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쁜 사람들도
굳센 사람들도
바람과 같던 사람들도
집에 돌아오면 아버지가 된다.

어린 것들을 위하여
난로에 불을 피우고
그네에 작은 못을 박는 아버지가 된다.

저녁 바람에 문을 닫고
낙엽을 줍는 아버지가 된다.

세상이 시끄러우면
줄에 앉은 참새의 마음으로
아버지는 어린 것들의 앞날을 생각한다.
어린 것들은 아버지의 나라다 아버지의 동포다.

아버지의 눈에는 눈물이 보이지 않으나
아버지가 마시는 술에는 항상
보이지 않는 눈물이 절반이다.
아버지는 가장 외로운 사람이다.
아버지는 비록 영웅이 될 수 있지만….

폭탄을 만드는 사람도
감옥을 지키던 사람도
술가게의 문을 닫는 사람도

집에 돌아오면 아버지가 된다.
아버지의 때는 항상 씻김을 받는다.
어린 것들이 간직한 그 깨끗한 피로….

-김현승의 <아버지의 마음>-

◆아버지의 술잔엔 보이지 않는 눈물이 절반

아버지는 항상 웃고 계신 줄 알았다.아버지의 술잔에 ‘보이지 않는 눈물이 절반’인 것을 그 땐 왜 몰랐을까.가정에서는 한 번도 눈물을 보인 적 없는 ‘영웅’이지만 험난한 바깥 세상과 싸울 때에는 누구보다 강인하면서도 외로운 사람….철이 들고 한 아이의 아버지가 된 뒤에야 알았다.

‘폭탄’과 ‘감옥’과 ‘술가게’ 사이를 바람처럼 떠돌다 집으로 돌아오면 ‘어린 것들을 위하여 난로에 불을 피우고 그네에 작은 못을 박는’ 아버지,세상이 어지러워지면 ‘줄에 앉은 참새의 마음’으로 어린 것들의 앞날을 생각하는 아버지….퇴근 길 문 앞에 서서 하루 종일 짓눌린 어깨를 펴고 옷에 묻은 먼지를 털어내며 얼굴 가득 웃음을 띠는 아버지의 마음은 아름답고 애틋하다.

아버지는 가장 큰 나무다.아이들은 아버지가 만들어준 그늘 아래에서 편안하게 잠을 자고,아버지가 내어주는 열매를 먹으며 자라난다.단단하게 뿌리 내리기 위해 흘리는 땀은 땅 속에 감춰 둔 채 무성한 잎과 튼실한 줄기로 아이들을 보듬어 안는 나무.그래서 아버지는 가장 강하면서도 가장 고독한 이름이다.

전신마비 아들의 꿈을 이뤄주기 위해 아들과 함께 마라톤과 철인경기에 나선 아버지의 마음도 그랬을 것이다.‘달리고 싶다’는 아들의 마음을 특수컴퓨터로 인지한 그는 직장을 그만두고 휠체어를 밀며 달리기 연습을 시작했고,아들이 15세 되던 해 8㎞ 자선달리기 대회에서 완주의 감동을 나눴다.“아빠가 없었다면 해낼 수 없었어요”라는 아들의 말에 “네가 없었다면 하지 않았을 거야”라고 답하는 이들 부자는 ‘팀 호잇’이라는 이름으로 20년 이상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동행’을 멈추지 않고 있다.

아버지의 마음은 속깊은 나이테다.나이 들수록 굵고 튼실해지는 거목.오늘은 소리내어 한 번 표현해보자.가슴 속에 부둥켜 안고 있던 그 한 마디.“존경합니다.아버지!”

고두현 기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