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을 빠져나온 지 40분도 채 안됐는데 갈매기 수십 마리가 마치 친구하자는 것처럼 코앞까지 날아든다. 흡사 도시 정글로부터 숨겨진 보물섬으로 순간이동을 한 기분이다. 인천 영종도 북쪽의 신도 · 시도 · 모도 삼형제는 한려수도 못지않은 아름다운 풍광을 자랑한다. 횟집이 즐비한 을왕리,북적이는 무의도 · 실미도와 다르게 때묻지 않은 자연을 간직하고 있다.

인천공항고속도로를 타고 영종대교를 지나 10분.방조제를 따라가니 오른쪽으로 장봉도와 삼목선착장으로 빠지는 이정표가 나타났다. 1.5㎞ 떨어진 영종도와 신도를 오가는 세종호가 삼목선착장을 지키고 있었다. 매시 10분마다 사람들을 실어 나른다는 이 배에 오르자 제일 먼저 반기는 건 노란 부리를 한 갈매기들.빗방울이 툭툭 떨어지는 흐린 날씨에도 사람들이 던져주는 과자를 채 가는 재주가 프로급이다. '우루룽'소리를 내며 배가 떠난 지 10분.더 이상 먹잇감이 없는데도 갈매기들은 신도 선착장에 닿을 때까지 의리를 지키며 따라온다.

◆연도교 건너 섬에서 섬으로

첫번째 섬인 신도에 닿았다. 개펄이 만들어내는 봉긋한 둔덕 사이로 S자의 물길이 흐른다. 집을 나선 지 1시간 만이다. 가끔 머리 위를 날아가는 비행기와 이따금씩 보이는 낚시꾼,자전거족을 제외하곤 고요하다. 선착장에서 나와 왼쪽 길을 택해 산허리를 굽어드니 시도로 이어지는 연도교가 보인다. 시도에는 옹진군 북면사무소가 있다. 면사무소에서 북도면 여행 안내서를 받았다. 여행 지도로는 손색이 없을 만큼 자세히 나와있다. 덕분에 마음이 든든해져 발걸음도 탄력이 붙는다.

시도 북쪽 해안에는 드라마 '슬픈연가'와 '풀하우스' 세트장이 있다. 어쩐지.세종호에서 일본인 관광객 여럿과 마주친 이유를 이제야 알겠다. '슬픈연가'는 해안 절벽에,'풀하우스' 세트장은 수기 해변 모래사장에 지어졌다. 두 세트장을 잇는 해안 산책로가 있다. 현재 '슬픈연가' 세트장은 관리가 잘 되지 않아 썰렁하지만 오후 서너 시쯤 강화도 마니산을 바라보며 걷는 산책로 풍경은 일품이다. 산책 중에 개펄에서 고둥을 잡는 아주머니들과 눈이 마주쳤는데,내친 김에 발을 벗고 내려와 좀 도와 달라신다. 외지 사람의 어설픈 손놀림이 마냥 재미있으셨는지 웃음이 끊이질 않았다. 70가구가 사는 시도에는 넓게 펼쳐진 염전도 볼 수 있고 작은 경마장도 있다. 길이 험하거나 시야를 가리는 장애물도 없어 걸어서 돌아보길 추천한다.

◆시도에서 모도로,갈대습지와 해변 조각공원

시도를 빠져나와 연도교를 한번 더 건너니 모도가 나타났다. 포구를 지나자 갈대습지가 펼쳐진다. 연못에 비친 구름 덮인 하늘이 몽환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그냥 지나칠 수 없어 차를 세워두고 한참을 연못가에 앉아서 물 한번,하늘 한번 번갈아 바라본다. 아무 곳이나 구도를 잡아 셔터를 눌러대도 다 그림이 된다.

갈대습지를 뒤로 하고 오른쪽 고개를 넘어가니 '배미꾸미 해변'이 모습을 드러냈다. 배 밑구멍처럼 생겨서 배미꾸미란다. 파란 잔디와 개펄,바다가 조화를 이루는 곳은 조각가 이일호씨가 개인 작업실로 이용했던 곳.김기덕 감독의 영화 '시간'에서 배경으로 나왔던 이유 때문인지 낯설지 않다. 조각공원으로 더 유명해져 '바닷가 미술관'이 되었다. 배미꾸미 조각공원에선 100여 점의 조각들을 만날 수 있다. 흐린 날을 잘 택했나 싶다. 에로티시즘을 주제로 조각을 했던 작가인 만큼 작품은 감각적이고 몽환적이다. 만조 때 바람이 심하면 조각 밑에서 파도가 친다고 하니,잔잔한 바다가 원망스러운 건 나 혼자만이 아닐 터.여름이라 해가 길지만 카페와 펜션을 겸하고 있는 이 공원은 겨울 해넘이를 조용히 감상하기에 최적의 장소라 한번 왔던 이들이 여러 번 다시 찾는다고 한다. 하루 더 머물다 가면 좋으련만 6시30분이 마지막 배라서 더 이상 지체할 수 없다. 코끝 시린 겨울에 꼭 다시 오리라 생각하며 아쉬운 발길을 돌린다.

신도 · 시도 · 모도(인천)/글 · 사진=김보라 기자 destinyb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