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의 얼굴을 석고로 뜬 후 사진을 찍고 거기에 자신의 눈동자 이미지를 붙여 만든 사진,회화성을 강조하기 위해 물감을 덧칠한 사진,피사체를 조각 소품으로 만들어 연출한 사진,다양한 풍경 사진을 퍼즐처럼 결합한 사진,캔버스에 각종 사진 이미지를 콜라주 형식으로 덧붙인 회화적 기법의 사진….

최근 서울 청담동 인사동 등 화랑가에 이런 사진들이 쏟아지고 있다. 그동안 단순한 기록성에 머물렀던 전통적 사진(스트레이트 포토)이 '만드는 사진'(making photo),'그리는 사진'(painting photo)으로 진화하고 있는 것이다.

회화성이 짙은 '메이킹 포토'는 1980~1990년대 미국 뉴욕에서 시작된 사진 기법.기존의 '포토샵'이 컴퓨터를 활용한 이미지 변형 작업에 머문 데 비해 '메이킹 포토'는 다양한 소재와 첨단 기법의 '믹스 앤드 매치(mix&match)'를 통해 새로운 예술 장르로 떠오르고 있다.

단순히 찍는 것만으로는 현대인의 다양한 생각을 표현하는 데 한계가 있는 데다 인터넷을 이용한 영화 · TV · 게임 · 사진 등의 콘텐츠 서비스가 다양화되면서 사진의 회화적 기능이 중요해진 것이 '메이킹 포토'의 확산 요인으로 꼽힌다.

국내에서 '메이킹 포토' 작가로는 김아타씨를 비롯해 정연두 이상현 권두현 최광호 박대조씨 등 30~40여명.미국에서는 신디 셔먼,제프 쿤스,샌디 스코글런드,조엘 피터 위트킨,앨렌 브룩스,잰 그루버,바버라 카스텐,로버트 프랭크 등이 대표적인 인기 작가군에 속한다.

김영섭사진전문화랑의 권지혜 실장은 "최근 인터넷에서 아바타와 포토샵이 인기를 끌면서 관람객들은 그림과 사진을 결합한 새로운 장르에 관심이 많다"면서 "경제 주체로 떠오른 30~40대 영상 디지털 세대가 최근 '메이킹 포토' 작품 컬렉션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메이킹 포토' 전시회도 줄을 잇고 있다. 서울 소격동 선컨템포러리에서 개인전(31일까지)을 갖고 있는 이상현씨는 인터넷에서 떠돌아다니거나 게임에서 볼 수 있는 흑백 이미지와 컬러 사진을 결합해 과거를 재현한 '삼천궁녀' 시리즈 25점을 들고 나왔다. 또 서울 평창동 가나아트갤러리가 주최하는 제9회 포토페스티벌(7월12일까지)에는 사진과 회화를 결합한 배준성씨의 작품을 비롯해 무중력 상태에서 사물이 부유하도록 연출한 류호열씨의 작품,대도시나 북한의 풍경을 재구성한 백승우씨의 신작 등이 걸렸다. 빛의 잔상과 '흔들리는 이미지'의 결합을 통해 사진의 회화성을 강조해온 권두현씨는 중국 베이징아트사이드에서 신작 발표회(7월8~31일)를 열고 거리 풍경과 진시황 병마용 사진을 조합한 '중심' 시리즈 20여점을 건다.

사진을 바탕으로 회화,조각,설치미술의 경계를 넘나드는 크로스오버 작품전도 열린다. 갤러리 아트파크가 기획한 '요술 · 이미지'전(8월1일~9월12일 · 한미사진미술관)에는 정연두 김준 원성원씨 등 14명의 다양한 '메이킹 포토' 작품 30~40점이 출품된다.

여러 장의 사진을 겹쳐 입체로 재구성한 사진 조각가 고명근씨,미싱으로 박아 이은 인화지 위에 벌거벗은 인체를 표현하는 구본창씨,디지털 카메라로 촬영한 이미지를 컴퓨터 그래픽으로 재구성해 초현실주의 회화처럼 작업하는 박일용씨,아이들 사진의 눈동자에 컴퓨터로 이미지를 합성시킨 박대조씨,도심의 아파트나 한강 등의 풍경 사진을 퍼즐처럼 결합하는 박승훈씨,친구의 얼굴을 석고로 뜬 후 사진을 찍고 자신의 눈동자를 붙여 그림처럼 표현하는 이민우씨 등이 작품전을 열고 있거나 준비 중이다.

사진전문화랑 갤러리 나우의 이순심 대표는 "앞으로 사진은 갈수록 회화의 일부처럼 대우받을 것"이라며 "메이킹포토는 영화처럼 종합예술로 심화될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