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격적이고 독특한 작품 해석을 펼치는 해외 연극 연출가 두 명의 작품이 봄무대에 오른다.

미국 연출가 리 브루어는 한국 배우들을 기용해 5~6월 명동 삼일로 창고극장에서 '이상,열셋까지 세다'를 선보이고,리투아니아 연출가 에이문타스 네크로슈스는 다음 달 3~5일 LG아트센터에서 '파우스트'를 공연한다.

'고전의 획기적 재해석'을 장기로 하는 이들의 이전 작품은 이미 국내 공연 마니아들의 이목을 사로잡은 바 있다.

1970년대 로버트 윌슨,리처드 포먼과 함께 이미지 연극의 3대 연출가로 불리는 리 브루어의 '이상,열셋까지 세다'는 천재 시인 이상을 다룬 작품이다. 뉴욕에서 활동하는 재미교포 2세 작가 노성씨가 <날개> <오감도> 등 이상의 시를 차용해 쓴 희곡을 원작으로 삼았다. 이상의 생애보다는 천재 시인의 강렬한 미적 세계를 연극적으로 다시 조직하는 데 주안점을 두었다.

브루어는 2000년 서울연극제에서 한국 배우들과 '이상,열셋까지 세다'를 공연한 바 있으며 이번에 다시 오디션을 통해 선발한 한국 배우들과 공연할 예정이다.

그동안 브루어가 선보인 연극은 고전을 신선하게 재조명했다는 점에서 큰 주목을 받아왔다. '마부 마인의 리어'는 셰익스피어 희곡 '리어왕'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성(性)을 바꿨으며,'콜로노스의 가스펠'은 그리스 비극 '콜로노스의 오이디푸스'에 흑인 가스펠을 도입했다.

지난해 4월 LG아트센터에 올린 '인형의 집'은 상식을 뛰어넘는 배우 기용으로 화제를 모았다. 주인공 노라 등 여성 배역에는 키 큰 여배우,노라의 남편 등 남성 배역에는 왜소증 남성들을 캐스팅해 신체적으로 연약한 남성들이 우월한 여성을 지배하고 통제하는 상황을 연출함으로써 가부장제의 모순을 통렬하게 꼬집었다.

셰익스피어 비극을 강렬한 이미지로 직조해내 주목받은 에이문타스 네크로슈스는 이번에 괴테의 고전 《파우스트》의 재해석에 도전한다.

'햄릿'에서는 우유부단한 청년 햄릿의 고뇌를 보여주기 위해 록가수를 캐스팅했고,양철 톱니바퀴와 무대에 비를 퍼붓는 연출 등으로 햄릿의 혼란스러운 심리를 조명했다.

'맥베스'에서는 맥베스 부부의 음험한 욕망을 부추기는 마녀들을 원작과 달리 젊고 매력적인 마녀로 변형했고,'오셀로'에서는 젊은 데스데모나와 늙은 오셀로의 나이차를 부각시켰다.

네크로슈스는 원작의 설정을 변형할 뿐 아니라 배우들의 대사를 줄이고 창조적인 무대 장치로 언어보다 풍성한 이미지를 쏟아내며 연극을 이끌어나간다.

이번 '파우스트'에서도 네크로슈스 특유의 절제된 대사와 풍부한 이미지를 볼 수 있다. 무대 한가운데에서 부질없이 돌아가는 쟁기가 압권이다. 신은 이 쟁기를 힘겹게 돌리지만 악마 메피스토텔레스는 손쉽게 돌린다.

크고 흰 뼈다귀와 인간의 뇌를 형상화한 듯한 밧줄매듭이 무대에 자리를 잡고,이를 배경으로 신과 악마 사이에서 헤매고 갈등하는 파우스트 박사가 관객들을 만난다.

박신영 기자 nyus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