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님이면은 나를 사랑하련마는 밤마다 문 밖에 와서 발자취 소리만 내고 한번도 들어오지 아니하고 도로 가니 그것이 사랑인가요/ 그러나 나는 발자취나마 님의 문 밖에 가본 적이 없습니다/ 아마 사랑은 님에게만 있나봐요. // 아아,발자취 소리나 아니었더라면 꿈이나 아니 깨었으련마는/ 꿈은 님을 찾아가려고 구름을 탔었어요. '(한용운 <꿈 깨고서>)

이 시에서 '발자취'라는 시어는 여러 번 등장하며 시의 전체적인 분위기를 형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하지만 우리말 '발자취'와 정확히 대응하는 단어가 없는 외국어로 이 시가 번역될 때 문제가 생긴다. 양한주 독일 보훔대 한국학과 교수는 '제3회 세계번역가대회'의 발제문에서 한 독어번역본을 소개했다. 그 번역본에서 1행의 '발자취 소리'는 독일어에는 원래 없는 단어(Fu?}gera?ausch)로 직역됐다. 그런데 어색할 뿐더러 심지어 독일어에서 발냄새를 뜻하는 단어(Fu?}geru?ache)와 발음이 유사하다는 문제가 있었다. 그만큼 한국 문학을 다른 언어로 옮기는 일은 쉽지 않다.

국내외 번역가와 학자,작가와 편집자 등 150여명이 참석해 문학 번역에 대해 토론하는 자리가 마련된다. 한국문학번역원은 '번역의 질적 향상을 위한 방향 모색'을 주제로 23일과 24일 양일에 걸쳐 서울 코엑스에서 '제3회 세계번역가대회'를 개최한다고 밝혔다. 이 대회는 '좋은 번역이란 무엇인가''번역의 제 문제''번역 교육과 평가''번역현장의 제 문제' 등 4개의 분과로 나뉘어 진행된다.

23일 열리는 2분과 '번역의 제 문제'에서 고혜선 단국대 스페인어과 교수는 김원일의 《마음의 감옥》에서 '상주가 친정인 여자'라는 뜻의 '상주댁'을 스페인어로 옮길 때 마땅한 단어가 없다는 것을 예로 들며 두루마기,김치,불고기 등 한국적인 사물을 번역할 때 일어나는 고민을 털어놓는다.

여러 한국 문학 작품을 해외에 소개해온 안선재 떼제 공동체 수사는 24일 분과 4 '번역현장의 제 문제'에서 한국 작가들의 성향에 대해 비판한다. 그는 "한국의 기성 작가들은 오늘날 포스트모더니즘 글쓰기의 특징인 복합적 관점,모호한 형식,언어유희를 잘 활용하지 않는다"면서 "너무나 많은 한국 소설이 까다로운 해외 독자들을 매료시킬 만한 요소를 갖추고 있지 못하다"고 지적한다.

행사 전날인 22일 광화문에서 열린 간담회에서 소설가 김영하씨의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출간을 담당했던 미국 하코트 출판사의 제나 존슨 편집장은 보편성과 특수성을 두루 갖춘 문학 작품이 해외 독자들에게 승산이 있을 거라고 말했다.

존슨 편집장은 "김씨가 작품에서 묘사한 도시에서의 고립감이나 소외감은 미국 독자들도 느끼는 보편적 감정"이라며 "문화적 공통성과 차이점을 함께 느낄 수 있는 독특한 작품이어서 현지 언론에서 호평을 받고 7500부 정도 판매되는 등 좋은 반응을 얻었다"고 말했다.

그는 "자국의 문화를 이국적으로만 그리지 않고,예를 들어 대한민국 서울에 사는 사람들과 미국인들이 얼마나 비슷한지 보여주는 이야기가 호응을 끌어낸다"고 덧붙였다.

이고운 기자 cca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