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면에서 곧잘 나는 자신의 장벽과 한계에 부딪친다. 혼자서는 그 장벽과 한계를 넘을 수가 없다. 여러 해 동안 나는 그 한계가 우주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지금은 그것이 아무 것도 아님을 알았다. 이 불쌍한 바보야,욕망은 언제나 우리의 한계 너머에 있고 우리 주변에 있는 거야!"(1949년 2월1일)

청빈 · 정결 · 순명(順命) · 정주(定住) · 행동양식의 변화 등 다섯 가지를 서원하고 자신을 하느님에게 온전히 바친 가톨릭 수도자의 자기 성찰과 내적 변화를 진솔하게 담은 일기가 번역 출간됐다. 평화방송 · 평화신문 사장 오지영 신부가 번역한 《토머스 머튼의 영적 일기》다.

1915년 프랑스에서 태어난 머튼은 20세기의 대표적 영성가로 손꼽히는 트라피스트회 수도자.컬럼비아대학에서 영문학을 공부하고 26세에 켄터키주 겟세마니 트라피스트 봉쇄수도원에 들어가 1968년 불의의 사고로 생을 마칠 때까지 대표작 《칠층산》 《가장 완전한 기도》 등 70여권의 책을 출간해 종교의 벽을 넘어 영성가로 존경받았다.

이번에 국내에서 처음으로 번역된 《영적 일기》는 겟세마니 수도원에 들어간 지 5년이 되는 1946년부터 5년간의 삶과 영적 여정을 연대기적으로 생생하게 기록한 것.매일 반복되는 노동과 기도와 묵상의 시간에 매 순간 일어나는 마음의 변화를 놓치지 않고 포착하며 그때마다 함께 하는 하느님을 발견한다. 햇볕이 따뜻한 날 풀밭에서 노니는 양들을 보며 '내 양들을 돌보라'는 말씀을 떠올리고,개인적 시간이 거의 없는 수도원 생활의 현실을 불평하기보다 그 시간마저 하느님과 함께 하도록 자신을 변화시키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책의 마지막 장인 1952년 7월4일자 일기에서 머튼은 "주님이 내 안에 계시고 나는 주님 안에,주님은 사람들 안에,사람들은 내 안에 살아있다"며 포기와 비움,공평과 자유 안에서 이루는 하느님과의 일치를 보여준다.

1948년 10월 수도원장의 지시로 출간한 《칠층산》이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뜻밖에 직면한 커다란 변화도 그에겐 영적 성장의 계기였다. 그는 "하느님이 섭리하시는 계획에는 패배같은 것은 없으며 단계마다 광야로 들어가는 길이어야 하고 명성마저도 겸손을 살찌울 수 있다는 것을 배워야 했다"고 적고 있다.

《칠층산》은 머튼이 영적 체험을 겪고 수도회에 입회하기까지의 정신적 여정(旅程)을 유려한 문장에 담은 자서전이자 세계적인 베스트셀러.출판사 측은 1976년 정진석 추기경이 번역한 책을 원서 개정판을 토대로 새로 다듬어 함께 내놓았다.

서화동 기자 fire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