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관이나 공연장에는 영화나 공연이 바뀔 때마다 가면서 박물관은 왜 개관 때 한번만 봤으면 그만이라고 생각하는 거죠? 전시 콘텐츠가 1년이면 열 번도 더 바뀌는데 말입니다. 그뿐 입니까. 볼 것도 많고 비용도 거의 안 들잖아요? 제발 박물관에 가족과 함께 놀러 좀 오세요. "

최광식 국립중앙박물관장은 지난해 3월 관장을 맡은 뒤로 친구나 지인들을 만날 때마다 이렇게 강조한다. 흔히 박물관 하면 연상하는 고리타분하고 엄숙하고,'유물창고'같은 이미지는 옛말이 된 지 오래다. 다양한 기획전은 물론 풍부한 교육 및 체험 프로그램,전시와 연계된 뮤지컬 · 연극 · 음악 공연,영화 상영 등으로 항상 들썩들썩한다.

더욱이 올해는 국내에 근대적 박물관이 처음 문을 연 지 100년이 되는 해여서 전국의 국 · 공 · 사립 박물관들이 일년 내내 최고의 기획전과 기념행사로 관람객을 불러모을 태세다. '한국박물관 100주년'을 맞아 국가대표 박물관으로서 '박물관 대중화'를 이끌고 있는 최 관장을 지난 6일 저녁에 만났다.

▼먼저 한국 박물관 100주년을 축하드립니다. 근대적 박물관의 탄생이 우리 삶에 어떤 변화를 가져왔는지 그 의의를 설명해주시죠.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제인 순종은 1909년 11월1일 창경궁의 양화당과 명정전,부속 회랑 등을 전시실로 꾸민 제실박물관을 열고 일반 백성들에게 공개했습니다. 관리나 귀족들만 들어갈 수 있었던 궁궐에 일반인들이 처음 들어갔으니 매우 역사적인 날이죠.이미 1908년 창경궁에 동 · 식물원이 생겼지만 그건 황제만 즐길 수 있었으니까 제실박물관의 개관은 왕조사회가 끝나고 시민사회가 시작되는 상징적 사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

국립중앙박물관의 존재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세요.

"해방 후 정부가 수립되기도 전인 1945년 12월3일 국립박물관을 개관한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어요. 북한도 이보다 이틀 앞서 조선중앙역사박물관을 열었는데 이는 국립박물관이 국가 정통성의 상징이기 때문입니다. 중국의 장제스가 대만으로 피난가는 와중에 고궁박물관 유물들을 가져간 것도 이런 측면에서 봐야 합니다. 유물을 팔아먹기 위해서가 아니라 정통성 때문이었던 것이죠."

▼2005년 10월 용산에 새 박물관을 지어 이전한 것은 어떤 의미가 있습니까.

"역사를 보면 아시겠지만 국립중앙박물관이 자기 건물을 갖고 독립한 건 여기가 처음입니다. 궁궐 안에 있던 박물관이 제대로 된 박물관을 갖고 궁궐 밖으로,세상 속으로 나오게 된 것이죠.그런 점에서 '한국박물관 100년'은 단순히 시간 개념의 100년을 기념하는 것을 넘어 국립중앙박물관이 국가 정통성의 상징인 동시에 문화콘텐츠의 보고(寶庫)로서 대중들이 스스로 찾아와 즐기는 곳으로 탈바꿈하는 계기가 돼야 합니다. 박물관은 더 이상 '유물창고'가 아니라 '미래를 담는 그릇'이니까요. "

▼그렇게 하자면 박물관이 대중과 좀 더 친숙해야 할텐데요.

"지난해 5월부터 국립박물관 관람료를 없앤 것도 박물관 대중화를 위해서였죠.국립중앙박물관은 2005년 개관 첫해에 550만명이 다녀갔는데 이른바 '허니문 효과'가 사라지자 이듬해엔 230만명으로 줄더니 계속 감소세였어요. 국민 대부분이 박물관은 한 번 가면 다시 안 가도 되는 곳으로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예술의전당이나 세종문화회관은 공연이 바뀔 때마다 가면서 박물관은 전시 내용이 계속 바뀌는데도 안 오시니 안타깝습니다.

