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밍웨이 문학의 젖줄 '잃어버린 세대' 도피처

카페 '라 로통드'(La Rotonde)의 테라스.한 젊은 소설가가 따사로운 햇빛을 받으며 몽파르나스 대로를 멍하니 응시하고 있다.

그의 이름은 어네스트 헤밍웨이.그는 방금 시인 에즈라 파운드와 헤어지고 난 뒤였다.

테이블 위에는 두 사람이 마셨던 유유 빛 에스프레소 잔이 한 낮의 풍성한 빛을 잔득 머금고 있다. 테이블 한 쪽에는 두툼한 원고 뭉치가 펼쳐져 있고 타이핑한 원고 위에는 붉은 색의 교정 부호가 낭자하다.

휘 갈긴 태로 보아 파운드의 것이 분명했다. 그것은 마치 날카로운 메스로 하얀 살결을 난도질한 것 같았다. 헤밍웨이의 습작 원고였다. 그것은 피를 토하는 습작의 고통스러운 임상 그래프였다.


◆가짜양주 한잔에 행복해지는 곳

그가 파리에 오게 된 것은 외견상 '토론토 스타 위클리'의 특파원으로 주재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실제론 착잡한 현실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욕망에 이끌려 자신도 모르게 이곳으로 온 것이었다.

1차 세계대전에 운전병으로 참전했던 그는 북이탈리아 전선에서 부상을 입고 밀라노 육군병원에 3개월간 입원했다.

수많은 포탄의 파편이 다리에 꽂히는 고통을 몸소 체험하면서 그는 자신이 집단적 광기의 현장에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살육과 파괴의 현장에서 그는 수천 년간 쌓아올린 인류 문명의 처참한 붕괴를 목격했다. 그 기막힌 현장에서 그는 박애를 앞세운 종교의 무력함과 인간의 야수성에 절망했다.

그리고 그것은 그의 정신에 치유할 수 없는 상흔을 남겼다. 그것은 정신적 불임(不姙)의 상태라고 할 만한 것이었다.

전쟁은 끝났지만 그는 끊임없는 후유증에 시달려야 했다. 간단없이 엄습하는 하지의 통증은 전선의 악몽을 끊임없이 되살렸던 것이다.

그에겐 전쟁으로 황폐해진 자신의 정신과 육체를 너그러이 받아줄 도피처가 필요했다. 자본주의의 병리현상과 도덕적 허위의식이 판치는 미국은 그의 은신처가 될 수 없었다.

그는 자유와 관대함이 넘쳐나는 파리 몽파르나스에서 비로소 답답한 현실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부르주아지들도 허위의식을 떨치고 서민과 뒤섞여 춤출 수 있을 만큼 몽파르나스에서는 모든 것이 가능했다.

그런 무한한 가능성이 이곳을 찾는 이들로 하여금 해방감을 느끼게 했다. 누구든 페르노(값싼 가짜 압생트) 한 잔이면 행복해질 수 있었다.

이곳은 감성이라는 폭탄의 뇌관에 불을 지피는 곳이었다. 헤밍웨이에게 있어 그곳은 언제든 의탁할 수 있는 어머니의 푸근한 무릎이 되었고 착잡한 현실을 가려줄 누이의 품 넓은 치마폭이 되었다.

그가 소설가가 되려고 하는 것은 또 다른 은신처를 마련하기 위함이었다. 몽파르나스가 현실의 도피처라면 소설은 가상의 피난처였던 것이다.


◆미국 젊은작가들의 문학적 토양

몽파르나스를 정신적 도피처로 삼은 것은 헤밍웨이뿐만이 아니었다. 미국의 여류 작가 거트루드 스타인은 일찌감치 이곳에 살롱을 열고 젊은 미술가와 문학가들의 만남과 토론의 장을 마련했다.

스코트 피츠제럴드,헨리 밀러,에즈라 파운드,도스 패소스 등 젊은 미국작가들도 이곳을 정신적 망명지로 삼아 보헤미안적 삶을 살면서 자신들의 방황의 궤적을 글로 쏟아내었다.

그들은 '라 로통드','르 셀렉트' 등 이곳 몽파르나스의 카페를 무대로 문학 활동을 전개했다. 같은 시기 '라 클로즈리 데 릴라'(La Closerie des Lilas)라는 카페에서는 시인 트리스탄 차라와 앙드레 브르통이 한창 다다이즘(dadaism) 논쟁을 벌이고 있었다.

