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 장르 간 경계가 급속히 허물어지고 있다.

한국화와 서양화의 영역이 모호해지고 있는 데다 회화 및 도예,조각,설치 작가들이 서로의 경계를 넘나들며 작품 활동을 벌이고 있다. 추상화가 이우환씨를 비롯해 이강소,임옥상씨는 조각을 병행하고 있으며,한국 화가 출신 이기봉,박성태,서도호,이이남씨는 동양화의 정신적 철학을 설치 작품에 표현하고 있다.

또 50대 한국 화가 사석원씨는 아크릴 작업,사진 작가 정연두씨는 영상 작업,도예가 변승훈씨는 도자 설치,서양 화가 조덕현 양만기씨는 탄탄한 회화실력으로 미디어 아트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독립 큐레이터 김선정씨는 "상업적으로 앞서 있던 평면 회화에서 실력이 검증된 작가들이 장르와 장르가 충돌하고 융합하는 '컨버전스 시대' 트렌드에 맞춰 작업하고 있는 데다 미술품 애호가들 역시 다양한 '입맛'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미술 장르 융합의 진원지는 평면회화 분야다. 회화가 미술의 기초이기 때문이다. 이는 또 회화가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 시대를 거치면서 다른 장르에 자양분을 제공하던 '소스(source)'에 머물지 않고 장르 간 '교류와 소통의 창구'로 역할이 바뀌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미국 메이저 화랑 페이스갤러리의 전속 작가인 이우환씨(73)는 튼실한 추상화 실력을 바탕으로 조각 작업을 병행하고 있다. 돌,철판 또는 유리판을 사용한 오브제 조각은 화화작업을 하면서 모티프를 제공받은 '차용적' 성격이 강한 작품이다. 미국 유럽시장에서 국제성을 인정받고 있는 이씨는 오는 8월28일부터 한 달간 열리는 국제갤러리의 개인전에 조각작품을 출품할 예정이다.

탄탄한 회화 실력을 갖춘 한국화가 박성태씨(49) 역시 조각,설치 작업 등 놀라울 만큼 다양한 표현 영역을 넘나들고 있다. 1980년대 테라코타 작업과 2001년부터 시작한 알루미늄 방충망(일명 철망)으로 만든 부조 형태의 박씨 작품은 사회적 폭력에 희생된 사람들과 인간 실존의 문제를 다뤄 주목을 받았다. 서울 논현동 워터게이트 갤러리의 박씨 개인전(22일까지)에서는 방충망으로 제작한 작품 등 약 20점을 만날 수 있다.

갤러리현대 강남점에서 '박경리 1주기 추모전'(24일까지)을 갖고 있는 김덕용씨(48)도 한국화를 전공한 작가. 1995년부터 나무판 위에 그림을 그리는 회화 작업을 해왔지만 최근에는 목조각,설치 작업도 함께 시도하고 있다. 내년 상반기 금호미술관 초대전에는 그동안 작업한 목조각을 설치 작품으로 심화한 작품 20여점을 출품할 계획이다.

설치미술가가 평면 회화 작업에 손대는 경우도 있다. '예술 전사' 이불씨(46)는 그동안 해온 설치 작업에서 최근 평면회화 작업도 병행하는 케이스다. 홍익대에서 조각을 전공한 그는 지난해 10월 서울 청담동 PKM트리니티 갤러리에서 자개 페인팅과 평면 작업 '월피스'시리즈를 선보여 좋은 반응을 얻기도 했다. 이씨는 2011년 일본,유럽,미국 등을 순회하는 순회전에 설치 작품 뿐만아니라 조각 및 회화 작품 등을 출품,자신의 예술 세계를 보여줄 예정이다.

도예가 변승훈씨(54)는 작은 분청도자를 수백개 이어 사무실이나 거실 벽면에 붙이는 회화성 짙은 설치 작업을 10여년째 진행하고 있다. 서울 인사동 아트싸이드에 마련된 변씨의 작품전(23일까지)에는 분청자기로 묘사한 '숭례문'과 추사 김정희의 명품 글씨 '판전' 등 40여점이 걸렸다.

사진 작가 정연두씨(41)는 영상 설치 작업으로 전환해 국내외 시장에서 '몸값'이 오른 대표적인 작가. 2008년 뉴욕현대미술관이 85분짜리 영상 작품 '다큐멘터리 노스탤지어'를 4만여달러에 구입해 화제를 모았다. 정씨는 오는 9~10월 미국 뉴욕 스미스소니언박물관에서 개최되는 개인전에 신작 영상작업 '타임캡슐Ⅱ'을 전시할 예정이다.

이 밖에 한국 화가 이기봉씨는 호주 브리스베인에서 오는 12월5일 개막하는 아시아페시픽 트리엔날레에 영상 설치 작품,서양화가 양만기씨는 올 연말께 서울역 앞 금호아시아나 빌딩(옛 대우빌딩)에 190?C100m 크기의 초대형 영상 설치 작업을 선보일 예정이다. 서양화가 강형구씨는 서울 아라리오개인전(17일까지)에 설치 작품을 처음 선보였다.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