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두쇠는 어디서 온 말일까. 구두 바닥이 닳지 않도록 쇠 징을 박아 신었다는 얘기가 있고,돈에 관한 심보가 그 쇠 징을 닮아 굳건하다는 설도 있지만 유래는 여전히 알쏭달쏭하다.

'한국학의 대가' 김열규 서강대 명예교수와 곽진석 부경대 국어국문학과 교수는 《한국인의 돈》에서 좀 색다른 견해를 내놓는다.

이들은 구두쇠를 '굳+우+쇠'로 나누어 살핀다. '굳'은 '굳다'의 어간이고 '우'는 연결어미이며,'쇠'는 마당쇠,돌쇠 등의 인칭접미사라는 것이다. 그래서 돈에 대해서도 심지가 굳고 재물을 굳게 지키는 사람을 의미한다.

국어사전에서는 구두쇠를 '굳짜'라고도 한다. 그러고 보면 물고기의 단단한 비늘을 굳비늘이라고 하는 것처럼 굳건한 성질과 인연이 큰 것은 틀림없겠다.

구두쇠는 노랑이,짠돌이,기린주머니,자린고비,수전노 등 수많은 유의어를 거느리고 있다. 저자들에 따르면 '노랑은 빛깔 중의 망나니'다. 아예 싹수가 노랗다는 말도 있듯이 노랑돈은 짠돈에 겸해서 꾀죄죄한 돈이다. 자린고비나 짠돌이가 다소 긍정적인 의미를 포함하고 있는 것에 비해 노랑이는 최악의 욕을 먹는 말이기도 하다.

물론 돈은 아껴 쓰거나 인색한 것에 따라 미덕이 될 수도 있고 놀림감이 될 수도 있다. 저자들이 보기에 돈은 사람이 가진 것 중에 가장 고약한 변덕꾸러기다. '간사하고도 교활하다. 요상하기는 천 년 묵은 백여우고 독살스럽기는 만년 묵은 도깨비다. 사람의 마음이며 소망은 아랑곳하지 않는다. 오라면 가고,멈추라면 내닫는 고약한 심술퉁이다. '

이처럼 성질 더러운 돈이 인간의 심리는 너무도 잘 꿰뚫어 본다. '사람들이 자기를 슬쩍슬쩍 미워하다가도 십 년 동안 헤어졌던 임보다도 더 반긴다는 것'과 '저 때문에 더러 목숨까지 건다는 것'을 알고 있다.

이들이 들려주는 돈 얘기는 화폐의 역사뿐만 아니라 돈의 쓰임새와 돈 관련 유명 일화를 남긴 인물,예술작품 속의 돈 등 갖가지 사연으로 퍼져나간다.

모질고 고약한 돈을 누구나 탐내는 이유는 뭘까. 돈이 우리 삶에 주는 효용가치가 그만큼 크기 때문이다. 돈은 행복의 필요조건 중 하나다. 결국 돈의 폐단은 쓰는 사람의 문제이지 돈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쓰는 사람에 따라 돈은 폐(幣)가 되기도 폐(弊)가 될 수도 있다.

'화폐의 폐(幣)는 폐단의 폐(弊)와 헷갈리기 쉽다. 작폐(作弊)한다면 남에게 폐를 끼치고 손해를 준다는 뜻인데,바로 그 폐(弊)가 화폐의 폐(幣)하고 쌍둥이 형제처럼 닮았다. 귀한 폐(幣)라야 할 돈이 오늘날 사회에서 이웃끼리,심지어 가족끼리 폐악 폐의 못된 구실도 하고 있다는 점을 경계하자.'

사실 '돈이 돈을 벌고,돈을 벌기 위해 돈을 버는' 삶은 행복하지 않다. 수단이어야 할 돈이 목적이 되면 모든 불행이 거기서 시작된다.

이 대목에서 저자들이 들려주는 '엽전의 지혜'는 매우 상징적인 교훈을 전해준다. 겉은 둥글지만 가운데 각진 구멍이 뚫린 엽전은 '공방(孔方)'의 뜻을 품고 있는데,원활하고 둥글게 온 세상을 돌고 돌되 떳떳하고 반듯하게 제 구실을 하라'는 것이 원뜻이라고 한다.

해박한 지식과 유머러스한 입담이 잘 어우러진 이 책에는 돈 때문에 마누라 팔아먹은 놈 등의 술자리 얘깃거리까지 풍성하게 담겨 있다.

고두현 기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