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 전 고종 황제의 장례 기간이 끝난 뒤 퇴계 이황의 후손 부부가 자결했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유서가 공개돼 관심을 모으고 있다.

대구에 사는 이일환(74)씨는 25일 안동독립운동기념관을 찾아 할아버지(이명우.1872~1920)와 할머니(권 성.1868~1920)가 자결 직전에 쓴 유서를 공개했다.

이 씨의 할아버지 이명우 선생은 퇴계의 14세 후손으로 안동에서 태어나 1894년 사마시에 합격해 성균진사가 된 유학자였고 할머니는 봉화에 사는 안동 권씨 집안 후손이었다.

그 동안 이명우 선생 부부의 죽음은 안동지역에서 간간이 회자돼 왔으나 사실을 뒷받침할 만한 구체적인 자료를 찾지 못해 별다른 보훈 절차를 밟지 못했다.

그러던 중 최근에 선생의 후손인 이일환씨가 집안에서 내려오는 옛 서한들을 정리하다 90년 묵은 유서를 발견, 입으로만 전해오던 조부모의 의분 자결을 확인하기에 이르렀다.

안동에 살던 이명우 선생은 명성황후 시해와 을사늑약 체결을 거쳐 1910년 결국 나라가 망하자 의분 자결하려 했으나 부모가 아직 살아있다는 이유로 뜻을 접었다.

이후 충북 보은과 충남 대덕 등으로 거처를 옮긴 이 선생 부부는 모친상을 당한 직후인 1918년 12월 고종 황제가 서거했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이 선생 부부는 고종 황제의 서거 소식을 듣자 서쪽을 향해 통곡하고 머리를 풀고 아침 저녁으로 망곡(望哭)하며 한스러운 황제의 죽음을 애도했다.

이미 죽음을 결심했던 터라 고종의 상기(喪期)가 끝나는 날인 1920년 12월 20일(음력) 저녁에 이 선생 부부는 조용히 영면에 들었다.

자식들을 물리치고 나란히 눈을 감은 이 선생 부부의 머리맡에는 약 사발과 함께 비통한 마음과 후손 및 백성에게 전하는 당부가 담긴 유서가 남아 있었다.

이 선생은 유서에서 "나라를 잃고 10여년 세월동안 분통함과 부끄러움을 참았으나 이제는 충의(忠義)의 길을 가겠다"라는 비장한 각오를 보였다.

이 선생의 부인 또한 아들 삼형제와 며느리, 시어른 등에게 보내는 한글 유서를 통해 "충의의 길을 따르는 남편을 따라 가겠다"라는 간곡한 심정을 나타냈다.

부인은 특히 아들 삼형제에게 "노소간에 생사가 그 한 몸에 달렸으니 부부지의는 군신지의와 일반이라 무슨 한이 있으리오"라며 부부간 의리를 지키겠다고 밝혀 애틋함을 자아냈다.

김희곤 안동독립운동기념관 관장은 "이번 자료는 나라를 잃은 뒤 부부가 함께 자결순국한 유일한 사례라는 점에서 각별한 의미가 있다"라며 "특히 권씨 부인은 일제강점기 자결순국한 유일한 여성인 데가 그가 남긴 한글 유서 또한 독립운동사와 국문학 연구에 상당한 가치가 있다"라고 말했다.

(안동연합뉴스) 김용민 기자 yongmin@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