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가장 예뻤을 때/주위 사람들이 숱하게 죽었다/공장에서 바다에서 이름도 없는 섬에서/나는 멋을 부릴 기회를 잃어버렸다//…(중략) 내가 가장 예뻤을 때/나는 너무나 불행했고/나는 너무나 안절부절/나는 더없이 외로웠다. '(이바라기 노리코 <내가 가장 예뻤을 때> 중)

사람이 가장 예뻤을 때는 아무래도 스무살 무렵이 아닐까. 성장의 기쁨과 고통을 마무리해 가면서 세상의 혹독함에 몸서리쳐 본 적이 없는 스무살.그런데 소설가 공선옥씨(45)의 장편소설 《내가 가장 예뻤을 때》에 등장하는,갓 고등학교를 졸업한 열아홉 스물 청춘들은 이바라기의 시처럼 모진 상황에 처한다.

1980년대 초반 광주에 살고 있던 이들의 현실은 우울하다. 소설의 화자인 마해금이 '더이상 덴뿌라 하나씩 입에 물고 찐빵 같은 웃음만 지어도 행복한 어린애들이 아니었다. 그래서 서러웠다'고 생각할 정도다. 함께 모여다니던 친구들 중 경애는 광주민주화운동 와중에 목숨을 잃고,그 광경을 옆에서 지켜본 수경은 자살을 택한다. 해금의 첫사랑은 아팠고,승희는 미혼모가 된다. 공장에 위장 취업했다 감옥에 간 대학생이 있고,가난에 찌든 사람이 있고,첩을 들인 아버지를 미워하는 딸이 있다.

해금은 '진짜 빛,진짜 아름다움,진짜 행복은 어둠과 슬픔과 고통 속에서 나온다는 것인데… 그게 그리 쉽지 않아서 사람들이 희망을 버리게 되는지도 몰랐다'고 절망하기도 한다. 하지만 아픈 청춘들은 나름대로 세상을 바라보고 헤쳐나갈 내공을 쌓게 된다. 이 작품은 해금과 친구들의 이야기를 느슨한 연작소설처럼 보여준다. 작가는 이 소설을 4개월 동안 인터넷 포털사이트의 커뮤니티에 연재했다.

이고운 기자 cca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