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가장 큰 매력은 '낯섦'이 아닐까. 배낭을 꾸려 도착한 그곳이 늘 마주하던 일상과 다르면 다를수록 쾌감은 커진다. 도무지 읽을 수 없는 아랍어 간판,울창하다는 말보다 '부스스하다'란 수식어가 잘 어울리는 야자수,새까만 차도르를 입은 여인들…. 차창으로 흐르는 쿠웨이트시티의 생경한 풍경들이 반갑다. 무심하게 불어온 바람엔 옅은 아라비카 커피향이 느껴진다.

#베이지톤 보호색을 입은 도시

시원하게 뻗은 6차선 걸프해안도로.뭔가 허전하다 했더니 차선이 없다. 자세히 보니 페인트 차선 대신 적당한 간격으로 요철을 박아놓았다. 수시로 모래바람이 덮치는 사막기후 탓이다. 거리의 집들도 모래색을 닮았다. 흡사 황색기준의 색상 채도표를 보는 듯하다.

도로 중앙선에 심어놓은 자그마한 나무들은 파란 잎을 뽐내지만 링거주사를 맞듯 곳곳에 수도꼭지를 감춰놓았다. 그렇게라도 열사의 갈증을 이겨내려는 모습이 애처롭다. 그 길을 달려 도착한 곳은 쿠웨이트 시내를 한눈에 내려다 볼 수 있는 쿠웨이트 타워.뾰족한 바늘에 파란 유리구슬을 꽂아놓은 모양으로 우뚝 솟은 3개의 탑이 인상적이다. 이 중 하나는 물탱크로 꽉 채우면 133만갤런을 담을 수 있다고 한다. 30분에 한바퀴.어지럽지도 지겹지도 않을 속도로 360도 회전하는 전망대에 앉아 코발트빛 페르시아만과 황토빛 시내를 음미한다. 이틀 전 매섭게 불었다는 모래폭풍의 흔적 때문에 살짝 뭉개진 풍경이 못내 아쉽다.

#이슬람 문화의 진한 향기

호텔 화장대 서랍을 열자 화살표가 그려진 동그란 스티커가 보인다. 다름 아닌 메카방향을 표시한 나침반.하루에 다섯 번,정해진 시간에 오로지 한 방향으로 무릎을 꿇는 이슬람신자들의 경건함이 전해진다. 좀 더 농도 짙은 이슬람 문화의 향기를 찾아 타레크 라잡 박물관으로 향했다.

라잡 집안의 소장품을 전시한 박물관으로 중동 전역의 의복,생활용품, 도자기, 장신구부터 약 1000년 전 양피지에 쓴 코란까지 그 규모가 개인박물관이라고 믿겨지지 않을 정도다. 현지 가이드도 동네를 두 바퀴나 돌며 헤맸을 만큼 찾기 힘든 위치 때문에 1990년 이라크가 침공했을 때도 무사할 수 있었다고 한다.

이슬람 사원도 빼놓을 수 없는 코스다. 시내 중심가에 위치한 그랜드 모스크는 쿠웨이트에서 가장 큰 사원이다. 주 예배실 면적은 2만㎡.가운데 돔의 지름만도 26m,높이는 43m나 된다. 5000명의 남자와 550명의 여자가 동시에 기도할 수 있다고.여자의 경우 스카프를 히잡처럼 두르거나 차도르로 갈아입어야만 사원에 들어갈 수 있다.



#동양여자에 물음표 가득한 눈빛

뜨거운 태양의 열기가 희미하게 사그라들 무렵,'수크'를 찾았다. 수크란 아랍어로 시장이란 뜻.쿠웨이트에선 좀처럼 보기 힘든 동양 여자에게 물음표 가득한 눈빛이 쏠린다. 어디서 왔느냐는 질문에 한국에서 왔다고 하자 한국 관광객은 정말 만나기 힘들다며 호들갑스러운 인사를 건넨다. 그도 그럴 것이 아직까지 쿠웨이트는 여행자제지역이기 때문이다. 이런 사연을 말해주자 믿을 수 없다는 표정과 함께 이유가 뭐냐고 캐묻는다. 그렇게 민감한 질문엔 그냥 웃을 뿐이다.

몇 해 전 일명 '려원 스카프'로 유명했던 이슬람 특유의 체크무늬 스카프를 하나 살 참이었다. 기념품으로 이만한 게 없지 싶었다. 기분 좋게 스카프를 둘러보려는 순간 'Made in China'라는 선명한 글씨가 보인다. 왠지 허망한 기분에 살며시 내려놓고 돌아선다. 대추야자를 파는 상인이 이곳 공산품 대부분은 수입품이라고 귀띔해준다. 예리하게 날이 선 과도로 '사막의 과일' 대추야자를 푹 찍어 건네며 맘껏 먹으라는 호의도 빼놓지 않는다. 시장 곳곳에 데구르르 굴러다니는 웃음소리가 명랑하다.

해가 진 쿠웨이트의 밤이 꽤나 쌀쌀하다. 민트차 한 잔에 설탕을 듬뿍 넣어 녹인다. 언제 또 올 수 있을까 하는 생각으로 분주하게 눈도장을 찍었던 풍경들이 벌써 아련하다. 입자가 너무 고와 옷에 묻으면 몇 번을 털어내도 희뿌연 흔적을 남겼던 모래처럼,이 도시와의 짧은 만남도 짙은 잔상으로 남겠지….낯선 풍경에 대한 그리움은 간간이 찾아올 일상의 무료함마저 토닥여줄 것이다.

쿠웨이트=이명림 기자 jowa@hankyung.com

# 여행TIP

쿠웨이트는 페르시아만의 북서쪽 끝에 자리잡고 있으며 면적은1만7818㎢로 경상북도 크기다. 6~8월 최고기온이 50도가 넘는 세계에서 가장 더운 지역이다. 눈부신 햇살을 막아줄 선글라스와 선크림은 필수.시간은 한국보다 6시간 늦다. 입국 땐 비자가 필요하다. 현지 공항에 도착해 발급받을 수 있다. 비자발급 비용은 6쿠웨이트디나르(KD).현재 환율을 반영하면 2만7000원 정도다. 싱가포르 항공이 인천~싱가포르~아부다비~쿠웨이트 노선을 주4회 운항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