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의 대표적인 회계학 교수가 바라본 위기 극복 시기는 언제쯤일까. 여기저기서 금융위기가 끝났다는 얘기가 들려오지만 최종학 서울대 교수의 견해는 사뭇 다르다. 안타깝지만 경제위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그는 단언한다.

그는 《숫자로 경영하라》에서 올 들어 일부 투자은행들이 흑자로 전환했다고 말하지만 이것이 위기가 끝나고 있음을 보여주는 굿(good) 뉴스라 할 수 있느냐고 되묻는다. 한마디로 투자은행의 흑자전환은 회계처리 방식의 변경이 가져온 결과라는 게 그의 진단이다. 투자은행들이 적극적인 로비를 통해 지금 시점에서 불리한 이른바 시가평가제도의 적용을 중지한 데 따른 착시에 불과하다는 얘기다.

2003년부터 2007년까지 세계 주식시장이 상승할 때는 주식과 파생상품들을 단기투자 목적으로 분류해 이에 따른 평가이익을 당기순이익에 포함시켜 실컷 재미를 보던 투자은행들이 금융위기로 주가가 하락한 후에는 이들 주식과 파생상품을 장기투자 목적으로 분류해 평가손실을 당기순이익 계산서에서 빼버렸다는 게 그것이다. 그렇다면 투자은행들은 회계처리방식 변경으로 잠시 부실을 숨기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는 또 세계금융을 위기에 빠뜨린 이유가 저금리 때문이라고만 할 수 있느냐고 묻는다. 그는 미시적인 사안으로 치부할 수도 있는 성과평가와 적정 보상의 문제로 과감히 시선을 돌려 경제위기의 진짜 원인은 미국 금융기관들의 지나친 성과급과 단기 성과평가제에 있다고 말한다.

파산한 투자은행 중 부채가 자기자본의 30배,50배를 초과하는 경우도 있고 보면 그 원인을 저금리 하나로 돌릴 수는 없으며,결국 금리 수준에 상관없이 무모한 행동을 할 만한 인센티브가 있었다고 봐야 하는데 그게 바로 과도한 성과급과 단기에 치중한 평가제도라는 게 그의 논리다.

같은 맥락에서 그는 한때 유행처럼 사용됐고 논란도 많았던 스톡옵션을 회계학자의 관점에서 냉정하게 풀어낸다. 스톡옵션이 미국에서 유행한 진짜 이유는 스톡옵션 부여에 관한 비용을 회계처리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며,비용처리 이후부터 급격히 줄어든 점이 그 증거라고 말한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조셉 스티글리츠 컬럼비아대 교수가 금융위기 해결책으로 제시한 첫째 방안이 스톡옵션 보완책이었던 점을 기억한다면 이것이 단기적 성과에 집착하는 인센티브로 작용한 측면이 있다는 점을 부인하기 어려워 보인다.

어쩌면 여기까지는 이 책의 양념일지도 모르겠다. 회계라는 창을 통해 세상사를 보는 흥미가 구체적인 경영권 분쟁,인수합병,주식시장에 영향을 준 사건들에 이르면 더욱 커진다. 사건과 이론,학계의 연구 등이 결합돼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특히 동아제약 경영권 분쟁,소버린과 SK,KT&G 경영권 공격,두산인프라코어의 미국 중장비회사 밥캣 인수,외환은행 헐값 매각 논란,금호아시아나 그룹의 대우건설 인수합병과 풋옵션,롯데칠성의 두산주류 인수 등 일반인도 알고 있거나 지금도 진행 중인 사건들이어서 더욱 그렇다.

회계학자가 신문 방송 등에서 조각들로만 보도된 것을 엮고,그냥 지나칠 수도 있었던 숫자들의 의미를 해석하며 하나의 스토리를 만드는 과정을 따라가면 회계가 얼마나 중요한지 절로 느껴진다. 불경기만 되면 나타나는 보물선을 조심하라는 그의 메시지는 요즘 주식투자자들이 새겨들을 만하다.

종래 경영학 서적들과는 확실히 다르다. 더구나 민감할 수 있는 국내 기업사례들을 과감히 끌어낸 점도 용기 있어 보인다. 저자가 이 책에서 '회계수치에 숨어 있는 행간의 의미까지도 꿰뚫어 볼 수 있을 정도로 공부를 해야 한다'고 말하는 애널리스트는 물론이고 기자,이코노미스트,정책당국자,일반 투자자 모두에게 일독을 권한다.

안현실 논설 · 전문위원 경영과학博 a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