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 역사의 정직한 버전을 만들고 싶었어요. 패배자들의 역사도 보여주고 싶었죠."

《신》(전 6권) 완간 후 국내 100만부 판매 돌파를 기념하기 위해 내한한 베르나르 베르베르(48)는 3일 기자간담회에서 《신》을 쓰게 된 동기에 대해 이렇게 대답했다. 그는 "인간이 개미 앞에서 신과 같은 존재라면 인간도 신 앞에서는 '개미'에 불과하지 않겠는가 생각했다"며 "독자들에게 자신이 신이라면 어떤 결정을 내릴지 질문하고 싶었다"고 덧붙였다.

베르베르는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프랑스 작가다. 지난해 국민독서실태조사 결과 그는 톨스토이,헤밍웨이에 이어 외국 작가로는 3위에 랭크됐다. 1991년 발표한 《개미》부터 최근작 《신》까지 전세계에서 1500만부가 팔렸고 이 중 3분의 1이 한국에서 나갔다.

베르베르는 그동안 다양한 과학 소재와 기발한 상상력으로 매년 1권 이상의 작품을 세상에 선보였다. 최신작인 《신》에서는 인류의 운명을 놓고 신(神) 후보생들이 벌이는 게임의 세계가 펼쳐진다. 그리스 · 로마 신화를 바탕으로 기독교,유대교,불교 등의 세계관을 버무려 인류의 역사를 정치적으로,철학적으로 살펴본다.

그는 "집필하는 동안 1000명 이상의 등장 인물과 매일 사는 것이 쉽지 않았다"며 "내가 만든 모든 인물들이 행복하고 오래 살길 바랐지만 독자들은 등장 인물의 고난,좌절 등을 더 좋아한다"고 웃었다. 그는 이어 "우리가 사는 세상에도 많은 문제들이 있는 것은 아마 난세에만 영웅이 등장할 수 있다는 신의 뜻이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이번 작품에는 '은비'라는 이름의 한국 소녀가 등장하고 일제 침략,위안부 문제가 구체적으로 다뤄졌다. 베르베르는 "평소 한국 역사에 관심이 많았고 일본에 갔을 때 위안부 문제로 집회하는 분들을 봤다"며 "사실 제 작품에 한국에 관한 것이 조금씩 담겨 있다"고 설명했다.

유독 한국 팬들이 많은 것에 대해서는 "한국인들은 상상력과 창조력이 뛰어나고 미래 지향적이라서 제 작품을 좋아하는 것 같다"며 "프랑스같이 과거의 영광에 얽매인 나라에서는 상대적으로 제 소설이 잘 팔리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프랑스는 또 문맹률이 높은 편인데 반해 한국에서는 젊은이들이 교육을 잘 받기 때문에 제 작품같은 과학소설의 인기가 높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그의 차기작인 《카산드라의 거울》의 주인공은 한국인이다. 미래를 볼 수 있는 소녀와 인터넷 천재 소년의 사랑을 그린 이 작품의 남자 주인공의 이름은 김예빈.그는 "김예빈은 한국 출판사(열린책들)의 사장님의 자녀 이름"이라며 "앞으로 매 작품마다 한국을 더 알리겠다"고 말했다.

김주완 기자 kjw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