미국의 젊은 작가들이 시와 소설을 통해 기성의 가치와 규범에 도전했다면 다다이스트들은 전통적인 문학과 예술의 개념 자체를 부정하고 몸짓이나 육성으로 자신들의 생각을 표현했다.

모처럼 해방감에 젖은 헤밍웨이는 몽파르나스에서 점차 보헤미안적 삶에 빠져들어간 듯하다. 아니 헤밍웨이뿐만이 아니었다.

몽파르나스의 예술가들 중 상당수는 전쟁의 악몽과 현실의 환멸에서 벗어나기 위해 방종한 생활에 탐닉했다. '토론토 스타 위클리'의 편집자인 해리 힌드마시가 이즈음 파리 특파원인 헤밍웨이의 도덕성을 문제 삼았던 것을 보면 이 시절 그가 자유분방한 삶을 살았을 가능성은 농후하다.

실제로 그의 주변에는 '위대한 개츠비'의 작가 스코트 피츠제럴드와의 동성연애 소문이 나돌았고,당시 몽파르나스에서 빼어난 미모로 뭇 예술가들의 성적 흠모의 대상이 되었던 스코틀랜드 출신의 귀족 여성 레이디 더프와의 연애설도 뒤따랐다. 당시 그는 유부남이었다.

◆뫼비우스의 띠처럼 끝없는 방황

헤밍웨이는 이 같은 방황하는 몽파르나스 보헤미안들의 삶을 자신의 처녀 장편소설인 '해는 또다시 떠오른다'(1926년)를 통해 충실하게 기록했다.

전장에서 입은 부상으로 성 불구가 된 신문기자 제이크 번즈의 구술 형식을 띤 이 소설은 전시 특별 간호사였던 영국 귀족여인 브레트 애쉴리와 제이크의 사랑을 중심으로 잃어버린 세대의 방종한 삶을 파리와 스페인을 무대로 적나라하게 그려냈다.

제이크라는 존재는 사실상 헤밍웨이 자신은 물론 전쟁에 참가했던 이 시대 모든 젊은이들의 정신적 불임을 상징한다.

등장인물의 대부분은 당시 몽파르나스를 출입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짐작할 수 있는 실재 인물을 모델로 한 것이었다.

제이크는 헤밍웨이 자신을,브레트는 레이디 더프를 모델로 한 것이었다. 소설 속에서 브레트는 제이크를 사랑하지만 성적 욕구불만을 채우기 위해 이 남자 저 남자를 전전한다.

그녀는 마이크라는 거칠고 자제력 없는 영국남자와 동거하면서도 유태인 작가 로버트 콘,젊은 투우사 로메로와 대담한 밀회를 즐긴다. 등장인물들은 또한 몽파르나스와 프랑스 남부의 베이욘느,투우의 도시 팜플로나로 무대를 계속 옮겨가면서 순간의 즐거움에 몸을 맡긴다.

게다가 잠시도 그들의 손에서 술잔이 떠나는 법은 없다. 그들에게 미래는 없었다. 오로지 전장의 어두운 기억과 암울한 현실이 있을 뿐이었다.

그들의 방황은 도약을 위한 일시적 방황이 아니라 뫼비우스의 띠처럼 끝없이 이어지는 연쇄적 방황의 사슬이었다.

그들은 거트루드 스타인의 말대로 로스트 제너레이션(Lost Generation),곧 가치관의 전도 속에서 길을 '잃어버린 세대'였던 것이다.

다양한 가치의 혼란 속에서 정신적 귀의처를 상실한 현대인의 상황은 로스트 제너레이션과 기막히게 닮았다. 끊임없이 업데이트되고,업그레이드되는 시스템의 홍수 속에서 우리의 마음은 잠시도 정주를 허락받지 못한다. 오늘의 법칙은 내일 등장하는 새로운 법칙에 의해 신속하게 폐기된다.

새로운 법칙에 편승하지 못하면 곧바로 내쳐지는 냉혹한 현실 속에서 우리는 인류문명이 자행하는 또 다른 학살의 현장을 목도한다.

그 속에서 고단한 우리의 몸과 마음은 정처없이 떠도는 노마드가 되고 만다. 우리에게 위안을 줄 이 시대의 몽파르나스는 과연 어디에 있는 것일까?

정석범 미술사가