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년 전에 미련없이 훌훌 떠났던 곳입니다. 내가 태어나고 자라고 커서 하나의 연극인으로 완성된 이 자리,어머니의 품 같은 고향에 돌아와 앉으니 목이 멥니다. 얼마 남지 않은 생,우리 예술의 잣대가 여기 살아있다는 것을 보여주겠습니다. "

원로 연극인 장민호씨는 명동예술극장을 언론에 처음으로 공개하는 자리에서 이렇게 말하며 눈시울을 붉혔다.

역사 속으로 사라질 뻔했던 한국의 '문화 1번지' 명동 국립극장이 37년 만인 오는 6월5일 명동예술극장(사진)으로 다시 태어난다. 지하 1층,지상 5층,총 552석 발코니 구조의 중극장으로 관객과 무대 위 배우와의 눈높이를 최적화한 연극전용극장이다. 명동예술극장은 1934년 영화관,공연장 등이 있던 '명치좌'에서 '시공관',국립극장,국립극장 분관 예술극장으로 이어지면서 당대 대표적 예술가들이 오페라,연극,무용,클래식 연주회 등 다양한 장르를 선보이던 공연의 중심지였다.

유치진과 이해랑 등 쟁쟁한 극작가와 연출가를 비롯해 변기종,김동원,장민호,강계식,백성희,김진규,박노식,최무룡,허장강,김금지 등의 스타 배우들이 활동했던 무대다. 1973년 8월26일 장충동으로 국립극장이 이전하면서 명동 국립극장은 1975년 말 대한종합금융에 매각됐다. 1994년부터 명동극장 복원운동이 시작됐고,2003년 12월 문화체육관광부가 다시 극장 건물을 사들여 복원에 들어갔다.

새 단장을 한 명동예술극장은 '연극만을 위한 대관 없는 공연장'을 목표로 하고 있다. 구자흥 극장장(64)은 12일 "지금까지 공연장 운영 방식은 대관 중심이거나 이미 제작된 국내외 작품들을 초청해 소개하는 정도에 불과했다"며 "명동예술극장은 기획,캐스팅,마케팅 등을 모두 자체 해결하는 프로듀싱 시어터(공연제작극장)로 거듭날 것"이라고 말했다.

명동예술극장의 개관 작품으로는 '맹진사댁 경사'(오영진 작 · 이병훈 연출)가 선정됐다. '맹노인'역에는 원로 연극인 장민호씨(85)가 열연한다. '맹진사'역의 신구씨(73)는 "명동예술극장의 재개관을 통해 명동의 정감 어린 분위기가 되살아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개관작 '맹진사댁 경사'는 개관일인 6월5일부터 21일까지 공연된다.

한편 명동예술극장은 '어디서 무엇이 되어 만나랴'(최인훈 작 · 한태숙 연출) '밤으로의 긴 여로'(유진 오닐 작 · 임영웅 연출) '햄릿'(셰익스피어 작 · 양정웅 연출) '베니스의 상인'(셰익스피어 작 · 이윤택 각색 · 연출)을 준비 중이다.

김보라 기자 destinyb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