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핀란드] 눈의 여왕의 만나다

반도의 입구 핀란드에 도착해 맨 처음 한 일은 영화 '닥터지바고'의 촬영지였던 헬싱키에서 백설기처럼 쌓인 눈에 발자국을 남긴 것이다. 북극권 가장자리에 위치한 핀란드는 일년의 절반이 눈이 오는 겨울이다. 전 세계 어린이들이 크리스마스 시즌만 되면 수취인 '산타할아버지'라고 꼭꼭 눌러쓴 카드를 보내는 순백의 전설을 간직한 나라.

대자연에 떠 있는 도시 탐페레로 가는 열차에서 핀란드인은 정말 자기 전 자일리톨로 만든 껌을 씹을까 궁금했다. 창밖 풍경을 바라보니 수줍게 늘어선 자작나무 행렬에서 답이 보인다. 불에 탈 때 '자작,자작' 소리를 내 자작나무라 불리는 이 나무에서 천연감미료 자일리톨을 추출한다. 자일리톨 껌을 핀라드인 전부가 씹고 잠들지는 않지만 이제 그것이 명실상부 건치국가 핀란드의 아이콘이 됐음은 두말할 나위 없다.

혹독한 추위에 햇볕을 조금이라도 더 받기 위해 하늘로 간절히 뻗은 나무의 행렬은 흡사 핀란드 국민의 강직하고 끈기 있는 정체성 '시수'를 닮았다. 냉전시대,전세계의 공산화를 도모했던 옛 소련의 영향 아래 복지국가 건설을 서둘렀던 약소국은 과감한 개혁과 실용주의 정책,그리고 시수정신으로 일어서 결국 오늘날의 복지국가를 탄생시켰다. 핀란드 정치인들은 자신을 단지 국민을 위한 봉사자이자 명예인으로 여겨 전 세계에서 정치청렴도,부패척결지수 1위를 자랑한다.

시린 겨울 때문인지 사우나의 원조 국가이기도 하다. 특히 '난탈리스파호텔'은 선상객실 형태의 화려함을 자랑한다. 빙하의 영향으로 20만개에 이르는 호수에 밤사이 눈이 오고 동치미 국물 위 살짝 낀 얼음처럼 새벽녘 추위에 살얼은 호수 표면은 그때마다 군침돌게 아름답다.

2011년 유럽문화의 도시로 선정된 투르크에는 핀란드를 널리 알린 작곡가 장 시벨리우스의 기념관이 있다. 수요일마다 열리는 라이브 공연을 듣다 보면 반쯤 열린 천장으로 북구의 깜깜한 하늘이 펼쳐져 별이 빛나는 밤이 된다. 대형 여객선 바이킹라인이 기다리는 항구로 발걸음을 서두른다. 호수와 바다를 오가는 크루즈 탑승은 북유럽 여행의 백미인데 유레일패스는 선박까지 연계돼 무료 또는 할인혜택을 준다.


[스웨덴] 중세의 향기에 취하다

둥근 해가 떠오를 무렵 선박은 수려한 항구이자 스웨덴의 수도인 스톡홀름항에 닻을 내린다. 온 국민의 자부심 속에 노벨상 시상식이 열리는 문화의 도시 스톡홀름은 운하를 갖춘 북유럽의 베니스답게 운치가 흐른다. 20세기의 뛰어난 건축물 중 하나라는 스톡홀름 시청사는 스웨덴의 자유와 평화를 상징하는 관광 명소다.

특별히 블루홀에서는 해마다 12월10일이면 그해 노벨상 수상자들을 위한 공식만찬회가 열린다. 1900만개의 금박으로 모자이크된 황금의 방에는 '멜라렌의 여왕' 장식화가 있는데 그 촘촘한 아름다움에 놀라 탄식하면서 노벨상 수상을 염원하게 만든다.

13세기 형성돼 지금까지 섬 전체가 통째로 보전되는 구시가지 '감라스탄'에는 태양을 향해 눈감고 있는 유러피언들이 화분처럼 눈에 띈다. 요람에서 무덤까지 보장해주는 사회복지국이지만 흐린 날이 많아 우울증이 감돌고 낮에 해바라기하는 풍경이 빈번하다.

스톡홀름의 발원지답게 수백 년 된 건축물과 좁은 골목길,오래된 골동품점,커피향 가득한 길을 마구 걷다보면 누구든지 의자를 내어 앉고 싶게 만든다.

곳곳에 중세시대 간판과 벽돌이 남아 있어 뱀의 곡선마냥 휘어진 골목의 어디쯤 푸른 담 모퉁이에 13세기 무렵의 사람들이 살고 있을 듯한 고전의 발자국이 닳디닳은 바닥재에 묻어있다. 전쟁에 나간 아들을 걱정하는 어머니가 그렸다는 벽화에는 애끓는 모정이 젖어들어 이방인의 눈길도 붙잡는다.

