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2시에 일어났다는 그는 아침부터 눈이 퀭했다. 평소 윤기가 흐르던 잘 생긴 얼굴도 까칠했다. 부활주간이 시작된 지난 6일부터 '고난주간 특새',즉 특별새벽기도회를 매일 열고 있는 탓이다. 더구나 부활절(12일) 새벽 5시30분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열리는 연합예배 설교까지 맡아 수도승처럼 살고 있다고 했다. "설교자가 강단에 서기만 해도 듣는 사람들에게 은혜가 되도록 하기 위해서"란다.

서울 서초동 사랑의교회 오정현 담임목사(53)가 주인공이다. 조용기(73) 박종순(69) 김삼환(64) 목사 등 원로 · 중진 목회자들이 맡아온 연합예배 설교를 50대 초반의 나이에 이례적으로 맡게 된 그를 지난 7일 사랑의교회에서 만났다.


▶설교를 맡지 않겠다고 한참 버텼다면서요.

"60세 전까지는 안 맡겠다고 열흘 이상 고사했죠.아직 제 차례도,제 능력 범위도 아니거든요. 부활절을 앞두고 우리 교회 챙기기도 바빠요. 한 주 동안 '특새'를 하면서 매일 1만여명과 씨름해야 합니다. 부활주일엔 우리 교회에서만 다섯 차례 설교를 해야 하고요. 그래서 못한다고 버텼는데 원로목사님(옥한흠 목사)까지 나서서 맡으라고 하셔서 할 수 없이 맡았습니다. 일단 맡은 이상 제 머리 속에는 지금 부활절 설교를 어떻게 할지만 맴돌고 있죠."


▶오 목사님이 설교를 맡게 되자 교계 리더십의 '세대교체 사인'으로 보는 시각이 많던데요.

"침체에 빠진 한국 사회와 교회를 되살리는 일이 우리 세대에 주어진 책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한국 교회가 겪은 고난의 끝자락을 경험한 세대입니다. 그러나 희망을 잃지 않고 달려온 결과 세계적 경제 강국이 됐고 교회도 세계에서 미국에 이어 두번째로 선교사를 많이 보낼 만큼 커졌습니다. 청년백수 급증,OECD 회원국 중 자살률 1위 등 한국이 또다시 위기를 겪고 있지만 희망을 회복해야 합니다. 희망의 반대말은 절망이 아닙니다. 절망이 부활한 것이 희망이죠.따라서 절망을 경험해본 사람이라야 희망을 말할 수 있습니다. 이번 부활절 연합예배는 그런 희망을 보여주고 체감할 수 있는 자리여야 합니다. "


▶연합예배에서는 어떤 내용으로 설교할 생각입니까.

"사실 부활절 연합예배 설교는 진보 측의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와 보수 측의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가 함께 만든 주제와 공동설교문을 토대로 하게 됩니다. 올해 설교 제목은 '일어나 희망을 노래하자'인데 대체로 세 가지를 말씀드리려고 해요.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고 없는 것도 있게 하시는 분이므로 부활은 역사적 사실이라는 것,부활을 기뻐하고 감사해야 한다는 것,부활의 소명대로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


▶부활의 소명이란 어떤 것인가요.

"사람이 새로운 희망을 갖기 위해서는 상처를 치유해야 합니다. 한국 사회는 좌와 우가 모두 상처를 안고 있어요. 우파는 공산당에게 피해를 입었고,좌파는 군사독재에 항거하다 상처를 입었죠.이제 부활을 믿는 사람들이 좌우의 상처를 모두 보듬고 치유하며 세상을 변화시키는 소명자로 나서야 합니다. 이를 위해 가진 이들은 자발적 섬김과 희생을 통해 책임을 더 져야 하고,지난 세기 선교를 통해 하나됨을 지향했던 한국 교회는 섬김과 봉사,나눔이라는 21세기형 하나됨을 지향해야 합니다. "


▶교인이 아닌 분들에게 부활의 의미를 좀 설명해 주시죠.

"기독교는 부활의 종교입니다. 부활이 없다면 기독교는 없지요. 죽은 사람이 어떻게 살아날 수 있느냐고 하겠지만 세상을 창조한 하나님은 자연의 법칙을 넘어서는 분이고,부활은 초이성적인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육신의 눈이 전부가 아닙니다. 아무리 시력이 좋아도 너무 멀거나 가까운 것은 볼 수 없지요. 그러나 믿음의 눈을 열면 영적인 것,정신적인 것이 보여요. 사랑과 희생,섬김과 사명 등 정말 가치 있는 것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마음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부활의 신앙은 인간이 아무리 큰 고통,죽음 같은 절망에 빠져 있더라도 언제든지 다시 시작할 수 있는 능력을 부여합니다. "


▶지난 2월 김수환 추기경 선종 이후 개신교계에서 '우리에겐 왜 저런 어른이 없을까'하는 소리가 많았습니다.

"존경할 만한 어른이나 사표가 드문 한국 사회에 그런 어른이 계셨던 것은 참 감사한 일입니다. 사실 개신교에도 돌아가신 한경직 목사님처럼 존경할 만한 분이 많이 있는데 교회들이 분열되다보니 집중력이 떨어져 그런 지도자를 세우지 못했어요. 우리 세대가 원로를 더 잘 섬기고 지도자로 세워야죠.저에게 연합예배 설교를 맡긴 것도 세대 교체보다는 그 어른들의 사역(使役)을 계승하라는 뜻이라고 봐요. "


▶개신교에 대한 사회적 비판이나 부정적 시각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십니까.

"대부분의 목사님들은 가난합니다. 소득이 면세점 이하인 분도 많습니다. 우리 교회는 목사들이 세금을 낸 지 15년도 넘었고요. 그런데도 몇몇 교회의 잘못이 너무 부각돼 안타까워요. 하지만 변명하기보다는 비판하는 분들에게 감동을 주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우리 교회의 경우 올해 구제 · 봉사 예산을 30억원 늘려 전부 100억원가량 되는데 형편이 되는 교회들이 더 많이 나누고 헌신해야죠."


▶북한의 로켓 발사로 국제정세가 복잡하게 돌아가고 있습니다.

"사람이 허하면 헛발질을 하게 돼요. 북한이 안정되지 못하고 내실이 없으니까 자구책으로 '쇼'라도 하는 것이겠지요. 일본은 이를 빌미로 재무장을 강화하려고 하니 안타까운 일입니다. 저와 우리 교회는 북한에 의로운 지도자가 나오기를 2년째 기도하고 있습니다. 오늘 '특새'에서도 기도했습니다. 남북이 상처를 모두 치유하고 앞으로 10년 내에 평양에 가서 부활절 연합예배를 드리도록 해달라고 말이죠.그렇게 되면 종교는 물론 경제,정치 등 모든 면에서 새로운 역사가 전개될 겁니다. "

오 목사는 "오늘 '특새'에서 인천 은혜교회 박정식 목사가 명언을 남겼다"며 이를 그대로 들려줬다. '상처가 변하여 별이 되고(Scars into stars) 고난의 아픔이 변하여 아름다운 추억이 되며 슬픔이 변하여 진주가 된다. ' 그는 "이것이 바로 희망을 잃지 말아야 할 이유"라고 거듭 강조했다.

글=서화동/사진=정동헌 기자 fire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