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몸이 출렁이는 봄이 오겠지./ 흔들리지 않고는 못 배길 숨 막히는 봄이,네 몸 끝까지 타고 오르겠지./ 손을 다오./ 빛 좋은 봄날은/ 바람도 좋다. / 한손 끝에 닿는/ 네 허리살을 헤치고/ 한 잎 한 잎/ 또 한 잎/ 새눈은 튼다. '

(<한 잎> 중)

'섬진강 시인' 김용택씨(61)의 열번째 시집 《수양버들》(창비)에는 봄기운이 찰랑이고 넘실댄다.

"꽃피는 봄이 겨울 동안 웅크리고 있던 마음을 충동질하면 어쩔 줄 모르겠다"는 시인의 휴대전화 컬러링에도 봄기운이 완연하다. 그의 휴대전화에서는 노래 '봄이 오는 길'이 흘러나왔다. '산넘어 조붓한 오솔길에 봄이 찾아 온다네 들넘어 고향 논밭에도 온다네….'

김씨에게 봄의 전령은 꽃이다. 꽃을 다룬 시들이 단연 눈에 띈다. 그가 요즘 오가는 전주와 고향인 임실에는 꽃들이 앞다투어 피어나고,그럴 때마다 '자연이 움직이면,잠자고 있다가 활동을 시작하는 정서'를 느낀다고 했다.

'다가가서 바라보면 어지럽고 멀찍이 떨어져 바라보면 아찔합니다. 까만 가지 끝에 핀 꽃일수록 아슬아슬 더 붉고 꽃빛은 숨이 턱에 찹니다. 이러다가 자지러지겠어요. 이러다가는 저 꽃이 생사람 잡겠어요. '(<구이> 중)

그는 '그림처럼 새잎이 막 피어나는' 수양버들에도 시를 바쳤다. '비,색색의,봄비./ 수양버들이 비를 맞고 휘늘어졌네./ 휘늘어진 가지에 푸른 물 내려오네./ 저렇게 휘늘어져 어쩌자는 것이냐.세상의 푸른 속살이여!'(<색의> 중)

그래서 이번 시집 표지도 풋풋하게 잎사귀가 오른 버드나무가 있는 김홍도 작품 '마상청앵도'로 했다.

김씨는 모교이자 30년 가까이 교사로 근무했던 전북 임실 덕치초등학교의 오래된 살구나무를 다룬 시를 '좋아하는 작품'으로 꼽았다. '너는 예쁜 종아리를 다 드러내놓고/ 나비처럼 하늘거리는/ 옷을 입고 나타나겠지.// …(중략) 봄빛은/ 돌 속에/ 숨은 꽃도 찾아낸다. '(<살구나무> 중)

봄은 그에게 시심을 뒤흔들지만 그는 가끔 자연의 채근보다 뒤처진다. '밤새워 생각들을 뒤적이다가/ 아침에 일어났더니,창밖 벚꽃들이 자글자글 피어난다. / 꽃들이 나보다 훨씬 빠르다. '(<실천>)

하지만 봄자락에도 슬픔은 있다. 시인은 가난을 대물림하는 제자 부녀를 다룬 시 <세희>에서 '가난은 배고픈 봄날처럼 길고 멀다'고 읊조린다.

지난해 교단을 떠난 그는 미뤄두었던 독서를 즐기면서 산문집을 준비하고 있다. 그동안 아이들과 어울리며 얻은 눈높이로 작품을 써온 그는 "이제 아이들을 가르치지 않으니 시적 관심의 대상이 바뀔 수도 있겠다"면서 "끈 하나를 끊고 나오니까 약간 겁이 나기도 한다"고 했다.

하지만 그는 이번 시집에 수록된 <이순>에서 시인다운 자부심을 보여준다.

'내 나이,올해로 이순,세상물정 모르는 바 아니나,/ 시 몇편 써놓고/ 밖에 나가니/ 세상 부러울 게 없다. '

이고운 기자 cca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