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면 1. 미국에서 서브프라임 사태가 발발하자 노르웨이 북부의 한 작은 마을이 경제적 곤경에 빠졌다. 이 마을의 자금을 관리하는 사람이 씨티그룹의 부채 담보부 증권(CDO)에 투자했다 큰 손실을 입었기 때문이다. 이 마을은 결국 유치원생과 노인들을 위한 건강관리 서비스를 중단해야만 했다.

장면 2. 2000년대 들어 세계 외환시장에 새로운 변화가 나타났다. 일본의 가정주부들이 제로 금리로 인해 안정적인 수익을 얻기 어려워지자 적극적으로 외국 기업 채권과 해외 투자에 나섰다. 소위 '와타나베 부인'이라 불리는 가정주부들이 외환시장의 큰손으로 등장한 것이다. 이 결과 현재 외환거래의 5분의 1을 일본 개인투자자들이 차지하고 있다.

이런 장면들은 1980년대 초부터 본격화된 금융의 글로벌화가 낳은 새로운 현상이다. 이번 서브프라임 사태만 해도 그렇다. 신용도가 낮은 사람들에게 돈을 빌려 준 서브프라임 관련 금액은 기껏해야 2000억달러 정도에 불과하다. 미국 주택의 순자산가치가 56조달러인 점을 감안하면 이는 결코 큰 금액이 아니다. 과거 같았으면 미국의 문제로 끝날 일이었다. 그런데 왜 미국에서 발발한 문제가 유럽으로,그리고 아시아로 확산되고 혼란 속으로 몰아넣은 것일까.

그에 대한 해답을 《세계는 평평하지 않다》의 저자는 '금융의 글로벌화'에서 찾고 있다. 과거에는 무역이 먼저 있고 자본 흐름 등과 같은 금융이 뒤를 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먼저 자본을 유치하려는 욕구가 자유무역을 이끄는 시대로 변한 것이다. 자본의 확산은 이번 서브프라임 사태에서 알 수 있듯이 정보의 부족을 낳는다. 파생상품을 통해 복잡하게 얽히고 설킨 부채의 피라미드 때문에 누가 부채의 실질적 주인인지를 알 수 없게 된 것이다. 늘 그렇듯이 현실보다 더 두려운 것은 정보 부족으로 인한 두려움 그 자체다.

미국의 재정과 경상수지의 쌍둥이 적자 문제도 저자는 금융의 글로벌화 관점에서 바라본다. 통상적으로 적자가 심한 나라는 통화가치가 떨어지고 외국인 투자자들의 기피를 당하게 마련이다. 그런데 미국은 1980년대 중반 이후 심각한 재정난에 빠졌지만 성장을 계속했다. 그 이유는 저축 초과 상태였던 일본이 미국에 대한 투자를 늘리면서 자본의 흐름을 통해 불균형을 해소했기 때문이다. 2000년대 들어서는 중국과 중동 등 자원부국들이 일본의 역할을 잇고 있다.

세계화의 전도사인 토머스 프리드먼은 《세계는 평평하다》를 통해 세계가 과거의 수직적 질서를 벗어나 평평해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세계는 평평하지 않다》의 저자 데이비드 스믹은 프리드먼의 주장에 공감하면서도 금융시장에서 그의 말이 맞는 것은 아니라고 얘기한다. "세계는 구부러져 있다. 우리는 수평선 너머를 볼 수 없다. " 구부러진 증거로 그는 앞서 얘기한 노르웨이의 작은 마을을 사례로 들고 있다.

스믹이 가장 걱정하는 대목 중 하나가 금융보호주의의 득세다. 금융보호주의는 근린 궁핍화 정책(beggar-thy-neighbor policies)의 다른 이름이라는 것.엄격히 자본을 통제하고 무역 전쟁이 일어나면 세계는 지금보다 더 위험한 지경에 빠질 것이라는 주장이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하는 것처럼 금융이 글로벌화된 시대에는 그에 맞는 새로운 위기 해법이 필요하다는 그의 주장을 귀담아 들을 만하다.

이상건 미래에셋투자교육연구소 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