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장춘몽 생애에 대한 가장 빛나는 포상은 죽음임을/머물던 세간은 누구에게나 버거운 짐이자 등받이 부실한/한때 일터임을.'(<포상,빛나는> 중)

시인 홍신선씨(65)가 7년 만에 내놓은 일곱 번째 시집 《우연을 점 찍다》(문학과지성사)는 우리 삶이 받을 수 있는 '빛나는 포상'은 죽음이라고 말한다. 그에게 '삶은/재개발 관리처분지구의 텅 빈 가옥'(<성인용품점 앞에 서다> 중)이니,삶이라는 '텅 빈 가옥'을 점유할 죽음을 향해 시선을 돌리는 건 자연스러운 일인지도 모르겠다.

이번 시집 곳곳에는 죽음에 대한 통찰이 배어나온다. 누구에게나 서서히 다가오는 죽음을 똑바로 응시하고 받아들이는 시인은 '지나가거라,나는 여기 아프지 않게 주저앉아 남으려 하느니/다만 늙고 병들었을 뿐이니/지나가거라 남은 시간들은/퇴역한 무용수처럼 한 벌씩 목숨 벗어던지며 자진하리니'(<참회록> 중)라고 읊으면서 죽음이 스쳐갈 길을 터준다.

사실 어디에나 죽음은 도사리고 있다. 다만 우리가 의식하지 않았을 뿐이다. 홍씨는 모든 생명이 약동하는 봄이나 화사한 꽃에서도 죽음의 기운을 찾아낸다. 그의 눈에 매화는 '뒷방 벽에 똥이나 척척 이겨 바르듯/제 몸 엉덩이나 바짓가랑이에/얼어터진 꽃 몇 방울/민망하게 묻히고 선'(<매화> 중) 존재다.

그가 1991년부터 천착해온 <마음經> 연작도 이번 시집에서 일단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그렇다면 시를 쓰는 업을 짊어진 시인은 죽음과 더불어 무엇을 도모해야 하는가. 그는 <또다시 고향에서>를 통해 '시를 다 쏟고는 크게 입 벌리고 죽어 뜬 한 마리 연어처럼/나는 망각 속을 둥둥 떠다닐 것이다'라고 노래한다. 시를 다 쏟아내기 위한 그의 전략은 <나의 시>에서 잘 드러난다. '필생의 결단처럼 양손 가볍게 놓아버려라/수백 수십 길 곧추 떨어지다 일어서다 마침내 한 방 먹이거라/대명한 하늘땅 사이/먹먹한 목청 큰 사자후 한 방/귀청 장렬히 터진 뭇 회중들의 먹은 귀때기들도 쓸어버려라/죄다 묻어버려라.'

이고운 기자 cca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