그래서 관람료도 무료화뿐만 아니라 프로그램도 다양화하고 계절별 특별전,테마전,상설전시실의 전시품 교체,전시와 연계한 공연 · 영화 등으로 문턱을 낮추고 재미를 더하려 애쓰고 있어요. '박물관 가는 날'로 정한 매달 넷째주 토요일에는 저를 포함한 박물관 간부들이 직접 전시 설명도 하고 있습니다. "

▼올해 박물관 100주년 기념행사도 많이 준비하고 계시죠.

"1년 내내 중요하고 재미있는 행사들이 잇따를 겁니다. 이달엔 2005년 용산 이전 이후 기증유물과 기증자들을 소개하는 특별전과 기증 · 기부자의 밤 행사를 열 예정입니다. 이후에도 이집트 특별전(4월) 국제학술회의(5월) 차마고도전(6월) 고려실 개관(7월) 기념 음악회(8월) '한국 박물관 100년의 발자취' 특별전(9월) 박물관 엑스포(10월) 국제포럼(11월) 잉카전(12월) 등이 쉴 새 없이 열립니다. 특히 뮤지엄 엑스포에는 100여개 국 · 공 · 사립 · 대학 박물관들이 부스를 만들어 각 박물관의 전시 · 소장품과 프로그램을 소개하는 축제가 될 겁니다. "

▼지방박물관,사립박물관들의 적극적인 참여가 필요할텐데 어떻게 하실 계획인가요.

"지역별 연합전시회를 많이 열려고 합니다. 전남 · 광주,대구 · 경북,제주 등 지역별로 국립박물관과 공 · 사립 · 대학박물관이 연합해 대표 유물들을 한곳에서 전시하는 것이죠.또 '박물관 100번 가기 운동'을 통해 가능하면 공 · 사립 박물관에 많이 가도록 유도하고 있어요. 이를 위해 전국의 모든 박물관의 특별전 공동 브로셔를 상 · 하반기별로 만들어 배포할 계획입니다. "

▼세계적인 박물관들과 비교할 때 국립중앙박물관의 위상은 어느 정도입니까.

"건물 규모로 보면 세계 6위인데 소장 유물은 턱없이 부족합니다. 대영박물관이나 프랑스 루브르,미국 스미소니언박물관 등에는 자국 유물뿐만 아니라 세계 여러 나라의 유물이 다 있지만 우리는 우리 것만 있거든요. 일본만 해도 한국 · 중국은 물론 이집트 유물까지 있어요. 그러다 보니 다른 나라들은 외국인들이 박물관을 보기 위해 그 나라에 가는데 우리 박물관은 한국에 온 김에 보러 오는 정도예요. 외국 박물관들은 관람객의 반이 외국인인데 우리는 학생이 많다는 것도 차이점이죠."

▼박물관을 한마디로 뭐라고 할 수 있을까요.

"문화콘텐츠의 보고라고 하겠습니다. 박물관은 국가정통성의 상징일 뿐만 아니라 사람들에게 배움과 즐거움을 주는 곳입니다. 보다 많은 사람들이 박물관에서 보고 배우고 즐기고 놀았으면 좋겠어요. 박물관은 엄숙한 곳이 아니라 놀이터여야 합니다. 박물관에서 맞선도 보고 데이트도 즐기며 결혼식과 계모임도 하면 좋지 않겠어요. 기업들도 공연뿐만 아니라 박물관 프로그램으로 문화접대를 많이 했으면 합니다. 박물관 전시를 관람한 뒤 극장 '용'에서 공연을 보고 거울못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해도 호텔 비용보다 싸요. "

▼박물관을 '국민 놀이터'로 만들자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경복궁 복원 때문에 이전해야 하는 국립민속박물관을 2014년까지 용산 미군기지 터로 옮기고 국립자연사박물관,어린이박물관 등도 주변에 함께 지어 이 일대를 문화와 자연이 어우러진 '뮤지엄 파크'로 조성하면 좋겠어요. 지상에는 저층의 친환경적인 박물관을,지하에는 주차장과 코엑스몰처럼 공연장과 문화쇼핑몰,식당가 등이 배치된 복합공간을 만들어 시민들이 언제라도 와서 보고 즐기고 쉴 수 있는 곳으로 만들자는 것이죠.오는 5월 국제학술대회에서 이 같은 방안에 대해 논의한 뒤 올해 말이나 내년 초까지는 기본 컨셉트를 정하려고 해요. 정부도 기본적으로는 공감하고 있어서 각계에 공감대를 확산토록 차근차근 준비할 계획입니다. "

서화동/양윤모 기자 fire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