의상을 걸친 무용수들이 아름다운 육체로 열정적인 사랑을 표현한다. 셰익스피어의 원작과는 달리 이 공연에선 로미오와 줄리엣의 죽음을 보여주며 시작된다.

원작의 주요 장면을 현대적인 감각으로 번안한 점이 눈에 띈다. 원작에서 어린 연인들이 처음 만나는 장소는 무도회였으나 공연에서는 오토바이를 탄 폭주족들의 집회로 바뀐다. 발코니에서 사랑의 밀어를 속삭이는 낭만적인 장면은 도발적으로 바뀌었다. 아테르발레토 무용단의 로미오와 줄리엣은 거대한 환풍기 안에서 열렬하게 사랑을 나눈다. 두 연인의 사랑이 이뤄질 수 없는 이유를 구구하게 설명하지 않는 대신,많으면 한 번에 로미오와 줄리엣 10쌍을 등장시켜 사랑과 열정 그 자체를 강조했다.

'라 푸에르타 아비에르타-열린 문'(20 · 21일,예술의전당 토월극장)을 선보이는 스페인 이사벨 바욘 플라멩코 무용단도 주목할 만하다. 스페인 관객이 '가장 에로틱한 플라멩코 댄서'로 꼽는다는 바욘은 신비롭고 열정적인 플라멩코 무대를 선보일 예정이다.

사랑을 다루지만 뜨거움은 절제돼 있는 작품은 그리스 루트리스루트 무용단의 '침묵의 소나기'(17일,예술의전당)다. 호메로스의 《일리아드》 중 트로이 장군 헥토르와 아내 안드로마케의 마지막 만남에서 착안한 2인무.


◆한국의 무대

연산군은 처용무의 달인이었다고 한다. 무용단 '축제의 땅'이 올리는 '왕의 춤'(12 · 13일,예술의전당)은 '춤꾼' 연산군을 조명한다. 공연에서 연산은 직접 처용무를 추고,연산의 권력이 스러져가는 막바지에서는 궁녀들의 화려한 판굿이 펼쳐진다.

'힙합의 진화 Ⅲ'(15일,서강대)은 거리의 춤 힙합이 어떻게 무대예술로 변모하는지 볼 수 있는 기회다. 이외에도 한국과 싱가포르 양국 예술가들이 합작한 멀티미디어 무용 '노란 원숭이'(15 · 16일,예술의전당),여성 3대를 다룬 NOW무용단의 '안팎'(20일,예술의전당) 등이 관객들을 만난다.

많은 공연을 보려면 할인율이 최대 60%까지 적용되는 프리패스나 패키지를 끊는 게 유리하다. 자세한 일정은 홈페이지(www.sidance.org)에서 확인할 수 있다. (02)3216-1185

이고운 기자 cca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