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금융위기는 미국 부동산 시장의 버블이 꺼지면서 촉발됐다. 그 고통의 심각성을 생각하면 비눗방울 거품을 뜻하는 버블(bubble)은 너무 부드럽고 몽환적이다. 차라리 욕심을 부린 아빠개구리가 배를 부풀리다가 터져 버리는 상황이 훨씬 리얼한 표현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이번 금융위기를 얘기할 때 위기의 기제가 된 서브프라임 모기지가 각광(?)받는 바람에 부동산 버블 문제가 홀대받은 측면이 있다. 미국 금융 시스템 붕괴와 달러화 몰락 시나리오가 사람들을 사로잡았다. 위기가 한 고비를 넘기자 사람들의 기억도 바뀌었다. 부동산 탓에 금융문제가 생겼는데,금융이 고장나서 부동산에 문제가 생겼다는 착각이 그것이다.

로버트 실러 미국 예일대 교수(경제학)는 《버블경제학》에서 부동산 버블 문제로 위기의 전후를 얘기한다.

"미국은 시작부터 투기판이었다. 1600년대 말부터 투기꾼들은 헐값에 땅을 사들인 다음 후발 이주자들에게 두세 배를 받고 되팔았다. 때때로 토지에 지나치게 비싼 값이 매겨지기도 했는데,훗날 토지가격 폭락과 투자자들의 파산을 초래하는 원인이 되기도 했다. 조지 워싱턴도 투기꾼이었다. "

그러면 이런 투기와 부동산 버블은 왜 발생할까? 그것은 사람들의 비이성적 기질 때문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사람들은 내가 살고 있는 곳이 세상 모두가 선망하는 곳이라는 믿음(스포트라이트 효과)을 지니고 있으며,부동산 가격은 늘 상승할 것이고 새로운 기회가 된다고 기대한다. 더구나 이런 믿음은 강한 전염성을 지닌다.

실러 교수는 부동산 버블을 키우는 이런 군중심리적 현상을 '시대정신(zeitgeist)'이라고 일컫는다. 실체가 없고 시간에 따라 가변적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물가상승률을 감안한 주택 가격은 국민소득 증가와 비례하지 않았다.

부동산 가격 상승은 상승으로 선순환되지만 마찬가지로 하락은 추가적인 하락으로 이어진다. 폭등도 하지만 폭락도 한다. 이런 증폭 메커니즘이 자리잡으면 시장의 자기 조정 여지는 없어진다. 버블이 생겼다 터지는 일이 반복되지만 사람들은 최소한의 보호 방법도 갖추지 못하고 피해에 노출된다. 국가 시스템은 이것을 시장의 논리라고 치부한다. 그렇다면 인간의 가변적이고 심리적인 요인 때문에 촉발되는 피해를 덜 방법은 없을까? 모든 사람이 평등하게 투자정보를 공유할 수 있다면 리스크가 분산될 수 있고 스스로 리스크를 관리하는 일도 가능하지 않을까?

바로 이 지점에서 실러 교수가 주장하는 것이 '금융 민주주의'라는 아이디어다. 포괄적인 재무 상담과 소비자 중심의 금융 감시기구를 설립하는 일,금융계약에 디폴트 옵션을 적용하는 것 등은 사람들의 '야성적 충동(animal spirits)' 때문에 발생하는 금융 재앙을 예방하고 피해를 줄일 수 있는 방법이 될 것이다.

이렇게 투자 정보 인프라의 공유폭을 넓히는 일,이것이 금융의 민주화라는 것이다. 실러 교수가 제안한 10대 아이디어는 정말 아이디어 차원이지만,이번 금융위기의 교훈을 찾는 사람에게 의미있는 사색거리가 될 만하다.

우종근 편집위원 rgbac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