두 차례의 세계대전 때 중립국의 수도로 외교활동의 주무대였던 이곳은 지금도 핵무기 금지운동을 비롯,각종 국제회의가 열리고 있다. 이토록 평화를 사랑하는 도시가 노벨상 중 단 한 부문,그것도 평화상 시상권을 노르웨이의 오슬로에 내준 것은 아이로니컬하면서도 평화의 상징처럼 보인다.


[노르웨이] 스산한 추위마저 감미롭다

열차가 노르웨이로 진입하면서 옷깃을 여미게 하는 강추위와 속력을 늦추게 하는 울퉁불퉁한 길이 나타난다. 노르웨이는 100만년의 시간과 빙하라는 대자연의 합작품 피오르드가 찬란하게 모여있다. 복잡한 해안선과 백야,그리고 밤이 계속되는 폴라나이트가 순환하는 자연환경은 이곳을 험준한 환경 속 변방의 약소국에 머물게 했다. 그러나 1970년대 북해유전의 발견으로 경제강국으로 성장하면서 환상의 관광 상품으로 변모돼 이제 전 세계인을 오게 하는 원동력이 됐다.

수도인 오슬로에 들어서면 가장 눈에 띄는 것은 2008년 개관한 오페라하우스다. 거대한 선박 조각품을 연상시키는 이 건물은 지붕이 점차 바다로 향하는 사선 구조로 디자인돼 누구든 자유롭게 걸어오를 수 있다. 시민들이 걸터앉아 볕을 쬐거나 책을 읽는 풍경이 정겹다.

잘 조성된 공원 곳곳에는 깊은 생각에 잠긴 사람들도 눈에 띈다. 오슬로의 자랑 비겔란공원에는 특히 그런 사색가가 많다. 조각가 구스타프 비겔란이 13년에 걸쳐 제작한 조각품들 때문이다. 인간의 삶과 죽음 사이 희로애락을 표현한 1000여개의 청동,화강암 조각에는 애수가 깃들어 있다. 특히 높이 17.3m의 거대한 탑 '모놀리스'는 화강암 기둥에 121명의 남녀노소가 정상을 향해 기어오르려 애쓰는 모습이 부조돼 있는데 보는 순간 그 생생함에 소스라친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소설 '노르웨이 숲'에서 노르웨이를 고독의 전형으로 묘사했다. 실제로 오슬로의 '아케르 브뤼게' 거리 시계탑 항구에서 바라본 하늘은 해질 무렵 포도주빛 기운 아래 제1차 세계대전 발발 무렵의 암울함 속 절규하던 뭉크의 고독이 배어 있다. 슬프도록 서정적인 하늘은 한번 보면 잊지 못할 만큼 낮고 신비롭지만 화려한 칼 요한스 거리 카페에서 비싼 맥주를 마시는 사람들도 무표정한 것은 스산한 추위 때문일까. '산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것'이라 어느 시인이 말했듯 오슬로의 닿을 듯 생경하게 신비로운 하늘은 가슴 속에 섬광처럼 남아 때로 북구의 겨울 같은 힘든 시간의 강도 건너게 할 것이다.

헬싱키 · 스톡홀름 · 오슬로=전혜숙 기자
hayonwye@hankyung.com


[여행 TIP]

스칸디나비아는 유럽에서 가장 큰 반도로 지도상 유럽 북서쪽에 위치한다. 일반적으로 스칸디나비아 산맥을 기준으로 서쪽의 노르웨이,동쪽의 스웨덴을 가리키지만 핀란드도 속한다. 스웨덴의 정식 명칭은 스웨덴왕국이며 화폐는 스웨덴 코로나를 쓴다. 서쪽의 노르웨이는 국토의 70%가 빙하,암석으로 이뤄져 인구의 70%가 도시에 산다. 화폐 단위는 노르웨이 크로네.호수의 나라란 뜻의 핀란드는 핀란드공화국이 정식 명칭이며 유로화가 통용된다.

올해로 출시 50주년을 맞이한 유레일패스는 1959년 13개 나라를 대상으로 출발해 현재 21개국으로 확장,스칸디나비아 반도 횡단까지 가능하다. 한국인 여행객에게는 5월 말까지 15% 할인 혜택을 준다. 이 기간에 유럽 전역을 둘러보는 글로벌패스 또는 인접 3~5개국을 여행할 수 있는 셀렉트패스를 구입하면 발급일로부터 6개월 이내에 언제든 이용 가능하다.

터키항공이 터키 이스탄불에서 헬싱키,오슬로를 오가는 직항 편을 운항한다.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오르한 파묵의 도시 이스탄불에서 하루쯤 머물다 경유해도 좋다.

터키항공 (02)777-7055: www.thy.com/ko-kr ,유레일그룹: www.EurailGroup.com ,유레일한국사무소 (02)553-4696: blog.naver.com/goeurail ,핀란드관광청 (02)3789-3220: www.visitfinlan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