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대는 남들이 하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욕심을 내 볼 나이다. 하지만 소설가 공선옥씨의 새 소설집 《나는 죽지 않겠다》(창비)에 등장하는 아이들은 어려운 가정 형편 때문에 늘 쩔쩔맨다.

한 여고생은 두 번 탈 버스를 한 번만 타면서 절약한 돈으로 무 한 개나 붕어빵을 사고,한 남학생은 여자친구에게 생일선물로 겨울코트를 한 벌 사주겠다고 큰소리 쳤다가 뒷수습에 골머리를 앓는다.

작가는 아이들의 궁핍한 현실을 감추거나 미화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 그래서 그들이 맞닥뜨린 현실의 격을 독자가 연민을 일으킬 정도까지 떨어뜨리지 않는다.

표제작 <나는 죽지 않겠다>의 주인공 여고생의 집은 엄마가 요구르트를 배달해 벌어오는 돈으로 근근이 살아간다. "우리 집에 들어오는 돈은 질기디 질긴 목숨줄"이라고 한탄하는 엄마 밑에서 자란 여고생의 삶에는 늘 궁기가 들려 있다. 친구들이 아무렇지 않게 나눠주는 간식조차도 '먹어줄 때마다 목구멍이 따갑다'고 느낀다.

그러다가 그의 수중에 반 친구들이 모은 돈 100만원이 들어온다. 그는 '50만원만 있으면 누구보다 행복할 수 있는' 엄마의 가방 속에 돈을 찔러넣고,나머지 돈으로 털장갑이며 군고구마 2000원어치며 엄마 생일 축하 케이크 등을 산다.

하지만 100만원을 돌려 줘야 할 날은 닥쳐오고,궁지에 몰린 여고생은 강가에서 자살을 고민하며 빚 때문에 죽음으로 몰린 아버지를 생각한다.

그런데 강가에 드리워진 안개가 걷히는 순간 퍼뜩 정신을 차린다. 그리고 아침 햇살이 퍼지기 시작하는 세상 속으로 달려나간다.

<라면은 멋있다>의 민수는 가난 때문에 여자친구에게 차인 경험을 한 후 '여자애를 사귈 때는 절대로 솔직해서는 안 된다'는 교훈을 얻었다.

새 여자친구 연수를 사귀게 된 민수는 독서실비를 가지고 벌벌 떨어야 하고,돈을 아끼기 위해 연주가 일하는 햄버거 가게 안에 들어가지 못하는 형편임에도 코트를 선물하겠다며 허세를 부린다.

그러다 사정을 눈치챈 연주의 제안으로 라면집에 들어가 나무젓가락 포장지를 뜯는 순간 '왼쪽 갈비뼈 밑에서 찌잉 찌잉 버저가 우는' 경험을 한다.

이의 후속작 격인 <힘센 봉숭아>에서 연주와 헤어진 민수는 떡볶이집에서 알바를 하지만 주인 아줌마는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돈 줄 생각을 않는다. '학생이 돈 2만원을 쓸 때는 친절하지만 그 학생이 2만원을 벌 때에는 그런 친절한 대우를 받기 어렵다'는 현실을 깨달은 민수는 아줌마가 애지중지하던 봉숭아 화분을 발로 걷어차 박살내 버린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나서 민수는 돈 때문에 울지 않는 봉숭아를 생각하며 더이상 아줌마를 미워하지 않게 된다. '나는 아름다워서 힘센 봉숭아를 닮아 넘어져도 기를 쓰고 살아나리라.'

이외에도 <울 엄마 딸> <일가> <보리밭의 여우> 등 단편 6편이 실렸다. 소설가 박완서씨는 "이들 작품은 부질없는 환상을 주지도 않지만 칙칙하거나 어둡지 않다"며 "공씨가 그린 가난은 씩씩하고 명랑하다"고 평했다.

이고운 기자 cca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